글사랑
전편 한 여자 (15) 시작은 이미...(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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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드, 무슨 생각을 그리해요? 내가 아까 한 말때문에 염려되어요? 걱정말아요. 당신에게 부담주지 않을게요. 그냥 여기서 지내는 동안 즐겁게 지내요. 알았지요?“
"파울... 내일까지 지내고 모래는 비인으로 갈게요. 당신의 시간을 너무 빼앗는 것 같아요.“
"제이드. 아니에요. 같이 지내는 것이 기뻐요. 다른 생각 말고 어서 몸이나 회복해요.“
어느새 차가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그네를 타던 딸애가 반갑게 뛰어온다.
"엄마, 재미있었어? "
"그래 잘 들 지냈니?“
"응."
파울이 트렁크에서 쇼핑백을 꺼내 은지에게 장난감을 안긴다.
"어머 목각인형이네.. 와! 지난번 스위스공항에서 보았던 것인데...당케 프로페소아! 엄마, 그런데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 그래? 어디 계시지? 파울, 아버님께서 오셨다는데요.."
" 흠... 웬일이실까..."
모두가 호텔로 들어온다. 로비에는 단정하게 차려입은 로렌스옹이 앉아있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제이드, 걱정했던 것보다 보기가 좋군요."
이분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상대방을 환해지게 빛나는 분이시네..참으로 멋있는 분이구나.
" 예 , 덕분에요. 어제 놀라셨지요? 죄송해요"
" 하하하! 무슨 그런 소리를 하오. 그리 되도록 부려먹은 파울이 잘못이지요. 그렇잖은가 파울! 그래 산책은 어디로 갔었나 ?“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을 다녀왔어요. 아버님, 그런데 어떻게 다시 오셨어요. 이곳에...“
"하하하! 내가 케른튼 내려가기 전에 다시 들려가고 싶어서 왔구나. 제이드 형편도 직접 보고 싶었고.. 파울은 벌써 며칠째 학교를 쉬는 것 같은데..그래도 되겠느냐?“
"예, 요즘 좀 한가한 편입니다.“
"그럼 알겠고.. 제이드.. 그래, 이제 어지러움은 덜 해요?“
?예, 많이 좋아요. 내일까지 지내고 모레는 비인으로 귀가 하려고요. 이곳이 참으로 고적하니 좋아서 나중에 두고두고 기억될 듯 합니다.“
"그렇지요? 파울 에미도 그리 좋아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이곳에 여러 가지들을 그냥 놔두고 있으면서 가끔 찾아 오고 있었지요.. 재혼한 다음부터는 잘 찾아오지 못하고 있어요.
언제인가는 여기를 청산 해야 될 날도 오겠는데, 이번에 제이드가 이리 이용하니 참으로 기쁩니다.“
"예... 그런 사유가 있었군요.“
여자가 로렌스옹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파울은 시종 무슨 생각에 골똘하는 표정이다.
"파울 ,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 우리 오늘 저녁식사를 좀 이르게 다 같이 하잖구나..나는 그 후에 그라츠로 떠나려고 한다. 거기서 묵은 후 내일 케른튼으로 가려고...“
"예? 아니 그라츠에는 왜요?“
"그곳 미술관장이 좀 보자고 얼마 전부터 그랬는데,이번에 한번 만나보련다. 나의 수집품에 관심이 많아 수차례 연락을 주더구나..“
"예... 그러시면 제가 호텔주인에게 저녁 식사 준비를 시키겠어요. 아버님 방에 올라 가셔서 좀 쉬시고 계시지요..제이드도 올라 가 쉬고 있어요.“
"그럴까? 제이드, 그럼 우리는 올라 갑시다!"
파울만 남겨두고 모두 이층으로 올라온다.
여자의 방앞에서 헤어지려는데,
" 제이드, 나 좀 잠간 봅시다“
" 예? .. 예... ?
여자는 딸애를 소연이와 딸려 보내고 로렌스옹의 뒤를 따라 간다.
로렌스옹 전용방으로 들어서니 방이 괭장히 넓다. 커다란 배드가 한 구석에 있고 책상과 서재가 있는 부분은 보통 가정집의 구조이다.식탁과 탁자를 비롯한 가구들도 적당한 위치에 놓여있고 욕실로 들어 가는 문이 살짝 열려 있는데, 그 안도 넓어 보인다.
" 제이드, 호기심에 찬 눈빛이 소녀같군요.. 허허허!“
" 저는 보통 호텔방만 보아 왔었는데, 이번에 이런 구조의 호텔방이 신기로와서요 ?
" 지금 호텔경영하는 마틴의 선조때 부터 잘 아는 사이인지라, 나의 부탁으로 방 몇개를 구조 변경하고 연결하여 만든 것에 나의 소장품들을 가져와 늘어 놓은 것이에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태이지요 하하하!“
" 예.. "
" 제이드, 자 여기 앉읍시다.. 내가 차를 부탁했는데, 곧 가져 오면 마시지요.“
여자가 로렌스 옹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앞자리에 앉는다.
" 제이드, 내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를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어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오늘 이리 일부러 찾아 온 것이에요.“
" 예..“
무슨 얘기를?
" 파울은 나의 첫 아들이자 나의 가장 귀중한 보물입니다. 파울을 나에게 선물한 죽은 아내의 유일한 자식이기 때문에 더욱이나... 나는 두 번째 부인으로부터 자식이 더 있어요.
이번에 파울이 독창회를 연다고 하여 얼마나 기뻤는지요..몇 년 전 반주자 거부건으로 소문이 안 좋아 연주를 통 안 하고 있었지요. 파울의 에미가 살아 있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었지요. 그녀는 전도가 유망한 소프라노 성악가였어요. 그러나 나와 결혼후 모든 연주 활동을 못 했었어요. 내가 젊은 시절 사업이 한창 바쁜 때 동서남북 질주를 하였었는데, 어디를 가나 아내를 꼭 데리고 다녔었기에 그녀로서는 자신의 연주활동을 접었던 것이지요.
나는 그때 생각하기를 , 사랑하는 아내와는 하루라도 떨어져 살 수 없는 것이였어요...그러나 그것이 나의 잘못 된 아집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세월이 한참 뒤라 뒤돌아 갈 수가 없었어요.
아내는 나의 사랑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그녀의 음악세계가 있었던 것이에요. 파울을 낳은 다음부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군요. 파울이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그래도 파울까지 대동하여 우리 식구는 곳곳을 다녔었지요. 파울이 학교에 입학하자 아내는 파울의 교육때문에 비인에 머물게 되고 방학때나 되어서야 가족전체가 같이 여행하게 되었어요.
나는 본가가 있는 이탈리와 케른튼과 곳곳에 다니다 보니 점점 가족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적어졌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옛동료들이 계속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것을 부러워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말로서 한번도 안했으나 나는 저절로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는 그녀가 이미 젊음을 넘은 나이여서 다시 활동하기에는 늦었던 시기였어요. 그러더니 파울의 음악지도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었어요. 사실 나는 파울을 나의 사업후계자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 문제로 의견이 충돌했었지요. 그런데, 파울 스스로가 음악에 심취하는 것을 보고 내가 포기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힘을 합하여 파울의 뒷바라지를 하였어요.아내는 참으로 행복해 했어요.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젊은 날 아내의 재질을 그대로 펴게 했어야 하는데 나의 무지로 내안에 묶어 놓았던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이미 너무 지나버린 것이었어요.그리고 그녀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고요.."
"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문을 여니 차도구를 준비해 온 종업원이 문앞에 서 있다. 방안으로 들어와 두사람에게 차려주고 나간다.
" 흠... 허브향이 좋군요.. 역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자연에서 모든 것을 채집하는 데는 명수입니다. 조금 우러난 다음 들어요."
여자는 하얀 도자기 주전자와 더불어 세트로 준비된 차 도구에 매료한다. 로렌스 옹은 차를 몇 모금 들고 나자 계속 이야기를 한다. "파울은 나의 아내와 참으로 비슷한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을 하면 구속 받아 음악세계에 몰두를 못 할 것이라는 에미의 영향을 받았던가 아예 여성을 동료이상으로 가까히 하지를 않아 왔어요. 그런데, 제이드와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좀 당황했습니다. 아직까지 알아왔던 나의 아들 파울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실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제이드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파울에게 나타날 동공상태를 어찌 해야 할지..물론 이런 생각이, 걱정이 지나친 에비의 염려에 머물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여자는 로렌스옹이 말하는 동안 아무 소리 없이 차를 음미하면서 듣는다. "제이드..미안하군요.. 미리 앞서가는 내생각을 이리 말하다니요..“ " 아니에요. 저는 파울을 잘 모르잖아요. 몇 번 만난 것 뿐인데요.. 파울 아버님께서는 잘 아실테니까 염려가 당연 하시고요...“ " 역시, 내 생각대로 제이드는 이해력이 높아요..“ " 그럼 , 제가 어떻게 파울에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게 로렌스옹 말씀의 주제가 아닐까요...“ "................“ 아무 소리도 않고 한참동안 여자를 바라본다. " 제이드, 정말 솔직히 말해도 되지요?“ " 예,,, 그래 주세요.. 그게 저에게도 편해요“ " 제이드가 결혼 안한 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바래 보았어요“ 어머나!!! " 무슨 의미인 줄 알아요?“ "...........“ " 제이드는 내 말의 뜻을 잘 알 거에요. 그 정도로 제이드가 내 맘에 들어요. 파울의 반려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에요.“ " 그러나 저는 이미 한 남자의 아내에요..그렇게 될 수는 없지요. 바로 그러니까 안 되는 일인 줄 잘 알라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로렌스옹?“ 다시 여자를 한참을 쳐다 본다. " 아!... 갈 수록 당신이 내 식구라면 싶어요..어찌 제이드는 그리 핵심을 잡아 담백하게 표현을 하는지...“ " 로렌스옹! 저는 지금이라도 여기를 떠날 수 있어요. 물론 독창회건도 취소 할 수 있고요.“ ? 제이드, 그리 생각을 달려가지 말아요... 자, 그럼 오늘은 이만 얘기하지요.. 제이드가 내 심경을 이미 다 알아 준 것에 고마워요.“ " 글쎄요.. 제가 어찌 다 알겠어요. 그러나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에는 머리가 숙여 지어요. 제가 젊은 날에 저의 아버지도 저를 위하신다고 하신 일이 있거던요. 그런 것을 한참 후에 알고서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아버지가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구나 하고 이해가 되어요.“ " 제이드에게 그런 일이 있었어요? 흠... 그런데, 제이드 남편은 어떤 사람이에요? 어찌 젊은 부인과 이리도 떨어져 지낼 수 있지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젊은 시절 아내와 하루도 떨어져 본 적이 없어요.“ " 이번에 이곳에 온 것도 사실은 남편 사업일 돕는 차 온 것이에요..“ "그래요... 나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군요.. 사업차라? ? 이분은 정말 이해가 안되는 구나.. 문화의 차이일까? " 제이드, 정말 미안하지만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당신 부부는 아직 사랑을 진정으로 모르는 것 같아요.“ 어!.....??!!어쩌나! "제이드, 내가 너무 솔직하지요? 그러나 그런 느낌은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어제부터 본 제이드는 예술감각이 뛰어난데...“ "로렌스옹! 그만 얘기 나누지요. 이제 딸애에게 가 보아야 겠어요. 좀 더 쉬세요. 저녁 식사시간에 뵈어요“ " 그러지요. 참 제이드는 재치가 있어요. 적당한 순간에 대화도 끊고. 허허허!“ " 호호호,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안녕히"
자기 방으로 돌아온 여자는 갑짜기 힘이 쭈욱 빠진다. 로렌스옹과 대화에 온 신경을 모아 했던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듣는 내내 베르디의 "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의 서곡이 떠 올랐다. 관현악의 서곡이 불러일으키는 오페라 전곡의 예상!
로렌스옹의 솔직함에 당혹함보다는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도 솔직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웬지 두 사람 서로에게 신뢰감이 생겼다고나 할까..여자는 빙그레 웃는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음반 모여 놓은 곳에 가서 '라 트리비아타' 음반을 찾아 본다. 롱플레이 판 중에서 드디어 찾아 들고 판을 돌린다.
아... 저 선률...
"똑 똑 !" 노크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문쪽으로 가는대신
" 들어 와요!" 말한다.
파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 라 트라비아타! 좋아해요?"
" 예, 특히 서곡을요"
" 나도 그 부분을 좋아하는데.. 자,그럼 이것만 듣고 저녁 식사하러 내려갑시다."
" 벌써요?"
" 아버님이 어둡기 전에 떠나셔야 해요."
" 예, 그럼 이 곡만 끝까지 들고 애들
데리고 내려 갈게요. 어서 먼저 내려가요. 아버님께서 기다리실텐데.."
"하하하! 아니 제이드가 저의 아버님을 이리 챙기니 기분이 야릇합니다. 하하하!"
" 한국에 계신 저의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래요. .."
" 흠...그렇겠네요... 제이드가 몸이 힘드니 맘도 약해지나 봐요.."
"........"
서곡이 끝난다. 둘이는 동시에 쳐다 본다.
" 자, 그럼 공주님들 데리고 내려 가요. 저는 아버님 모시고 갈게요."
좀 이른 저녁식사를 먹었다. 파울이 미리 준비시켜 논 간이 부페였다. 식탁가운데에 몇 가지 접시에 담겨진 음식들을 각자 기호에 맞추어 덜어 먹게 한것이다. 여자와 딸애가 주문하는 성가심을 덜어 준 배려였으리라. 밥도 준비되어 있어 딸애가 맛있게 먹었다.식사가 거히 마쳐갈 무렵 로렌스 옹이 말을 시작한다.
? 프린체신 은지, 이제 엄마하고 여행가면 건강히 다녀야 하니 음식 가리지 말고 먹어야 해요. 다니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먹고... 자 이것은 할아버지의 선물이에요. 받았다가 필요한 것 있을때 사용하고.. 어서 받어요.“
로렌스옹의 이야기를 못 알아 듣는 은지이지만 그가 들려주는 봉투를 손에 들고 어쩔 줄을 모른다.
? 아니에요 로렌스 옹! 이런 것 받을 수 없어요.요즘 대접받는 것만 해도 과분해요. 어서 거두어 주세요.“
? 제이드, 이것은 내가 어린 은지가 귀여워서 주는 선물이에요.
제이드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
은지는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못 알아 들으면서도 상반된 의견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로렌스옹이 들려주는 봉투를 안 받는다. 파울이 거들며 은지의 손에 봉투를 쥐어준다.
여자가 파울을 가만히 쳐다 본다.
? 제이드, 그냥 허락해요. 은지가 요 며칠동안 혼자 힘들게 지냈잖아요. 아직 칭얼거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리 엄마를 이해하는 딸애가 어디 있겠어요. 특히 말도 안 통하는데...“
여자는 딸애를 쳐다보며 로렌스옹과 파울의 말을 되새겨본다.
그래.. 이 애가 정말 그랬지..
? 은지야, 고맙다고 할아버지께 인사해. 할아버지가 은지에게 선물로 주시는 거야.“
? 엄마, 그러면 이것 받아도 되는 거야 ? "
? 응, 여행하다가 은지 필요한 것 있을 때 봉투 열어보래.“
? 할아버지 고마워요. ?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로렌스옹 앞으로 가서 꾸벅 인사한다.
? 허허. 공주님이 인사성이 이리도 밝을 줄이야. 허허!“
화기애애한 저녁식사가 마치고 로렌스옹이 호텔을 떠나려고 대기된 차로 가면서
? 제이드 여행 잘 다녀오고 칠월 독창회때 봅시다. 그리고 중간에 서로 연락도 하고요. 내가 파울에게 곳곳에 머무를 곳의 전화번호와 주소 몇 개를 주고 갑니다. 잘츠 부르그, 루체른, 로마, 등등의 호텔연락처인데 내 이름을 대면 잘 대접할 거에요. 그곳에 도착하면 연락도 하고요..모녀가 여행을 잘 다닐지 염려가 됩니다.“
? 예, 감사해요. 그러도록 해볼게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 그리고 파울! 오늘도 여기서 묵으려나? 되도록이면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도록 하지. 옷도 갈아입도록 하고..어째 파울이 제이드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것이 걱정되는 구만.“
? 예, 아버님 걱정끼쳐 드려 죄송해요. 어서 떠나세요. 그라츠에 도착하시면 시간이 늦어지겠어요.“
? 그래, 그럼 모두들 잘 지내고.. ?
로렌스 옹의 차가 안 보일때까지 서있다가 여자가 파울에게도 돌아가라고 말한다.
" 내일은 오지 마세요. 우리 끼리 지낼게요. "
" 정말 그러고 싶어요?... 그러지요. 그럼 잘 들 지내요"
그가 떠나자 딸애는 소연이하고 자는 것을 신나하며 건너간다. 아주 혼자 남은 여자는 갑짜기 고독하다.
오랜만에 혼자된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잠을 못 이루고 들척인다.파울이 낮에 한 말이 떠오른다.
"제이드, 당신을 이렇게 가까히 곁에 두고.... 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너무 힘들어요..."
어서 떠나자....
(계속)
손가락을 조금 다쳐서 한달 째 피아노 휴업중이랍니다.
아직 한달은 더 기다려야 할 듯 한데 아프지않아서 지금 그 손가락으로 키보드 치는 중이에요.
갑자기 무거운 피아노 키를 두드리면 또 충격이 올 수도 있쟎아요?
덕분에 피아노 아닌 일에 몰두도 하고
(피아노에 대해서는 기쁨 외에도 연습해야한다는 무의식적인 의무감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
평생 무심하기 그지없는 남편이 자진해서 매일 설겆이하는 모습도 보게 됬어요.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아봐야 하는 모양입니다.
나한테는 이 소설이 엄청 흥미진진합니다.
이 뒷부분 컴에 복사해놓은 것이 다 날아가는 비극이 발생했답니다.
아이고 또 다시 해야지요.
아침 신문에서 혼불문학상에 당선된 분의 인터뷰를 읽었어요.
이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스물세살에 쓰다가 멈춘 소설을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 다시 써서 완성시켰습니다. 당시 중단했던 이유는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소설은 제가 아프지 않았더라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계속 썼더라면 젊은이의 사랑에만 매몰되었을 텐데, 세월이 지나서 다시 쓰다 보니 40대 중년들의 감정도 나이에 맞게 표현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장편소설 <비밀 정원>으로 ‘제4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혜영씨(53세)는
“나이 들어서 등단하게 된 것도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너무 일찍 등단했으면 좀 더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폭넓게 맺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어요.
이 글을 읽는데 언니의 소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이분은 아파서 중단했다고 했는데 아픔은 꼭 몸만이 아니고 마음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과 함께요.
시험 기간이라 파주에 다녀왔어요.
거기에 이율곡 유적지가 있더군요.
장식이 많지 않은 넓은 풀밭과 굵직한 소나무, 느티나무들이 몹시 아름답더군요.
세 시간 반 정도 머물다 왔어요.
아주 좋은 시간이었어요.
거기는 여기보다 좀 더 춥겠지요?
알프스 기슭 언니네 정원은 겨울에 어떻게 되는 건가요?
궁금해지네요.
제가 뿌린 알타리 씨앗은 아주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답니다.
내일 새벽에는 봉투 들고 가서 많이 솎아 오려고 해요.
주위의 좋은 분들과 편안한 시간 지내시기를 바래요.
오랜만에 안부 전합니다.
나는 요즘 생업에 바뻐 근교에 못나가고 있어요.
겨울에는 눈에 폭 덮인답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털장화를 신고 듬성 듬성 다니지요.
이번 주말에는 당일치기라도 다녀오리라 작정하고 있어요.
가을이 예쁘게 물드는 곳에가서 제마음도 예쁘게 정돈하려고요.
지난 발칸 여행중 한밤중에 일어나 누군가와 대화하듯이 글을 적었고요
돌아와서도 낮에는 생업에 쫒기다가 밤에는 이곳에 들어와 다시 대화를 하며
저를 정화시키고 있어요. 이번달 내내 이리 바쁠 것같아요.
문득 문득 지난 날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찾아오면 글로 풀어 낸답니다.
이러다가 또 중단할지도 모르지만 글이 가는 데로 가보려고요.
좋은 글정보 고마워요
잠이 들려고 하는데 따르릉 ... 전화가 온다.
" 여보세요,"
" 제이드, 아직 안 자요?"
" 파울!잘 돌아 갔어요? "
" 그럼요. 그런데 잠이 안 오네요. 그냥 거기에서 있을 것 그랬나 봐요."
" 아니에요. 집에서 편히 자고 내일 대학수업에 가야지요. 오늘은 못 갔잖아요."
" 제이드, 내가 내일은 거기서 지낼게요. 그곳에서 제이드가 마지막 지낼 것이 잖아요."
" 좋을 대로 하세요.
저도 이곳에 정이 들어 모레 떠날 적에 슬플 것 같아요"
" 언제나 헤어지는 것은 슬픈 것이지요. 그럼 좋은 꿈꾸고 잘 자요. 구테 나흐트!"
"구테 나흐트!" 여자도 독일어로 인사하고 전화기를 내려 놓는다.
그리고 나서도 한동안 잠이 안 와 들척이다 잠이 들었다. 동트는 여명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창가로 가 바깥경치를 바라보다 깜짝 놀란다. 파울의 차가 보이는 것이다.
아니 ? 언제부터 그가 와 있는 것인가? 지난 밤중에 와서 옆방에서 잔 것인가? 여자는 침대로 돌아와 가만히 옆방의 소리를 귀기울인다. 전혀 기척이 없다.
다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아래 차를 쳐다 본다. 운전석대에 엎드린 파울이 보인다,
아니 밤새도록 저리 밤을 새웠는가?
여자는 옷을 주섬거려 차려입고 가만히 방을 나온다. 계단을 내려 오는데 가슴이 마구 뛴다. 다시 올라 갈까? 모른척 할까?
리셉숀에는 아무도 없다. 호텔문을 열고 주차장으로 간다.
파울의 차 앞에 선다. 그는 계속 운전대에 머리를 대고 있다.
" 똑! 똑!" 그녀가 차창문을 노크한다. 파울이 깜짝 놀라며 머리를 든다.
" 어서 문 열어요. "그가 차문을 열어주고 그녀가 옆자리에 앉자 쑥스럽게 웃으며
" 구텐 모르겐! 벌써 일어 났어요?"
" 아니 언제부터 여기 있는 거에요?"
" 조금 전에 왔어요. 도저히 잠이 안 와서요. 여기 오니 잠이 쏟아 지네요."
" 그럼 방으로 가지 왜 이러고 있어요."
" 내가 들어가서 소리를 내면 제이드가 깰 것 같아서요."
" 자, 이제 나는 어차피 잠이 깼으니 어서 방으로
가서 좀 편히 누우세요."
" 제이드, 이제 나 그냥 돌아 갈께요. 제이드를 보아서 맘이 놓여요.나는 꼭 제이드가 그냥 떠날 것 같았어요."
" 파울이 이리도 소년 같은 데가 있어요?
어젯밤 우리 전화했었잖아요.."
" 그래도... 제이드, 당신 곁에서 당신을 가까히 느끼고 싶었어요."
"....."
" 제이드, 미안 해요 내가 부담 안 준다고 해놓고는 또 이러니..."
" 파울, 어서 방으로 들어가요. 눈 좀 붙여야지요."
" 그럴까요.. 그럼"
여자가 먼저 차문을 열고 나와 선다. 그리고 그가 문을 닫은후 둘이서 나란히 이층으로 올라온다. 여자가 그녀의 방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고 문을 열고 들어선다. 파울도 머리를 꾸벅하더니 자기방으로 간다.
방으로 들어 온 여자는 더 이상 침대에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촉각을 옆방으로 향한다.잠시 옆방에서 옷장문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여자는 조용히 침대에 눕는다. 라디오의 시계를 보니 다섯시가 조금 지나고 있다. 아무래도 파울이 저러다가는 병이 날것 같다. 어쩌나...
여자는 다시 일어나 방을 서성인다. 무엇이 이토록 파울을 흔들리게 하는가.. 또한 그의 흔들림이 나에게 이처럼 파장치는 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 누구세요?“
" 엄마, 나야“
여자는 문을 열어주며
" 잘 잤니?“
" 엄마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 그래.. 소연이 언니는?“
" 언니는 산책나갔어요.. 여기가 너무 좋대. 나는 엄마보고 싶어서 이리로 왔지“
" 그래 지금 몇시인데 벌써 산책을 ... 어머 8시네..
엄마도 세수하고 아침먹을 준비를 해야겠다..“
" 히히! 울 엄마 늦잠꾸러기네.. 난 벌써 마쳤는데.. 엄마
나 배고파.“
" 그러게 말이다, 엄마가 요즘 엉터리다 그지? 빨리 준비할게.“
딸애랑 얘기 하면서도 여자는 옆방의 파울이 신경쓰인다.
아직 자나? 하긴 새벽에 자리에 들었으니...세면을 마치자 딸애랑 식당쪽으로 향한다.
" 엄마!, 저기
교수님이 있어“
그가 어느새 일어나 가든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있다. 하얀 셔츠를 입은 그가 오늘따라 얼굴이 더 하얗게 보인다.
" 구텐 모르겐, 은지! 그리고 제이드!“ 인사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온다.
" 구텐 모르겐 프로페소아!“ 은지는 그를 따라 독일어로 인사를 한다. 여자는 아무 소리 없이 파울을 바라본다.
" 제이드!, 왜 이리 쳐다보아요. 내가 어디 이상해요?“
" 잠을 그리 안 자고 어쩌려고요.... 저 아무래도 오늘 귀가해야겠어요.파울이 이러다가 병 날것 같아요.“
"제이드, 계획대로 내일 귀가해요. 나는 아침먹고 좀 더 쉬면 되어요. 아무 걱정 말아요.“
" 학교는 안 가요?“
" 내일까지 휴강한다고 해 놓았어요. 어제 벌써..“
소연이가 산책에서 돌아온다.
" 어머! 교수님께서 벌써 오셨어요. 주차장에서 교수님차 비슷한 것인가 했더니, 교수님 차였군요. "
" 부지런 하네 소연이는.. 자 어서 우리 아침을 먹읍시다.“
아침을 들면서 파울과 여자는 아무소리도 안한다.
아침식사가 마치자마자,
" 엄마! 나 지금 승마하러 가면 안돼? 소연 언니도 같이..“
" 글쎄.. 승마선생님하고 몇시로 약속 했는지 알아 봐야겠다.“
여자가 파울에게 전하자,
" 내가 예약할께요. 조금만 기다려요.“ 그가 자리를 떠난다.
은지와 소연은 나이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계속 키득거린다. 파울이 돌아온다.
" 오케이, 십 분 후에 승마장으로 가면 됩니다.“
소연이가 파울 말을 듣고는 은지에게 전하자,
" 야호! 언니, 그럼 빨리 가자! 엄마! 교수님! 안녕!“ 인사를 하자마자 뛰어간다.
" 은지야 조심해!“
" 응! "
얘들이 나가자 둘이는 윗층으로 올라온다. 여자가 방문앞에 선다
" 파울! 어서 눈 좀 더 붙여요.. 나도 의사가 왕진 올 때까지
좀 쉴께요.“
" ................“
아무 말도 안 하는 그를 그대로 놔두고 여자는 방문을 연다.
파울이 그 순간 여자를 뒤에서부터 껴 안는다.
여자는 그의 체취에 숨이 막히는 듯하여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키가 큰 파울이 머리를 숙여 여자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묻으며 여자의 머리카락을 흐트린다. 여자는 점점 숨이 막혀온다.
로렌스옹의 모습이 떠오른다.
안돼!
( 2부 마침 )
Giuseppe Verdi,La Traviata Ouver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