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파리에서 다시 사랑에 젖어/ 김옥인
파리에 왔다.
한참 오래전 처음 왔었을 때처럼
올 때마다 이 도시에서 항상 사랑에 푹 젖는다.
어제는 세느강유람선을 탔었는데
몇년 전 겨울에 왔었을 때는 없었던 현상을 발견했다.
"사랑의 자물쇠' 가 다리의 난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요즘의 현상중의 하나이다.
어느 도시나 다리 난간에 걸려 있는 것들이다.
그래도 이렇게 숨쉴틈도 없이 보이는 것은 역시 파리라고 생각이 든다.
강가의 연인,
다리위의 연인들을 보면서
어느새 그 언제였던가
숨이 막히도록 가슴이 떨렸던 그 때처럼
다시 떨린다.
2014년 6월 7일 새벽에
파리에서 지내며
예술가의 다리 ( Pont des Artes)
세느강에는 여러 다리들이 각각의 개성적인 이름을 나타내고있다.
위의 자물쇠가 달려있는 다리를 예술가의 다리라고 부른다.
까뮈, 싸르트르, 랭보 같은 문인들이 이 다리를 찾아 강을 바라보며 영감을 떠 올렸다고 한다.
나는 물을 좋아 한다.
강, 호수, 바다 등 등...
그런데 흐르는 강위의 다리를 더 좋아한다.
다리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보면
저절로 내 안에 모든것이 떠내려 가는 듯하다.
파리의 문인들도 나 같이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싸르트르를 생각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보부아르..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몽파르나스와 인접한 샹제르망지구 교차로의 광장 이름판)
이 커플은 분노와 질투, 상실감을 기꺼이 감수하고도 사랑했고, 자유를 즐겼다.
간단하게 계약을 파기하면 끝날 수 있는 관계였지만, 죽을 때까지 지속했다. 뿐만 아니라,
보부아르는 “나는 내 인생에서 재론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성공 하나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르트르와의 관계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지성의 가면 뒤에 숨은 가식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둘이 잔인할 정도로 정직했던 관계의 투명성 때문에 분노와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면
이 커플은 전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마저 없다면 사이보그일 테니까.
둘이 사이보그가 아니면서 평범하지 않은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사랑의 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사랑eros만 한 게 아니다.
사랑만 했다면 서로 여러 번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보부아르 역시 살인 충동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이 그녀의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죽거나 죽이지도 않고 서로의 관계도 지속시켰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적 실험에 대한 열정도 사랑 못지않게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세웠던 자유, 존재, 실존의 문제, 페미니즘 등을 경험을 통해 실험하고
끝없이 토론했다. 이런 사실은 사르트르의 말 속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없었다면 수많은 소중한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그 경험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그 경험들은 비전문적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기술하고 있는 하나의 행동, 내가 분석하는 삶의 상황들은 그녀와 함께한
집약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 정확성과 현실적 엄밀성을 부여받는다.
” 즉, 실존주의를 자신들의 일상 속에 끌어들이는 일이 곧 사랑의 일부였다.
그리고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 그건 공간의 문제다.
그들이 복잡하고 미묘한 상대방의 연애 행각을 낱낱이 알면서도
51년 동안이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같이 한 공간을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공간을 공유하지 않았다.
짧은 기간 동거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가깝게 살 뿐이었다.
그러므로 상대가 자신을 내버려두고 밤늦도록 서재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것도 괜찮았고,
상대가 몇 년씩 여행하면서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해도
언제나처럼 자신의 침대엔 체온을 기다리는 다른 베개 따윈 없었다.
상대방의 공간이 비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척 다르다.
....중략....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의 결혼은 결혼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사랑은 보통의 사랑은 아니었다. 둘은 공간을 함께 쓰지 않는 평생 연인관계였지, 부부 사이는 아니었으며, 남녀 간의 에로스적 사랑만도 아니었다. 둘이 즐긴 사랑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에로스와 필로스의 교차점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둘이 시도한 사랑은 너무 희귀한 예이다. 보통 에로스와 필로스는 교차점이 없거나 아주 작아 함께 설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도 이들의 사랑 방식을 추구하고 싶다면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제일 먼저 결혼이란 말에 무게를 두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독립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 다음 상대방의 고백을 통해 혹은 뜻하지 않게 알게 된 애정 행각에 철학적 해석을 하고, 그것을 객관화시켜서 소화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희귀한 사랑을 함께 나눌 상대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관의 대부분은 알코올로 채워지거나 뇌혈관이 터져버릴 것이며, 심장은 분노로 가득 차 석회처럼 굳어질 것이다.
누구나 알듯이 사랑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서 빛나는 별 같은 사랑도 있는 모양이다. 가보면 먼지나 암석 덩어리일지라도, 밤하늘을 수놓은 별은 보석보다 아름답고 유혹적이다.
-예담『오늘밤 주제는 사랑』중에서-
세기의 연인들은 파리 몽파르나스 묘역에
합장하여 잠자고 있다.
아직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많다. 우리 모두가 못하는 사랑을 나눈이들에 대한 경이감이 든다고 할까... 현세의 문학, 연극, 드라마등에서 나타내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노골적 표현을 대하면서
이들의 사랑이 고전적인 느낌이 든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몽파르나스 묘지를 벗어나 뒷길로 가면
당대의 문학, 예술의 대가들이 지냈던 '호텔 이스트리아'가 있다.
팻말에 보이는 이름들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먼 레이와 그리고 그의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키키,
에릭 사티등등 무수한 이름들...
바로 이 지역에서 만나고 투숙했던 자취를 보여준다.
인접한 샹제르망 지구로 당도하면
사거리 모퉁이에 'La Closerie des Lilas´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이 안에
실존문학의 본거지라고 불리어지던 Cafe de Flore 가 있다.
싸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단골로 방문하며 당대의 문학가들이 모였던 곳이다.
헤밍웨이도 단골로 왔었고 아직도 그가 즐겨 앉았던 자리에는 이름표가 붙여있다.
커피를 마시며 옛날을 그려본다.
몽파르나스의 여왕으로 불리어 지던 Kiki 가 자욱한 담배연기속에
그녀 특유의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1920년대에 '몬 레이'에게 누드 모델로 대작을 안겨주며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
모든 위선을 버리고 꼭토, 훼밍웨이와 우정을 나누던 여인..
과연 몽파르나쓰의 여왕으로 불리어지기에 부족함이 없던 여인
세계대전 이후 샤갈이 이방인의 고독을 삼키던 모습..
한밤중이 넘어서 들어서던 그들의 시선..
언제나 그곳에 보이는 지우들과 만나 담소하며 젊음과 열정과 회한을 논하던 그들...
세월은 흘러 지금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들의 이야기...
잠시 파리에 머물며 들린 이 곳에서
지난 날 그들의 영감을 얻으며 가슴에 담아 떠나온다.
성령강림절 휴가를 맞은
토요일 저녁은 온통 축제분위기가 만연하다.
산책을 하러 에펠탑으로 간다.
자정이 가까웠슴에도 인파가 넘친다.
젊음의 열기 속에 거닐며
아주 오래전 첨으로 왔었던 그 때가 떠오른다.
사람은 가고 없지만 추억은 여전하고...
4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감개가 좀 다르지만
이곳에 모인 젊음이들의 훈기가 생생하게 전염되듯 다시 흥분되는 것이라니...
딸애가 문득 보고싶어진다.
딸애가 여기 있다면 온몸을 움직일텐데...
자정이 훨씬넘어 피로한 몸을 택시자전거에 싣고 귀가한다.
불가리아에서 런던을 거쳐 파리로 와서 일한지 한 삼년되었다는 젊은이는
열심히 일해 언제인가는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는 포부를 펼친다.
젊음!
가능성을 무한히 펼칠 특권이 있는 시절!
나의 젊었던 시절이 아스라히 떠오른다.
파리의 밤은 샹송을 연상하도록 매력이 넘친다..
그의 설명을 반주로 바람속을 달리며 파리의 야경을 가슴에 담는다.
'파리에서 다시 사랑에 젖어'라는 제목을 정하기 전에 한동안 파리에 대하여 생각했었다.
대학 시절 만났던 P가 파리 세느강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방학을 마치고 유학하던 곳으로 돌아가기전에 주었었다.
우리는 그때 약 두달 반의 교제를 했었으나 정신적 교감은 어느 오래된 연인이상 이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그는 유학하던 곳으로 떠나고
나는 졸업을 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유학할 예정이었으나
계획대로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이어지지 못했다.
졸업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음에도 그 사진을 어느 책장속에 우연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변명을 하자면 끼웠던 책을 그냥 무심히 결혼하면서도 가졌갔던 것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책장에서 무엇을 찾다가 나의 책속에서 떨어진 그 사진을 보았다.
앗! .... 어쩌나 하는 놀라움보다는 이제는 P와의 추억도 마지막이구나.. 라는 운명적인 느낌이었다.
그 사진은 남편이 어찌 처리했는 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부터 나에게서 사라졌다.
P를 생각하면 떠오르던 파리의 세느강을
그 후 처음으로 보게된 것은 남편과 1990년초에 파리여행하면서였다.
남편은 그때 그사진을 기억하며 나랑 다녔을까?
이제는 하늘에 있는 그에게 물어 볼 기회가 없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그리고 남편에게 많이 미안하다.
내가 남편과 사랑에 젖어 세느강을 거닐 기회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계속 기회가 있다면 그냥 덤덤한 중년부부이지 않을까?
이번 파리를 다니면서 과거속 사람들과 더불어 곳곳을 거닐었다.
'파리는 안개에 젖어'라는 영화제목이 있는데,
나에게는 '파리는 추억에 젖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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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드광장에서 도보로 걸어
세느 유람선 타러 가기전
알렉산더 3세 다리 ( Pont Alexandre III) 아래를 거닐며
우와~~~~~~~~~~~~~~~~~~~~~~~
음악이 들려요.
너무 좋다~~~~~~~~~~~~~~~~~~~~~~~~~~~~~~~~~~~
?옆모습이 아름다운 여인~ ~ ~!
밤에 유람선을 타고 휘황찬란한 에펠탑을 보았지요.
어두운 빛의 쎄느강물을 지나면서 보며 밤에 보길 잘했다고도....
유럽은 다시 또 가고픈 마음이 들게하네요.
진짜 자물쇠가 새로 생긴 명물이네요.
비가 오면 녹물이 강으로 떨어져서 물을 오염시키겠단 생각도....ㅎㅎ
제가 좀 단무지라서요.ㅋㅋ 겨~~우 고런 생각만...
심각한 사람이 못되걸랑요. 죄~송~ ~ ~
에펠탑 꼭대기에 있는 화장실엘 갔었어요.
너무나도 깔끔하고 깨끗해서 놀라웠고 뿌듯하기도 했어요.
그 높은 곳, 유명한 곳에서 소피를 보다니....하고 감격스럽더라고요.ㅎㅎ
그리고 본문올린지 한달이 지난 글에 댓글주신것 감사드려요.
( 물론 옆모습 칭찬한것은 황공 무지로소이다.. 이고요 ㅎㅎ)
어느 신문기사에 난 소식에는
이 곳의 오래된 자물쇠들을 수거해 없앤다고 해요.
그곳에 걸어놓는 사람들은 떠나고 없으니 모르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녹슨 자물쇠들도 더러 보이지만
거히는 새것들이에요.
선배님께서 이제 가게를 처분하신다니
시간여유가 생기시겠네요.
다시 한번 가셔서 지난 날을 추억하며 곳곳을 걸어보세요.
그냥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천천히..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건강하세요
어제는 친구와 국제전화를 했다.
한국과 비인이 이역만리라고 하지만
전화로 들리는 목소리는 바로 이웃같기만 하다.
친구가 가을에 프랑스여행을 간다고 한다.
우리는 여러가지 여행에 관한 얘기를 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자 마자 어느새 다시 일어나는 파리의 향수라니..
지내는 동안 비가 오던 날 샹젤리제를 누비던 것이 바로 지금마냥 떠오른다.
겁도 없이 길 한복판에서 ㅎㅎ
지내던 집에서 나와 모퉁이 몇개만 돌면 도다르던 거리
아침녁에 비가오다 다시 개이고
또 한창덥다가 다시 비가 내리던 짖궂던 날씨였지만도..
다시 거닐고 싶다니.
한밤중에 집을 나와 잠시 거닐면 도착하는 개선문을 배경으로 번개속에서도..
머물었던 아파트 발콘에서...
베르사이유 궁전 가든의 분수쇼에서...
나는 분명히 집시인가보다.
이리도 파리뿐만 아니라 다녀왔던 곳곳에 향수를 느끼다니..
오늘 밤은 아무래도 파리에서 지냈던 집에서 잠자듯이 꿈을 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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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Brel - Ne Me Quitte P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