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한 여자 (14) 사람들의 음악이 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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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생각하니 지금처럼 침대에 누워지내는 것이 아깝다호! 나 정말 웃기네.. 아니 여기에서 지내는 동안은 모두 여행이면서도 ..하긴 그러니까 한곳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이 생각 저생각 하는데  어제 의사가 왕진을 왔다.

? 굳 모닝! 혈색이 좋아 보이네요. 좀 푹 쉬었어요?“

? 굳 모닝! , 여기가 조용하니 저절로 맘도 푸근해지네요.“

 

혈압을 재고 영양제를 놓아준다그러는 사이 비올렛이 찾아와 은지를 데리고 승마시키러 갔다.

 

? 한 이삼일 편히 지내시면 회복이 되겠어요. 식사도 열심히 하고요.“

? ...제가 그 후에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요.. 괜찮겠지요?“

? 어지러운 것 없어지면 괜찮지만 다니면서 음식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식사를 제대로 못하면 다시 현기증이 날지도 모르지요.“

? 아, 그것은 걱정마세요. 딸애랑 다니니까 식사는 제대로 챙겨 먹을 거에요.“

? ... 따님하고 다니신다고요? 둘이서만?“

? 며칠간은 다른 학생도 대동하고요.. 그 후에는 우리만요

? 예, 그럼 제가 내일 까지 상비약을 준비해 드릴게요. 다니시다 필요할 때 복용하세요. ?
? .. 정말 감사드려요. 이리 배려해주시니...“

? !!! 저의 첫 번째 한국 환자분이시니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요.하하하!“

 

어머! 이 의사분이 농담도 하시네.

 

? 똑! 똑! ? 노크가 들린다

여자가  팔에 영양제를 맞고 있는 상황이라  움직이지를 못한다의사가 대신 문으로 가서 열어 준다.

 

? 어머! 은지 어머니! 많이 편찮으셔요?“

소연학생이 들어 오며 걱정의 소리를 한다두 손에는 여자의 여행 가방과 두툼한 쇼핑가방이 들려있다.

그 뒤에는 파울이 웃으며 서있다.

 

? 소연 학생 걱정 말아요. 좀 어지러운 것이에요. 이렇게 누워있으니 내가 무슨 병자 같지요? 주사 다 맞고 일어나면 평소 같아요.“

? 그래도요..조심하셔야지요.우선 비엔나 집에 있는 것 중에서 좀 골라 왔어요그리고 로렌스 교수님하고 동양상회 가서 은지간식거리와 라면도 사왔어요은지가 한국음식 먹고 싶을 거라고 교수님이 그러셔서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 어머.. 나도 생각 못했던 것을.. ?

 

여자가 소연 학생하고 얘기 나누는 동안 파울은 의사와 여자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의사가 여자에게 닥아 온다.

?주사 바늘은 어제처럼 로렌스 교수님께서 빼드릴 거에요저는 이제 돌아가고 내일 다시 올게요. 그때 상비약도 가져오지요.“

? , 안녕히 가세요


그와 작별이 마치자 파울이 가까히 다가온다.

? 제이드, 오늘 내가 얼마나 바뻤는지 알아요그런데 지금 여기 도착하니 한없이 여유가 생기네요.“

? 대학에는 안 가셨어요? 이리 빨리 오시고요.“

? 조교에게 연락해 두었어요. 어차피 학기 방학이 얼마 안 남아서 요즘은 좀 한가한 편이거든요.. 제이드가 여기 있는 동안만이라도 같이 지내고 싶어서요. 소연 학생은 영어, 독일어 모두 능통하니 대화가

잘 되고 좋네요.. 참 한국어도 잘 하겠지요? 하하하!“

 ? 교수님! 농담도 잘 하시네요.. 저는 은지 한테 가볼께요은지 어머니,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준비해 올게요.“

? 아니, 없어요. 어제 전화로 부탁한 것 준비해 왔으면 되었어요조금 있으면 점심 식사때이니까 은지에게 가 봐요

? 은지 어머니. 저에게 존댓말 하지 마세요. 조카처럼 말을 놓으세요.“

? 그래요.. 천천히 그럴게요. 그나저나 이렇게 소연 학생 시간을 뺏어서 어떡하죠?“

? 며칠 저도 쉬려고 했었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여기 처음 왔는데 너무 제 맘에 들어요. 그래서 고마워요오히려.“

 

참 말도 예쁘게 하네..

 

소연이가 나가자 여자는 파울과 단둘이가 된다둘이는 잠시 묵묵하다파울이 음반들을 살펴본다.

? 제이드, 어떤 음악을 듣고 싶어요?“

? 판이 그리 많아요?“

? 어머니가 모아 놓으신 것이라 성악곡이 대부분이에요.“

? 갑자기 곡이 떠오르지 않네요. 참! 모짜르트 심포니를 듣고 싶어요 그런데 여기서 지내다 보니 이곳의 고요함이 점점  좋아지네요어제 말씀해주신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이 이제서야 이해되는 거에요. 고마워요

?주사 마치고 점심 먹은  후 우리 모두 비엔나 숲으로 나갑시다아! 여기 모짜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이 있어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곡이에요.“

 

파울이 음반을 올리고 곡을 틀자 온방안에 음악이 꽉 차온다.

며칠 후면 모짜르트의 고향 잘츠부르그로 갈 거지.. 어서 몸을 추스리자.

 

? 음악이 참으로 좋네요..한국에서 피아노로 반주한 적이 있어요.역시 오케스트라와 하니 진미가 있어요.

 참. 그리고 숲 산책하는 것은 은지가 돌아오면 상태를 보고요승마연습으로 지쳤으면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 당신이 은지 얘기를 할 때 보면 역시 엄마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구나 싶어요나는 자식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은지 생각에는 모자라군요.“

? 아니에요. 오늘도 은지 간식 챙기신 것 보면 엄마 보다 나아요 . 호호!“

? 당신이 웃는 것을 보니 이제 좀 나아진 것 같아 안심이 되네요. 하하하!

 

복도 쪽에서 좀 왁짜한 소리가 나더니 은지와 소연이가 방으로 들어온다땀이 송송난 딸애가 기분이 좋다.

? 엄마! 나 오늘 정말 신나.. 소연 언니가 오니까 정말 정말 신난다한국말을 하니까 말이야.“

? 그렇게 좋아?“

? , 엄마 나 지금 배고파. 소연 언니가 그러는데 라면 가져왔다고..그것 먹어도 되지?“

 

. 어린 것이 저리도 한국음식이 그리웠나?

 

여자는 소연이에게 호텔주방에 가서 부탁하라고 시킨다딸애와 소연이가 나가자 파울은 영문을 몰라 눈이 둥그래졌다여자가 설명을 해주니 웃으면서,

? 저런 꼬마를 데리고 어디로 여행을 간다고 해요.. 비엔나에서 쉬다가 칠월에 연수 받고 나와 독창회 해요.“

 

.....

 

여자는 아무소리도 않는다.

 

? 제이드는 꼭 여행하고 싶은가 봐요..얼굴에 그렇게 써있어요.“

? 그래요? 일단 저의 현기증이 없어지는 걸 보고요.“

 

파울이 링게르 주사가 얼마 남았나 보다가

? 이제 뽑아야겠어요. 벌써 시간이 이리 지났나요제이드하고 있으면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가는 것 같은지...“

 

주사를 뺀후 반창고를 붙여준다그의 손길이 그녀의 피부를 닿자 여자가 훔찔한다파울이 짐짓 모른 척하며 모든기구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 제이드! 그럼 가져온 물건들 정리 좀 해요. 나는 내려가서 점심식사 준비 시킬게요. ?

? , 저는 따뜻한 스프정도면 되어요.“

? 안 돼요. 의사 말이 당신 영양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대요.알아요?“

? 그래도 느끼한 것은 거북해요.“

? 오케이. 그럼 좀있다 아래로 내려와요.“

 

파울이 나가자 여자는 가방을 열어 옷을 꺼내 갈아입는다엊그제부터 얼마나 옷을 갈아입었던가  한참동안 같은데 사실은 어제와 그제 이틀에 일어난 일들인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순간이 영겁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싶은 때가 있고 오랜동안의 일이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때도 있다요즘 여자에게는 이런 현상이 번갈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얀 면티에 하얀 긴 치마를 받쳐입고 얇은 하얀 부라우스를 걸친다장농 거울 앞에서 서 보니 너무 흰색이다화장기 없는 얼굴이 흰색에 대비하여  누렇게 보인다.

 

.. 그냥 되는데로 입어야지 어째.

 

흰 옷들을 벗어내고 베이지색에 신문지 종이처럼 영문 갈색무늬 들어간 긴 스커트에 같은 천으로 사파리 남방형 부라우스를 허리에 집어놓고 좀 넓은 검은벨트를 찬다며칠 전 여행갈 준비를 하며 동네 부틱에서 사 놓았던 것이다화장은 안하고 입술만 살짝 바른후 아랫층으로 내려간다.


로비에 있던 모두가 놀란눈들을 한다.

? 엄마! 우리 엄마 맞아요?“

? 아줌마! 언제 그 옷을 ? 멋지네요.“

파울은 아무 말도 안하고 웃음가득히 쳐다본다.

 

? 얼마 전에 산거야. 길이가 길어서 줄일까 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지금은 그냥 입어야지 뭐.. 무슨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하는 여자 모습이지? 호호!이제부터 반말한다.

? 예, 그렇게 말을 놓으세요. 정다운데요, 호호!그리고 . 요즘 유행이 롱스커트이잖아요아줌마! 너무 잘 어울려요. 자르지 말어요. 그게 더 멋진데요.“

? 알았어. 호!?

?제이드가 내려오기 전에 소연이하고 의논했는데요점심 식사후 소연이는 은지랑 그냥 호텔에 있겠데요. 좀 쉬고 싶다고..제이드는  나랑 잠시 드라이브하며 근처를 돌아 보지요그냥 침대에서만 지내는 것도 건강에 안 좋을듯해요.“

? 소연아, 그렇게 쉬고 싶어? 같이 가지.“

? 아줌마. 저 그냥 은지랑 한국말 하면서 쉬고 싶어요그런 것 있잖아요.독일어 듣고 말하는 것을 라디오 스위치 끄듯이 스톱하고 싶은 것...“

?그동안 이곳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나 보구나. 그럼 그리해은지도 한국말 고팠나 보다. 어제오늘 엄마랑 떠나 지냈었거든 . 은지야 그렇지?“

? 엄마. 나 그냥 언니랑 침대에서 뒹굴래. 언니가 동화책도 가져왔어

 

여자가 파울에게 말을 전해준다.

? 그럼 소연 학생방에 침대가 두 개 있으니 은지랑 같이 써도 되겠네요, 그럼 우리 식당으로 갑시다.“

 

딸애는 이미 라면을 먹었다고 간단히 먹는다식사 내내 은지와 소연이 키득거리는 것을 보는 파울은 신기한가 보다.

? 은지가 행복해 보여 다행이에요. 그동안 말친구가 없어 힘들었었나 보네요

 

식사를 마치고 2층으로 올라와 소연학생방을 들여다 본다창가에 꽃들이 밖으로 늘어진 것이 하얀 얇은 커텐뒤로 보인다목재가구도 오스트리아 전통적이다.침대가 두 개 놓여 있다.

? 엄마! 여기서 언니랑 같이 지내는 것 맞아요? ?

? 그래, 근데 너는 그리 신나니? 엄마랑 지내는 것 보다도? 섭섭하네

? 아이, 엄마방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서  내가 맘대로 움직이지 못 하잖아요그리고 소연언니랑 처음으로 지내니까..

 

딸애가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니 여자도 흐믓하다.

 

? 자 그럼 제이드, 우리는 이제 드라이브 가지요.. 우리 공주님들은 편히 쉬고 계시고요 하하하!맛있는 거 사올게요.“

 

모두들 파울 차 주차한 곳으로 온다파울이 차 문을 열어준다.여자가 오른다.

 

? 그럼, 좀 있다 보자.“

? 아주머니 걱정 놓으시고 재미있게 지내셔요

? 엄마! 아주 아주 천천히 와! 그래야 언니랑 싫컷 놀지 ?

 

파울이 문을 닫고 시동을 건다여자는 차가 호텔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 동안 백미러로 딸과 소연이 안 보일 때까지 쳐다본다.

? 제이드, 그리 안스러워요. 은지를 놔두고 오는 것이...“

? 글쎄, 여기가 외국이라 그런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곧잘 친정아버지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했었는데요..“

? 아버님께서 손녀를 봐주어요. 어머니는요?“

?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 그래요? 그럼 우리 모두 엄마 없는 반 고아이네요아, 그래서 제이드가 은지를 유독히 아끼는 군요. 엄마사랑을 흠뻑주려고

? 그럴지도...“

 

차는 기분좋게 달린다. 파울이 일부러 서행을 하는 것이다.

 

? 제이드 조기 아래 십자가가 보이지요..거기가 '하일리겐크로이츠라는 수도원이에요옛날에 하이든, 슈베르트등 이곳에서 오르겐 연주를 했었지요지금도 올겐 연주회가 종종 있어요.제가 전에 이곳에서 독창을 했었어요그래서 수도원 종사자들이 저를 잘 알고 있어요제이드 하고 같이 가면  무척 좋아할 거에요.“


Heiligenkreuz_kl.jpg


파울이 설명하며 내려오는 동안 이미 차는 주차장으로 들어선다.수도원 색갈이 거의 흰색에 엷은 분홍, 엷은 파랑으로 선을 두른 모습이 중세적 모습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세워둔 차들만 다른 곳으로 움직여 놓는다면 시대가 영락없는 그때의 모습이리라.

 

차가 선다. 파울이 차를 내려 여자의 문을 열어 주러 온다열린 문 밖으로 오른쪽 다리를 먼저 내놓고 내리려는데  올려간 스커트 옆쪽의 터진 사이로 여자의 허벅지가 언뜻 보인다여자는 깜짝 놀라 스커트를 두 손으로 부여지고  차 바깥으로 나오지를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