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한 여자(10) 방금 들린 당신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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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파울이 바로 뒤에서 그녀를 감싸는 느낌이 선연하여 뒤를 돌아다본다. 아무도 없다. 여기 그가 지금 있을 수 있다면.. 피아노방의 불빛이 유리문을 통해 아스라히 흘러 나오는 빛으로 여자가 서 있는 유리방을 찬찬히 살펴본다. 나즈막한 소파에 어린 딸애가 잠들어 있는 듯하다. 소파 곁으로 간다. 아이를 안듯이 두 팔을 스스로 둘리며 소파에 앉는다. 어린 딸애가 놀다가 잠들었던 것처럼 가만히 누워본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성 스테판' 성당의 첨탑이 조명빛에 반사하여 솟을 듯이
더 높이 보인다. 언젠가 딸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 엄마 그것 알아? 나는 로렌스 할아버지와
파울 아저씨가 나를 부르던 '프린체신!’ 이라는 소리가 그리울 때가 가끔 있어. 엄마가 공주라고 한국말로 알려 주었지만 할아버지와 아저씨가
불러주던 독일어 '프린체신'이 더 실감나는 것이었어. 나의 비인생활은 이렇게 공주처럼 시작되었었나 봐. 그리고 아저씨네 유리방에서 보이던 성당탑과 그 위로 떠 있던 구름을
보면서 엄마가 옆방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하늘로 올라가는
둣 했었어.
엄마! 나보고 언제적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그때 그곳 유리방에서 놀다가 하늘을 보며 잠들던 그때라고 할 거야..엄마! 엄마는 언제적? ? 그래, 여기 누워보니 네 말이 실감나는구나. 너는 어찌 그리도 얘기를 잘 하니.. 딸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난다. 어린 딸애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은 없지만 어디선가 발에 치일지도
모른다는 환각으로 발조심하며 중간문으로 나오다 뒤를 돌며 다시 유리방 전체를
돌아 본다. 여기서 파울이 우리 모녀를 바라보았었지. 그는 어찌 그리 나의 내면을 뚫어 볼 수가 있었을까? 방안 탁자에는 파울의 노트북이 엎어진 채 놓여있다. 제대로 덮으며 손으로 몇 번 쓰다듬는다. 그의 깊고 깊은 호흡이 담겨있는 글들..오늘은 여기까지 읽자. ?파울! 당신의 글을 읽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이제서야 제가 당신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면서 맘을 활짝 열어요. 이곳은 그동안 시간이 정체된 곳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부터는 변화될 거에요. 당신이 바라고 있었던 데로.. 기뻐요? “ 그에게 얘기하듯 목소리를 내어 말한다.말이란 참으로 신기한 능력이 있다. 생각을 확인 시키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이 바로 앞에 있는 느낌이다. 파울의 노트북을 다시 서랍으로 가져가 넣은 후 열쇠로 잠근다. 아까 서랍을 열 때 미세한 ?찰칵’ 소리보다 더 크게 확장되어 방 안으로 퍼진다. 열쇠를 사물함에 넣으면서? 파울! 안녕“ 인사를 한다. 방안을 두루 살핀 후 떠나 온다. ? 또 올게요." 전편 한 여자 (9) 당신의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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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을 거슬러 생각하면 언제 이렇게 많은 세월이 지났나 싶다가도, 지금 당장은 영원히 머물 것 같아 마냥 느리짱 거리는 것이 일상이 아닐까?
파울 아파트문을 닫은 후 어두운 계단을 불도 키지않고 천천히 내려왔다. 전체 하우스 대문을 닫고 골목을 나오니 인적이 없다. 이미 한밤중을 지나고 있었다.
성당광장을 지나 상가가 늘어선 거리에는 자동 조명빛에 빛나는 상점의 쇼윈도우가 박물관의 진열대 같다. 공공교통이 끊긴 시간이라 택시를 잡을까 하다가 그냥 걷는다.
꿈이,사랑이, 기쁨이, 그리고 무한한 그리움이 깃든 거리를 느끼고 싶은 것이리라.
언제인가 이 도시를 떠나게 되는 날이 올까? 이 도시는 첨으로 당도한 날부터 나를 꽉 붙잡은 것이다.
운명이겠지..그때 의상을 골라주던 후버트가 그런적이 있었지. 첫 번에 딱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도 운명이라고 ㅎㅎ
.....그래 운명적인 것은 곳곳에 있지. 우리가 그냥 스쳐지나는 일상 곳곳에도..
조금 지나다 '암호프' 광장의 벤치에 앉는다. 평소에 딸애와 미하엘과 종종 산책하는 곳이다. 가방을 열어 휴대전화기를 꺼낸다. 안 받은 전화통화수와 문자건 표시가 어둠 속에 뚜렷이 빛난다.
우선 딸애의 것부터 살핀다.
... 엄마! 내가 아까 안 만나서 삐졌어요? 왜 전화 안받아요? 답 주어용 헤헤!
... 엄마! 지금 어디? 나 지금 엄마집에 와서 기다리는 중..
....엄마! 엄마! 엄마!
아니 이리도 연락이 잦았나? 그런데, 얘가 왜 이리도 ?
다시 미하엘이 보낸 것을 확인한다.
.. 뭐해? 개구장이야 어디 숨었어?
..정말 많이 아퍼?
.. 나, 지금 그쪽으로 간다. 각오해.. 야단맞을..
흠.. 내가 이리도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었었나? 시계를 본다. 에구머니나! 새벽 두시가 되어가네..
계속 걸으려는 계획을 바꾸고 가까운 택시정류장으로 향한다. 뭐라고 설명하지... 오늘 밤 일을...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하우스 복도등을 켠다. 우체통에 가서 우편물을 살핀 후 몇가지 봉투를 집어들고 계단을 오른다. 4층까지 오르려면 75개 나선형 계단이 있다. 25개마다 평면으로 다음 층으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평소처럼 속으로 셈하며 30계단쯤 올라가니 딸애가 위쪽 4층 복도로부터 내려다 보이는 통로에 서서 아래 나선형계단을 올라오는 엄마를 내려다 보고 있다.
" 엄마! 많이 아퍼? 어디서 오는 거야?
" 왜 수선이야? 내가 어린 아이냐?"
"....."
대답 없이 내려다 보던 딸아이가 '휙' 돌아가 버린다.
기다리던 집안에서 하우스 전등켜지는 소리와 불빛에 엄마가 오는 줄 알고 복도로 나와 기다렸던가 본데,웬 수선이라니까 삐졌나보네..
아파트에 도다르니 현관문이 열려있고 집안 전체 환하게 전등을 켜 놓고 있다.
" 아니, 한 밤중에 웬일이야 . 불을 온통 다 켜놓고.." 여자는 하나씩 끄면서 거실로 들어선다.
" 할로! 하제(토끼)! 어디 있다 이제야 나타나누?..."
전화문자에 '찾아와서 야단치겠다던' 미하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닥아온다.
"...."
" 대답을 못하는 것 보니 .. 꽤 심각한데?"
농담 반 진담 반 말하며 볼에 가볍게 입술을 대며 반가운 표시를 한다.
" 은지야, 미하엘,정말 미안해! 시간이 이리 지나는 줄 모르고 있었어. 타임머신을 타고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 갔었거든...나, 지금 많이 피곤해 . 좀 누어야 겠어.. 고마워. 걱정해 주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오늘 얘기 해줄게"
" 엄마! 나 말이야, 지금 엄마를 보아서 안심이 되다가도 화가 막 나려고 하는데 참는다 참어!. 에이! 울 엄마 언제나 철이 드는가 몰라.."
" 은지! 그냥 엄마 자게 하자.. 많이 피곤해 보이잖아..은지도 오늘 밤 여기서 잘 거지? 나도 이제 늦어서 안 돌아가고, 여기 서재에서 눈부칠께. 아침에 우리 모두 어디 가서 맛있게 아침식사 하자 .. 오케이? 걸스!"
" 미하엘!, 한 번 엄마 쎄게 혼내줘요. 그리 밤낮 이해를 해주니 점점 애기처럼 굴잖아요. 꼭 내가 엄마의 엄마 같애."
여자는 두사람 대화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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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손길이 파고 들어온다. 여자는 기분좋게 눈을 감고 얼마 동안 그대로 있다가 '몇 시가 되었지?... ' 생각하며 눈을 뜬다. 침실은 창문을 완전히 가린 포도주 빛깔의 빌로드 커텐으로 인해 어두컴컴하다. 옆에 누운 딸애가 빙그레 웃는 모습이 가깝게 보인다.
" 엄마! 잘 잤지? 어쩜 그리도 색색거리고 자는지 .. ㅎㅎ 귀엽더라 애기 같애."
" 얘가 왜 이래? ㅎㅎ 그래 참 잘 잤다. 너는 ?"
"엄마 혼내 주려다가 .. 김 샜지. 뭐. 잠자는 사람을 어찌 깨워. 근데, 엄마 정말 어디 있었어?"
"...."
" 어? 정말 엄마 이상하네.. 엄마가 오늘따라 젊어 보이는 것도... 꼭 옛날 내가 어릴 때 엄마 겨드랑이 안에 손 넣어야 잠이 올 때처럼.."
" 그래? 나도 겨랑이에 낀 너의 손길에 그때 생각이 나려던 참이였는데 .. 너도 그렇구나..."
" 엄마! 나는 엄마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면 겁이 나. 왜냐하면 그럴 적마다 엄마한테 안 좋은 일이 몇 번이나 있었잖아. 내가 김나지움학교 다닐 때 그때 말이야. 엄마가 병원침대에 누워서 머리를 19바늘이나 꿰메고 있었을 때.. 아휴!"
" 아! 그때.. 나도 그냥 응급실에 실려가서 처음엔 정신없어 너에게 연락을 못 했었잖아.. 정말 그때 너 많이 놀랐었지?"
" 놀라기도 하고 기가 막히고.. 정말 .."
그러니까 벌써 한참 오래전 비가 하루종일 오던 삼월 말기의 어느 날이었다. 한국 모대학이사 몇 분들과 비엔나 방문처를 모시며 통역하던 때였다.
" 김선생! 하는 공부는 얼마나 더 남았습니까? 제가 대학 이사회에 추천하여 대학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 예,,이사장님 말씀 감사해요.헌데, 제게 딸 하나 있는데 그애가 대학갈 때까지는 같이 있어 주어야 해서 좀 더 머물러야 할 거에요"
" 아, 그렇습니까? .. 참으로 아까운 인재입니다. 한국에서 필요한 분인데요..."
그분의 호의는 고마웠으나, 가뜩이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계속 머무러야 하는가? 거취문제의 기로에 서 있던 여자에게는 또 하나의 번민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여자에게 이날 내면에 동요가 없었다면 평소 때처럼 별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유난히 이사장의 제의에 내면이 흔들리던 것이었다. 바로 그런 현상이 실제로 그녀의 육체를 흔들었다.
통역일을 마치고 나오려는 순간, 우산 끼우는 통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에 젖어있던 신발깔개가 여자의 발길에 미끌어지면서 여자또한 휘청해졌다. 바로 현관 유리문 테두리에 머리가 닿는 동시에 여자의 무테안경이 깨지면서 머리의 이마부분이 유리문테에 주르르 밀리며 밑으로 넘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 놀라 경황이 없었다.
누군가가 " 어머! 머리에서 피가 나는데요!" 부르짖었다. 여자가 빨간 바바리 코트를 입고 있어서 핏물이 떨어져도 잘 알아 보기가 어려웠었다. 여자는 그 순간에도 차분히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드려다 보았다. 왼쪽 이마부터 뒷 정수리까지 부숴진 안경알의 예리한 유리날에 의해 파열 된 두피가 벌려 있었다. 여자는 침착하게 왼손으로 가리고 나와,
" 응급차를 불러 주세요.." 부탁을 하고 한 곳 소파에 누워 기다렸다.
응급차가 도착하고 그녀는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식을 잃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수송과 병원에서 절차를 혼자서 다 처리하고 두피봉합하는 수술대에 누웠다. 부분마취를 파열된 부분에만 했기에 모든 소리를 들으면서.
"저기 메스.. 옳지 ..그리고 실... 참! 간호사! 지난번 주말 잘 보냈나?" 의사의 질문에
"아이 말도 말어요 . 그게 그러니까...어쩌구 저쩌구..."대답하는 간호사 등등...
환자를 침대에 누워놓고 봉합을 하면서 사적인 얘기를 나누는 의료진에게 자신을 맡겼다고 생각하니 여자는 어이가 없었으나 아무말도 안하고 있었다. 갑자기 여자 바지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여자는 당당하게 전화기를 꺼내서 디스플레이에 뜨는 이름을 확인했다.딸애의 이름이 뜨고 있었다.
" 수술중에는 전화가 안 됩니다" 간호사가 주의를 준다.
" 아! 그런가요. 그럼 수술하면서 사적인 얘기는 되는 건가요?" 여자가 되묻는다.
의사와 간호사가 서로 쳐다 보며 머쓱해 한다.
" 저의 딸애에요. 아직 엄마가 이리 누워있는 상황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잠깐만 통화하면 됩니다."
" 예, 그럼 하십시오"
여자는 딸애와 통화를 허락받고 ,
" 은지야! 놀라지 말아. 엄마가 지금 넘어져 좀 다쳐서 응급실에 와 있어. 지금 봉합하는 중이야. 택시를 타고 마이들링 응급병원으로 와 .. 알았지?"
" 어???? 엄마! 얼마나? ... 알았어. 내 금방 갈게."
그리고 회복실에서 모녀는 만났다. 온통 머리를 붕대로 뒤집어 쓴 엄마를 바라보던 딸애는 겁에 질려 울음소리도 못 내고 있었다.
" 엄마! 나 그때 너무 겁나고 그리고 슬프다가도 웃음이 '픽' 났었어. 아니 ,수술침대에 누워 수술받으면서 전화하는 엄마의 배짱말이야 ..이제생각하니 증말 짱! 이야.
" 크! 내가 생각해도 그래. 그런데, 은지야.. 그때 너의 이름이 디스플레이에 뜨이는데, 아차 싶더라니까. 무조건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 거야. 의사와 간호사에게 한 방 먹이고 싶기도 하고 호호호!"
여자와 딸애는 지나간 얘기를 하면서 하하호호 한다. 바로 과거는 이런 양상도 있는 것이다. 당시의 충격도 세월이 지나면 이리도 희석하여 웃음을 자아나게 하고 있으니...
거실에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니? 누구가? 여자가 이런 빛으로 딸애를 바라본다.
" 엄마! 미하엘이 서재에서 잤어. 그리고 우리 맛있는 데로 아침먹으러 같이 가자고 했거든 .."
" 그래? 그럼 우리 이제 일어나야겠네.."
'똑!똑! " 노크소리가 난다.
" 어이 걸스! 너네들만 또 시시덕거리는 거야? 정말 소외감 난다."
" 호호호, 미카엘 그때 그 얘기 하는 중이야요. 엄마가 수술침대에서 나랑 전화하던 때. 크! 알고 있잖아요.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 주었던 그 무용담 호호호!"
" 아! 그 얘기? 후후후!"
모녀가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미하엘이 오디오에 틀어 논 감미로운 음악과 더불어 세 사람 모두는 화창한 아침의 햇살처럼 상쾌하게 웃는다.
(계속)
6월에 파리여행을 다녀오며 마리아 칼라스생각을 많이 했어요.
50대 중반에 그곳 아파트에서 홀로 쓸쓸히 죽은 그분의 일생이 새삼 안타까웁게 떠올라서요.
다녀와서 그 분의 음악을 듣다가 글이 저절로 나갔어요 ㅎㅎ
사실은 지난번 1부를 갑짜기 마치고 동공상태에서 얼마간 지냈었지요.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슬슬 때때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전편의 연속된 순서대로가 아니라 드문드문 시간과 공간을 넘어가며 꽁뜨식으로요.
홈페이지에 올릴 때에는 그 글들 중에서 추리다가
휠이 꽃히면 첨가글을 쓰기도 하고.. ㅎㅎ
이번에는 1부하고 달리 글이 나가네요^^
머뭇거리는 자세에서 좀 더 대담해진다고 할까요...
선배님의 댓글을 대하며 반가워 이소리 저소리를 했어요.
Maria Callas- Una Voce Poco Fa
로시니 오페라 "Il Barbiere di Siviglia ㅡ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나오는
마리아 칼라스가 부리는 아리아 Una voce poco fa (방금 들린 그대의 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