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지난 토요일 오후에 딸애와 친구하고 우리 동네에서 열리는 성탄바자회를 다녀왔다.
행사장이 있는 건물은 백 여년전에 지어진 예술가들을 육성보호하는 WUK이라고 불러지는 곳이다.
한 여름 고색 창연한 벽돌벽에 무성하게 자라는 담쟁이가 운치를 돋구는 마당은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곳이다.
또한 내가 1990년대 연주활동을 할 당시 우리 연주가들의 음악 스튜디오가 있던 곳이다.
그 때는 다른 동네에 살면서 일부러 차타고 와 정기적으로 드나들었었다.
연습실 넓은 공간에는 기획자이자 메니져이며 편곡까지 맡았던 사람이
창가아래 있는 마루바닥 가장자리 둘레에 화단을 가꾸고 전기로 부분채광을 주어 이곳에 오면 신비로움이 들었었다.
하우스 콘서트도 정기적으로 하면서 그 시절 왕성한 활동하던 비엔나 동료 연주자들도 무시로 찾아오고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을 논하며 의미깊은 시간을 나누었었다.
비엔나에 온지 얼마 안 되었던 내가 독일어 사전을 들고 다니다가 대화중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수시로 찾아 보았었다.
그러는 나를 위하여 열심히 설명해주며 도와주었다. 아마도 내가 독일어를 제일 열심히 배우고 익히던 시절일 것이다.
그 후 피치못할 사정으로 연주활동을 관둔 다음에 발길을 딱 끊었다.
그러나 이 곳과의 인연은 다시 연결되어 1998년부터 이동네로 이사오게 되었다.
처음 한동안은 연주시절 드나들던 때를 회상하였으나 점차로 타성처럼 이곳을 그냥 스쳐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이날 이 곳에서 열리는 행사를 보러 일부러 건물안쪽으로 들어가자
어디서 부터 불어 오는 것일까...싸아하고 바람이 내몸 깊숙히 스며드는 것이다.
건물안은 몇군데로 나누어 연극, 무용,사진, 필름, 목공예,조각, 회화,그래픽,케라믹 그리고 음악등등
각종 예술부서관계 연구실과 작업실 그리고 카페 레스토랑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곳곳의 팻말을 볼 때마다 잊혀졌다고 생각하던 추억들이 와르르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왜 그동안 여기를 지척에 두고도 찾지 않았을까? 회한에 젖을것을 두려워 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이제는 담담히 찾을 수 있음은 바로 과거로 부터 자유스로워 진 것이겠지....
동행한 친구와 딸애에게,
" 어머,, 그대로네.. 어머 여기는 좀 달라졌네.." 라고 얘기하자,
나의 연주시절을 이미 알고 있던 두사람은 이구동성으로,
" 아주 향수에 젖다 못해 빠지네..빠져! 하하하 !끄끄끄!"
웃는다.
실내로 들어가 행사장을 돌아보면서도 즐거움이 넘쳤다.
그곳을 떠나 오다가 일부러 벽돌벽에 서서 사진을 찍자고 하니,
" 엄마! 우리들 바로 이 동네 사는 주민들인데, 엄마는 꼭 이곳을 일부러 찾아온 관광객같아.. 내 참!"
핀잔을 주며 미간을 모은다.
" 얘, 그래도 너랑 기념한 사진은 없잖아.."
모녀가 그러는 사이 얼른 친구가 사진을 찍었다.
나는 건널목을 건너와 전체를 찍으려다가 건물에 붙여진 플랭카드를 읽게 되었다.
어머!!!!
2015년2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이 건물을 새로 단장하는데,
럭서리 펜터하우스가 들어온다는 문구에 가슴이 철렁해지는 것이다.
물론 예술보호협회도 공존한다고 하지만
오늘 내가 보면서 향수에 젖었던 그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라는 감상에 한참을 망연히 서서 보았다.
내가 정말 이제 이곳에서 오래 살긴 살았나 보다.
점점 옛 것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다니...
그 때 그 친구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기회를 만들어 이곳 카페에 모여서
그 시절 추억의 현존이 사라지기전에 대화를 나눠야 겠다.
(2014년 12월 06일 WUK을 회상하며 )
디스커버리 담쟁이/신금재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밀려 내려 오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며
양팔에 힘을 준다
시멘트벽을 오르는 이민살이
가파르고 아찔한 낭떠러지
신참 산악대원은 맹 훈련 중이다
수직 담벼락에 어떻게든 뿌리내려보려고
갈라진 벽 틈새를 움켜쥐는 손톱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발톱에 피멍이 맺힌다
몸살을 앓아 점점 붉어지는 얼굴
서리바람에 쑤셔오는 몸을 뒤척인다
디스커버리 먼 하는 끝 겨울이 머뭇거린다
눈가에 자리잡아가는 잔주름
나도 모르게 나오는 신음소리
그러나 하늘에 비친 얼굴, 미소가 곱다
담쟁이 잎 뚫린 구멍 속으로 가을이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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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글을 사랑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는 모습... 존경합니다.
금재후배 따님은 한국에 있다고 했던가요..
많이 보고 싶지요?
저는 위에 언급한 날 갑자기 WUK의 보수공사 광고를 보고
여러가지 상념을 가지고 지내다가 글로 남기고 싶어 이리 올렸어요.
저의 감상도 얼마 있으면 사라 질지도 모르잖아요...
이제 몇달 있으면 공사가 시작되겠지요,
이 뿐만 아니라 붙잡고 싶으나 사라지는 것이 점점 많아지겠지요.
이렇게 여기서 후배랑 도란 도란 얘기 나누면서 위로 받어요
딸 안젤라는 지 오라버니 장가가던 날 캘거리로 돌아왔어요
지금은 색컨드 디그리 공부하면서
트랜스 캐나다라는 회사에 근무해요
지 엄마가 다운타운에서 오랜동안 근무하였다고
가끔 다운타운 소식을 전해주지요
엊그제는 제가 언젠가 글에도 올렷던---옷 수선소가 있던 건물---이 헐린다고 아쉬워하대요
우리 모두에게는 친해져있던 옛 것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DNA 가 있나봐요
이름이 예쁘네요.
저의 딸애가 초등시절의 에피소드 하나를 적어볼께요.
시내 왕궁의 철책 담이 철거를 몽땅 어느 날 한 거에요.
속이 보이는 철책담이 참 고풍스러웠었는데요.
딸애가 너무 속상해 하더니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복원해 달라고 ..
제가 그때는 독일어가 서툰 때라 엄두가 안나고
어린애가 그냥 그러다가 말겠지 하고 지냈는데,
한참후 철책담이 새로 칠단장하여 다시 돌아왔어요.
알고 보니 보수공사를 하면서 통행인에게 불편을 줄까 보아
잠시 철거하여 다른 곳에서 칠공사를 하고 말린 다음 다시 가져온 것이더라고요.
요즘도 그 철책을 보며 지나다 그 때를 떠 올리며 농담을 할 때가 있어요.
"얘야! 네가 대통령에게 엄마 몰래 편지써서 도로 가져 왔었지? "
" 그렇다고 하지 뭐! 호호호"
아, 재미있고 추억어린 이야기네요
우리 애들 영세명은 다 A 로 시작해요
ANDREW
ANGELA
제 영세명이 ANNA라서---
친정어머니 살아생전 성당 교리반에서 쓰신 글입니다
반복되어지는 문장 속에서 나는 그것을 얼마나 지키며 살아가는지 돌아봅니다
-옷차림은 검소하게
-늘 친절하고 항상 미소로
-비판하지않는다
-상대방에게 사랑과 인내로
-경솔한 태도나 말을 삼가야한다
어머니는 이 글을 반복적으로 쓰면서 살아생전 거룩한 삶을 사시려고 애쓰셨는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노력하는 삶을 사는지---
어머님의 육필을 간직하고 찾아 읽으며
어머님을 느끼는 금재후배가 고와요.
오늘 어머님이 그리워 졌는가 보네요...
후배는 어머님께서 항상 지켜 주실 거에요.
글이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흔적임을
후배가 올려준 것을 보며 상기합니다.
위에 어머님께서 적으신 사항을 생각하니...
너무나 부족한 제모습에 머리를 숙여 반성합니다.
1984년 11월 24일---
삼십 년 전 사진이네요
선배님 글의 테마가 옛 것이다보니 주변에서 보이는 옛 것들을 찾아보게 되네요
?Wow ~~~
두 자매님, 옥인과 금재후배님들의 글을
푸른달빛 비추이는 창가에서
몰래 훔쳐보다가 어쩔수 없이 자수하고 나왔네요.ㅎㅎ
1978년 11월 23일이 나의 결혼식.
지금의 금재후배가 참으로 곱고 우아하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보기좋아요.
아마도 아이들과 동심속에서 살아서 그런가보아요?
오늘은 영상 4도로
꼭 봄날같아서 온태리오호숫가를
4여인들이 걸으면서 호호깔깔 엔돌핀을 듬뿍받고 왔지요.
옛것이 사라지는 것이 내자신도 돌아보게 하네요.
미안 ~~미안 ~~!
다시 두 분이 대화나누셔요 ~~~~
알찬 대림절을 보내시길.....
우리성당은 이번 목요일에 판공성사가 있어요.
그날 아침에 난 오른쪽 백내장수술을 받는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미리 판공성사받고
본당신부님으로부터 수술 잘 받으라고 Blessing도 받았답니다.
나이가들면 말이 많아진다더니...에고 ~ ~
자유게시판에 인선선배님깨 답글 드리고 이리로 오니
글을 여기에도 놓으셨네요.
저는 어제저녁부터 오한이 나서 이불 뒤집어쓰고 두문불출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살적 뜨끈거리던 아랫목에서 몸을 지지던 때가 마구 그리워
거실에 있는 소파를 메트리스쳐럼 펼치고
전기장판을 틀어 놓고 오슬거리는 뒷덩이를 데워 땀을 내었지요.
밤에 잠깐씩 화장실 다녀 오며 자리 눕는데,
천정이 높아 꼭 무슨 강당에 누운 듯하여 킥 웃음이 나더군요.
피아노도 높게 보이고
화분도 더 커다랗게
그리고 창문도 더 높게 보이기 때문일 거에요.
조금 기운이 나서
낮은 교자상에 랩톱을 놓고
엎드려 베게에 가슴을 대고 글을 쓰고 있어요.
( 배는 따끈히 ㅎㅎ)
중고등 시절
다락방에서 뒹글던 시절이 그립게 떠 오릅니다
일본식 집이어서 다락방이 제법 높아 책상도 놓았었어요.
엄마가 글을 긁적이기 좋아하는 저를 위해 마련해 주신 저의 천국이었지요.
누가 올라 오지 않는 곳이라 매일 청소하지 않고 맘껏 어지럽히던 나의 세상!...
아그그.. 얘기가 길어졌어요.
수술 무사히 꼭 잘 되기를 기원해요
?고맙네요 옥인후배님 ~~~
살면서, 특히 이렇게 나와서 살면 아플때가 제일 마음이 거시기혀요?
수술 잘 받고와서
지금 애꾸눈으로다가....ㅎㅎ
새벽부터 눈이 쏟아져 은근히 걱정되어 잠도 설쳤었지요.
아침 7시전에 출발해서 가는데 쏟아지는 눈으로
마음도 조마조마하고 속으로 '주님의 기도' 와 '성모송'을....
그러면서 문득!?
" 아 ~내가 눈(Eye) 수술 받으러가니까 이렇듯 눈(Snow)으로 축복을 ~ ~"ㅋㅋ
?우리 7기 뉴욕사는 김 호숙이 순수문학을 통한 시인인데
여고시절 소설도 벌써 두툼히 쓰기도 했는데....
밥은 늘 큰가마솥에 해서 얼마나 맛있었던지....
호숙집에 가면 내가 밥을 일꾼밥처럼 아구아구 먹어대서 아직도 기억하고 웃고....
호숙이의 골방을 가길 참으로 좋아했댔시요.
개구멍같은 쪽문을 기어들어가면 그곳은
아늑한 엄마뱃속같고, 쌓아놓은 책이며 원고며.....
아마 방주인보다 내가 더 좋아했을끼야요.ㅋㅋㅎㅎ
따끈한 장판에 쌍화탕 한병 따서 따끈하게 데워 마시면
고만 감기 끝~!인데... 안타깝군요.
울남편 걸으러 나가고 난 고 사이에 얼렁 들어왔시요.
덕분에 유럽의 성탄분위기를 즐기게 해줘서
복받으실껴 ~~~!
감기에서 빨리 해방되시길...
하긴 우리집 내새끼같은 괭이들도 지금 감기로 고생중.
한 놈(돌쇠)가 나으니 다른 ㄴ (지니)가....불쌍해요. 먹도않고..ㅉㅉㅉ
인선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 사진을 보고있으니 웃음이 나오네요
저 경직된 모습이 순수하던 그 시절, 돌아보니 참으로 먼 길에 와 서있네요
친정아버지가 제 신부화장 보시고 거의 기절하실 뻔---
에구머니, 니 얼굴이 이게 뭐냐
어쩌겠어요---
인선 선배님
백내장 수술하신다구요
저희 레지오에서 기도하겠습니다
젬마 자매님 수술이 잘 되도록---
그나저나 옥인 선배님 주제--옛 것---
또 무엇이 나의 시선을 잡을 지---
20대의 고운 모습!...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아서 친근해요.
친정 아버지의 말씀! ㅎㅎ 이해가 가요.
화장 안한 생얼굴에 익숙해서 그러셨겠지요.
덕분에 저도 옛 생각에 머물어 봅니다
그래도 폐백 사진은 좀 나아요
방지거 신부님 모시고 찍은 웨딩사진은 이름하여----귀순용사의 결혼식---
그나저나 얼른 나으셔야지요
요즈음 날씨가 변덕스러워 여기도 감기 몸살 환자들.
??미사 금재 안나?후배님 ~~
새벽부터 눈이 쏟아지더라고요. 최고 15Cm온다고...
걱정이 되어 잠이 안오더라고요. 아침 8시까지 오라고해서 더욱....
그래도 은퇴준비로 구비한 4X4 벤 덕분에 늦지않게 도착.
쏱아지는 눈으로 걱정이 되어 맘속으로 '묵주기도' 하다가 문득....
"아 ~~!눈(Eye) 수술하러가니까 눈(Snow)로 축복해 주시는구나."
마음이 편안해지더니 수술도 잘 끝내고 와서
열심히 세 종류의 안약을 하루에 네 차례 열심히...
안나님과 레지오단원들께 감사드립니다.
남은 두 대림절도 잘 보내시고
주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합시다!
ㅎㅎㅎ 돌아온 외팔이 아닌 애꾸눈 쟝고???ㅋㅋㅋ
Dvorak - Romance for piano and violin, O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