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한 여자 (12) 정리 시작...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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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모든 계획했던 일을 무사히 마쳤다. 처음 방문했던 미술관을 시작으로 몇 군데를 더 돌아 보며 토니와 사진작업을 착착 한 다음 회수한 대여작품을  케른튼으로 부치고 나니 여자는 턱없이 기운이 빠진다.


내가 늙긴 늙은거야.. 예전에는 몇 주동안 강행을 하면서도 날라 다녔구만..


다음 날  비행기 타기 전에 현상한 사진과  사진칩을 받기로 하고 토니와 헤어져 혼자 거리를 걷는다. 비가  내리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요즘 한동안 일기가 30여도를 오르내리더니 비가 내리는 것이 기분을 시원하고 차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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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발걸음은 저절로 파울의 아파트를 향한다. 내일 로렌스옹을 만나기 전에 마음을 정리해 보고 싶은 것일까? 집 앞에 도착하여 열쇠로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깊은 나무그늘 속 마당은 촉촉히 비에 젖고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 않고 '관리인집'으로 가서 노크를 한다.


" 누구세요?'

" 안녕하세요...저,  후라우 킴이에요"

" 예? ...잠깐만요"

조금 뜸을 들인 뒤 40세가 채 안 되어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연다.


" 마르쿠스씨가 계시나요?"

" 아! 저의 아버지를 찾으시는군요. 지금 안 계시는데요..혹시 로렌스 교수님의 반주자분이세요?"

" 예.. 예전에요. 그런데 아버님은 어디 계신가요?"

" 지금 케른튼 로렌스옹댁에 계세요. 로렌스옹께서 적적해 하신다고 연락이 와서 그저께 가셨어요."


그저께? 그럼 로렌스옹과 내가 연락된 후이네.. 흠.. 우연일까?


" 제가 한동안 여기를 들르지 않아서 요즘 사정을 잘 몰라요. 그럼 이곳 관리인직을 아드님께서 물려 받으셨는가요?"

" 예..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이제는 연노하셔서요. 그러잖아도 아버지께서 로렌스 교수님의 집을 너무 비워 놓는다고 평소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얼마 전 저녁에 피아노 치러 오셨었지요? 피아노 소리를 들으시더니 금방 '아! 후라우 킴이 왔네' 라고 하시며 한동안 경청하셨어요."

" 예... 그러셨군요. 그날은 너무 늦어 인사를 못 드려서 오늘 인사를 드리려 온 것이에요.  언제인가 또 만나겠지요. 그럼 오늘은 이만 ... 안녕히 계세요."

" 잠깐만이요.. 여기 아버지 휴대폰 전화번호 드릴테니 하실 말씀계시면 전화해보세요."

" 아니에요.. 다음에 직접 뵙지요."


여자는 인사를 마치고  파울 아파트쪽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현관 옆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바라본다. 비에 젖은 머리가 자연적으로 웨이브를 나타내고 있다.


가만히 주위를 살펴본다. 지난번보다 어딘가 모르게 환한 분위기이다. 

날이 어둡기 전이라 그런가? 아! 겹 커텐이 걷혀있구나...

아무도 안 사는 집이지만 항상 보살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조용히 피아노 방문을 연다.


어머! 꽃이 한아름이네..


탁자 위 화병에 꽃힌 꽃들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향기에 취할듯하여 유리방문으로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여는데,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린다. 잠시 환기를 시킨 후 도로 닫는다. 피아노 방으로 돌아와 음악을 들으려고 판을 고르다가 포르투갈의 민속음악 파두 (FADO) 판을 오디오기구에 올리고 튼다.


비( CHUVA)  ... 감정의 기복이 있으면서도 연연히 이어지는 노래가 비오는 지금과 너무 잘 어울린다. 편하게 소파에 몸을 누이고 한동안 음악에 취한다.


Chuva

As coisas vulgares que h? na vida

N?o deixam saudades
S? as lembran?as que doem
Ou fazem sorrir

H? gente que fica na hist?ria
da hist?ria da gente
e outras de quem nem o nome
lembramos ouvir

S?o emo??es que d?o vida
? saudade que trago
Aquelas que tive contigo
e acabei por perder

H? dias que marcam a alma
e a vida da gente
e aquele em que tu me deixaste
n?o posso esquecer

A chuva molhava-me o rosto
Gelado e cansado
As ruas que a cidade tinha
J? eu percorrera

Ai... meu choro de mo?a perdida
gritava ? cidade
que o fogo do amor sob chuva
h? instantes morrera

A chuva ouviu e calou
meu segredo ? cidade
E eis que ela bate no vidro
Trazendo a saud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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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The ordinary things in life
don't bring us nostalgia
Only the memories that make us hurt
Or those which make us smile 

There are people that remain in our story
in the story of our life
and others whose the name
we barely care to listen to again

There are emotions that give life
to the longing that I bring with me
Emotions that I had by your side
and I lost a little ago

There are days that leave traces in our souls
and in our lives
and the day you left me,
I can not forget

The rain wet my
cold and tired face
And all the streets in that city,
I had already passed by

Ah ... my crying of lost girl
shouted to the city that
the fire of love in the rain
just now died

The rain listened to my secret
and shared it with the city
And now, rain taps on my windows
bringing the longing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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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녹음으로 간간히 섞여 들리는 박수소리에 바로 그곳 공연장에 같이 있는 느낌이 들며 동시에  파울과 연주하며 받았던 박수소리가 들리던 곳들이 떠오른다.

오스트리아의 비인,잘츠부르그,그리스의 코르푸섬,독일의 함부르그,뮨헨,포르투갈의 리스본,그리고...가장 열정적인 도시는 리스본이었지. 조용한 독일 예술가곡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던 그들...무엇이 그들의 감정을 흔들게 하였던가...

여자가 듣는 포르투갈의 언어는 전혀 생소한 언어이지만 곡으로부터  닿아오는 느낌은 가슴을 흔든다. 그네들에게도  조용조용한 독일어 곡으로부터 연연한 느낌이 그랬던 것일까?

파울은 유달리도 포르투갈을 좋아했다. 자신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와지면 포르투갈에서 살 것이라고 누누히 말했었다. 그리고 '파두'를 정식으로 배워 부를 것이라고도...여자는 그때 못 믿겠다는 듯이 웃었었다.슈베르트의 서정적인 목소리가 어울리는 그가 어찌 목을 쥐어짜듯이 부르는 목소리하고 어울리겠는가 .. 라고. 그러니까 모든일에서 자유스러워지면...즉,클래식 발성법을 할 필요가 없어지면 새롭게 하겠다는 것.. 이라고 대답했었지.

인생에서 우리 사람들은 자주 착각을 한다.'어떻게 된다면,...이렇게 할 것이다.' 라고.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나의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 나는 언제  정말로  어떤 가정을 하면서 결심을 세운 적이 있었던가?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그녀의 맘속에 들어온다.

.....

The rain listened to my secret
and shared it with the city
And now, rain taps on my windows
bringing the longing back

비는 나의 비밀을 듣고 도시와 공유하였다.
그리고 지금, 내 창문에 흐르는 비는 다시 동경(그리움)을 가져온다.....

음악이 끝나간다. 
여자는 소파에서 일어나  탁자 위의 사물함을 열고 열쇠를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