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전편 한 여자 (12) 정리 시작... 클릭
-54.-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모든 계획했던 일을 무사히 마쳤다. 처음 방문했던 미술관을 시작으로 몇 군데를 더 돌아 보며 토니와 사진작업을 착착 한 다음 회수한 대여작품을 케른튼으로 부치고 나니 여자는 턱없이 기운이 빠진다.
내가 늙긴 늙은거야.. 예전에는 몇 주동안 강행을 하면서도 날라 다녔구만..
다음 날 비행기 타기 전에 현상한 사진과 사진칩을 받기로 하고 토니와 헤어져 혼자 거리를 걷는다. 비가 내리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요즘 한동안 일기가 30여도를 오르내리더니 비가 내리는 것이 기분을 시원하고 차분하게 한다.
여자의 발걸음은 저절로 파울의 아파트를 향한다. 내일 로렌스옹을 만나기 전에 마음을 정리해 보고 싶은 것일까? 집 앞에 도착하여 열쇠로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깊은 나무그늘 속 마당은 촉촉히 비에 젖고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지 않고 '관리인집'으로 가서 노크를 한다.
" 누구세요?'
" 안녕하세요...저, 후라우 킴이에요"
" 예? ...잠깐만요"
조금 뜸을 들인 뒤 40세가 채 안 되어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연다.
" 마르쿠스씨가 계시나요?"
" 아! 저의 아버지를 찾으시는군요. 지금 안 계시는데요..혹시 로렌스 교수님의 반주자분이세요?"
" 예.. 예전에요. 그런데 아버님은 어디 계신가요?"
" 지금 케른튼 로렌스옹댁에 계세요. 로렌스옹께서 적적해 하신다고 연락이 와서 그저께 가셨어요."
그저께? 그럼 로렌스옹과 내가 연락된 후이네.. 흠.. 우연일까?
" 제가 한동안 여기를 들르지 않아서 요즘 사정을 잘 몰라요. 그럼 이곳 관리인직을 아드님께서 물려 받으셨는가요?"
" 예..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이제는 연노하셔서요. 그러잖아도 아버지께서 로렌스 교수님의 집을 너무 비워 놓는다고 평소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얼마 전 저녁에 피아노 치러 오셨었지요? 피아노 소리를 들으시더니 금방 '아! 후라우 킴이 왔네' 라고 하시며 한동안 경청하셨어요."
" 예... 그러셨군요. 그날은 너무 늦어 인사를 못 드려서 오늘 인사를 드리려 온 것이에요. 언제인가 또 만나겠지요. 그럼 오늘은 이만 ... 안녕히 계세요."
" 잠깐만이요.. 여기 아버지 휴대폰 전화번호 드릴테니 하실 말씀계시면 전화해보세요."
" 아니에요.. 다음에 직접 뵙지요."
여자는 인사를 마치고 파울 아파트쪽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현관 옆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바라본다. 비에 젖은 머리가 자연적으로 웨이브를 나타내고 있다.
가만히 주위를 살펴본다. 지난번보다 어딘가 모르게 환한 분위기이다.
날이 어둡기 전이라 그런가? 아! 겹 커텐이 걷혀있구나...
아무도 안 사는 집이지만 항상 보살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조용히 피아노 방문을 연다.
어머! 꽃이 한아름이네..
탁자 위 화병에 꽃힌 꽃들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향기에 취할듯하여 유리방문으로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여는데,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린다. 잠시 환기를 시킨 후 도로 닫는다. 피아노 방으로 돌아와 음악을 들으려고 판을 고르다가 포르투갈의 민속음악 파두 (FADO) 판을 오디오기구에 올리고 튼다.
비( CHUVA) ... 감정의 기복이 있으면서도 연연히 이어지는 노래가 비오는 지금과 너무 잘 어울린다. 편하게 소파에 몸을 누이고 한동안 음악에 취한다.
Chuva
As coisas vulgares que h? na vida
N?o deixam saudades
S? as lembran?as que doem
Ou fazem sorrir
H? gente que fica na hist?ria
da hist?ria da gente
e outras de quem nem o nome
lembramos ouvir
S?o emo??es que d?o vida
? saudade que trago
Aquelas que tive contigo
e acabei por perder
H? dias que marcam a alma
e a vida da gente
e aquele em que tu me deixaste
n?o posso esquecer
A chuva molhava-me o rosto
Gelado e cansado
As ruas que a cidade tinha
J? eu percorrera
Ai... meu choro de mo?a perdida
gritava ? cidade
que o fogo do amor sob chuva
h? instantes morrera
A chuva ouviu e calou
meu segredo ? cidade
E eis que ela bate no vidro
Trazendo a saudade
.................................................................
Rain
The ordinary things in life
don't bring us nostalgia
Only the memories that make us hurt
Or those which make us smile
There are people that remain in our story
in the story of our life
and others whose the name
we barely care to listen to again
There are emotions that give life
to the longing that I bring with me
Emotions that I had by your side
and I lost a little ago
There are days that leave traces in our souls
and in our lives
and the day you left me,
I can not forget
The rain wet my
cold and tired face
And all the streets in that city,
I had already passed by
Ah ... my crying of lost girl
shouted to the city that
the fire of love in the rain
just now died
The rain listened to my secret
and shared it with the city
And now, rain taps on my windows
bringing the longing back
................................................................
라이브녹음으로 간간히 섞여 들리는 박수소리에 바로 그곳 공연장에 같이 있는 느낌이 들며 동시에 파울과 연주하며 받았던 박수소리가 들리던 곳들이 떠오른다.
오스트리아의 비인,잘츠부르그,그리스의 코르푸섬,독일의 함부르그,뮨헨,포르투갈의 리스본,그리고...가장 열정적인 도시는 리스본이었지. 조용한 독일 예술가곡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던 그들...무엇이 그들의 감정을 흔들게 하였던가...
여자가 듣는 포르투갈의 언어는 전혀 생소한 언어이지만 곡으로부터 닿아오는 느낌은 가슴을 흔든다. 그네들에게도 조용조용한 독일어 곡으로부터 연연한 느낌이 그랬던 것일까?
파울은 유달리도 포르투갈을 좋아했다. 자신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와지면 포르투갈에서 살 것이라고 누누히 말했었다. 그리고 '파두'를 정식으로 배워 부를 것이라고도...여자는 그때 못 믿겠다는 듯이 웃었었다.슈베르트의 서정적인 목소리가 어울리는 그가 어찌 목을 쥐어짜듯이 부르는 목소리하고 어울리겠는가 .. 라고. 그러니까 모든일에서 자유스러워지면...즉,클래식 발성법을 할 필요가 없어지면 새롭게 하겠다는 것.. 이라고 대답했었지.
인생에서 우리 사람들은 자주 착각을 한다.'어떻게 된다면,...이렇게 할 것이다.' 라고.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나의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 나는 언제 정말로 어떤 가정을 하면서 결심을 세운 적이 있었던가?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그녀의 맘속에 들어온다.
.....
The rain listened to my secret
and shared it with the city
And now, rain taps on my windows
bringing the longing back
..........
아! 제이드의 소식이 드디어 왔다. 잘츠부르그에 머물고 있다. 내가 소개해 준 산장 호텔주인이 제이드가 그곳에 머물고 있다고 전화해주었다. 주인이 바꾸어 준 제이드의 전화 목소리가 밝은 것을 들으니 여행이 즐거운 것이 틀림없다.내일 찾아 갈 것이다. 가슴이 두근 거린다. 클라우스도 그곳에 가족과 머물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녀는 내가 클라우스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안다. 내가 그녀를 보러 일부러 간다면 그녀가 그곳을 떠날것 같아 그리 말했다.
이번에는 내 진심을 말할 것이다.다시는 그녀를 혼자 보내지 않겠노라고..
아니, 그러면 그녀가 그냥 떠나버려 아주 못 만나게 될지도 ..
그래 참자. 그냥 잠깐 볼 수만 있어도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두근 거림을 하늘도 아는지 지금 비를 내리며 나를 식혀주고 있다.
오늘 밤은 잠이 안 올것 같다. 저 비는 내 맘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멎어다오. 화창한 날에 환하게 제이드를 보게 해다오.
제이드 ! 잘 자요. 내일 봅시다.
나도 이제 눈을 부치도록 할게요.
구테 나흐트!
(계속)
옥인 선배님!
오늘은 모처럼 한가하여 이곳에 들어왔답니다
한 여자를 통해 만나지는 사람 사람들속에 내리는 빗속에 젖어 있다 갑니다
소중한 글 감사드려요
늘 평안을 빕니다
기다리던 글이 드디어 올라왔군요.
조금씩 궁금증이 풀려가네요.
파울과의 음악회를 했는지가 사실 가장 궁금했거든요.
현실적이고 드라이한 면이 강한 저도 을씨년스러운 추석을 보낸 후에 마음이 좀 삭막해지던 차에 정말 반가웠어요.
명옥선배님 !
추석에 바쁘셨지요..
제일 획심적인 궁금증이 풀렸나요? ㅎ
음악의 힘은 대단해요...
제가 이 음악을 들으며 글쓰다보니 저절로 글이 술술 나가더라구요^^
지금도 계속쓰고 싶은데 ... 일해야 되어서요. 그럼 또 뵈어요. 저도 선배님 글 반가웠어요.
Gute Nacht!....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여기에 적은 파울의 인사는 바로 여자가 현수의 반주를 비엔나 음악대학으로 해주러 갔다가 처음으로 파울을 만나고 그의 부탁으로 그를 위해 반주를 처음했던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연가곡에서 처음 시작하는 곡이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세번이나 연속되는구나....
Die Winterreise Op.89, D.911,?제1곡. Gute Nacht [ Good Night ]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나는 떠난다.?
5월은 내게 친절하였네, 피어 만발한 꽃으로.?
그녀는 사랑을 속삭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까지 약속했건만,
-?이제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고, 길은 눈으로 덮혔네.?
난 내 여행을 떠날 때를, 정 할 수 없지만;? 내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하네, 이 어둠 속에서.?
달빛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함께, 그를 벗 삼아 떠나리 ?짐승의
발자욱을 따르리 ,
이 하얀 벌판에서.?내가 왜 기다리며 서성여야 하는가,
사람들이 날 쫓아낼 때까지? ?길 잃은 개는 짖게 내버려 두자,
자기 주인의 집 밖에서? 사랑은 방황을 좋아하네,
신은 사랑을 그렇게 만들었네? 이 곳 저 곳을 방황토록.
내 사랑 이젠 안녕!? 너의 단 꿈을 방해하지 않으리,
너의 편안한 휴식을 허뜨리지 않으리;? 발걸음 소리 조차
들리지 않도록 ,
살며시 살며시 문을 닫고! ?떠나는 길에 그문에 적어 놓으리, "안녕히"라고,?
그러면 넌 보리라 , 내가 너를 생각했었음을
독일의 시인 뮬러는 왜 연작시의 첫 번째를 밤인사로 시작했을까? 일반적으로 긴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침에 떠나는 모습일텐데 왜 이 나그네는 해도 짧은 겨울에 이미 어둠이 내린 즈음에 떠나는 풍경으로 그렸었을까?
세상에 어느 것, 어떤 일이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이 곡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연관은 유별나구나 싶기도...
.........
파울이 ' 구테 나흐트!' 라고 처음으로 여자에게 인사하고 옆방으로 가던 날...
쓰러진 여자 방으로 찾아와서 따뜻한 스프를 시켜주고는 음식이 방에 도착하자 힘없이 핼쑥한 그녀를 위로하듯이 품어주었다. 여자는 엉겹결에 안기면서도 한 순간 영원히 그리 머무는 느낌을 받았었다.말없이 그러던 그가 어서 음식이 식기전에 들라고 하며 ' 구테 나흐트!' 라고 인사말하고 자기방으로 돌아 갔었다.
여자는 그 밤에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바로 옆방에서 들리는 그의 움직임이 너무나 가까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창문을 여닫는 소리, 간혹 들리는 기침소리, 아주 한밤중부터 내리던 빗소리..
한국에 전화를 하려던 것을 못하였다. 그녀가 전화하는 목소리를 그도 들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틈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동이 트기 시작하고.
아침을 같이 하자고 그가 전화를 해주었는데,
...구텐 모르겐! ( 좋은 아침!) 제이드! 호텔식당에서 같이 식사할까요? 아니면 그냥 방으로 식사를 가져오라고 할까요?
아. 방에서 같이는 어색.
...식당에서 간단하게 하지요.
...그럼 제가 가든에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할께요. 한 십분후에 제이드 방 앞에서 만나요
...예.
대답을 한 후 은지의 차림을 매만지고 호텔에 준비된 세면도구로 가볍게 닦은다음 화장품 상비를 못 했었기에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복도로 나갔다.이미 방문 앞에 서있던 그가 환하게 웃으며,
? 구텐 모르겐! 은지 프린체신! “ 은지의 볼을 살짝 만지며 인사를 한다.
? 구텐 모르겐! 프로페소아! “ 은지는 어느덧 그의 아침인사를 그대로 흉내 내며 인사한다.
그가 신기한 듯 딸애를 보다 여자에게 다시 인사한다.
? 제이드!
좋은 아침!“
? 파울! 당신도요“
가든에 마련한 곳에 도착하니, 이미 쥬스를 비롯한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었다.
?제이드, 우리 셋이서만 처음으로 하는 아침 식사네요. 오늘은 제가 대접하는 대로 놔 둘래요?“
? 예,
그런데 너무 많이 시키지 마세요“
? 저기 부페식사가 차려 있지만 , 아직 제이드가 회복이 안 되었으니 제가 적당히 주문할게요. 그게 좋겠지요?“
참, 이 사람은 어찌 이리도 자상할 수 있을까?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종업원이 닥아오자 그가 주문을 한다. 그동안 여자는 은지의 손을 꼬옥 잡으며,
? 은지야, 이따가 소연언니가 올거야.며칠 동안 여기서 지낼거거든.괜찮지?“
? 엄마,
정말? 그럼, 나 말 탈 수 있겠네 ..“
? 글쎄,
엄마가 말을
아직은 못 잡아 주겠는데..너 그렇게 말 타는게 좋으니?“
? 응,
얼마나 신나는데“
모녀가
얘기하는 모습을 정감어리게 쳐다보던 파울이 물어본다.
? 무슨 얘기를 하는데
은지가 저리 좋아해요?“
? 여기서 며칠 머문다니까
승마를 할 수 있느냐고 묻네요“
? 물론 되지요. 여기 승마선생이 잘 돌봐 줄 거에요. 내가 식사 후에 호텔측에 예약을 할게요.“
? 그럼, 그리 해주세요.
제가 아직은 은지 돌보기가...“
? 제이드,
당신은 절대 승마장 곁에도 가지 말아요. 어제 생각을 하면.. 휴!..“
음식들이 도착하고 셋이서 가족처럼 식사를 한다. 문득 문득 파울이 여자를 쳐다보다가,
? 제이드,
화장 안 한 모습이 제 맘에 더 들어요.“
.. 그런 얘기를 이리 직접적으로 하다니...
발개지는 모습이 보일까 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음식접시만 바라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가 비엔나로 떠나면서 ,
? 제이드, 점심쯤에 돌아올게요. 그냥 방에서 쉬어요. 10시쯤에 어제 그 의사가 왕진와서 영양제를 한번 더 놓아 줄 거에요. 그 쯤에 제이드 대신 은지를 보살필 비올렛이 은지를 승마장으로 데려갈 거에요. 오늘부터 은지를 위한 승마 기초연습 선생을 부탁해 놓았으니 걱정 안 해도 되고요.“
?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어서 고마워요.“
? 나는 이렇게 제이드와
가까워지는 것이 기뻐요. 은지와도 ..자, 그럼 잠시 안녕!“
작별인사를 하며 여자의 볼에 살짝 키스를 한다. 여자가 잠시 뒤로 몸을 빼며 쭈빗한다. 둘이를 바라보던 딸애의 눈이 커다래진다. 파울이 허리를 굽혀 은지에게도 볼키스를 해준다. 은지는 받으면서 여자를 쳐다보며 눈웃음을 준다.
얘는 어쩌면 적응을 이리 잘 하누..
(계속)
Chuva (Mariza - Concerto em Lisb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