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3월//신금재


"캘거리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것은 처음이네요."

 

이민  온 지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런 눈은 처음이라는  어느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주는 "겨울"을 주제로 데이케어 아이들과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검은 도화지를 이용하여 백묵으로 눈오는 풍경을 그려보게 하고  손가락 모양을 따라 오린 뒤 그것을 이용하여 장갑에 여러가지 무늬 

그리기와 눈사람 만들기등을  하면서.

 

울기도 잘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애비라는 여자 아이는 검은 도화지 한 면을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서 보여준다.

"애나, 눈이 아주 많이 와서 아무 것도 안보여요."

 

눈 위에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않는다.

애비 말이 맞는다. 

 캘거리 눈 쌓인 들판에는 아무 것도 살지않는 것처럼 그대로 하얀 들판이다.

단지  눈 쌓인 나무가지들이  눈꽃을 달고서 바람에 나부낄 뿐.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든다.

한국에서 유치원 아이들은 커다란 동그라미와 조금 작은 동그라미를  그 위에 올려서 눈사람을 만들곤하였다.

그런데 이 곳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동그라미 3개가 필요하다.

가장  큰 동그라미는 맨 아래로 중간  동그라미는 몸통으로 그리고 작은  동그라미는 머리로 장식한다.

눈사람 코는 주로 당근 모양으로 만드는데 실제로 어느 해 겨울 동네에서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을 보니 주황색 당근을 꽂아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겨울철 토끼들 먹이를 주기 위한 발상이었으리라.

 

이번에는 동그라미마다 구멍을 뚫어서 세 개의 동그라미를  파이프 클리너(pipe cleaner)로 연결하도록 준비하여 주었는데 아이들이  

구멍을 맞추면서 더 신기하게 만들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늘 공주 그리기에 심취하는 케이티는 눈오는 풍경 그림에도 공주가 사는 성을 그리고  누워서 눈천사(snow angel)를 만드는 자기 모습을 그리고 있다.

눈쌓인 마당에 아이들이 팔을 벌리고 누워서 위로 아래로 움직이면 그 움직인 모습이 마치 천사의 날개 모양이 된다.

완성된 눈사람을 모빌처럼 매달아주자 아주 만족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향해 웃어준다.

 

이번 주 주제에  맞는 동화책을 준비하기 위하여  도서관을  다녀왔는데 그 중에 한 권  아주 흥미로운 책이 있다.

제목은  "끔찍한 눈폭풍-1888년 3월--

 

첫  페이지에는 아주 오래 된 두 친구,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월트와 프레드가  오랫 만에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야기는 두 할아버지의 옛날 추억, 1888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월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여 그의 집에는 늘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노래부르곤 하였다.

 

한편, 프레드는 부끄러움을 잘타는 성격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새집 만들기를 즐겨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눈폭풍이 불어오던 그 날 아침, 월트는 단지 자켓과 모자를 두른 채 장작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고 프레드는 우유 배달을 하고 있었다.

 

눈이 오기 시작한 것은 늦은  아침이었고 그렇게 많은 눈이 올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는데 정오가 되어오자 눈은 점점 많이 내리면서  그 속도마저 빨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하던 일을 마저 끝내려고 하였는데 말이  점점 많이 쌓여지는 눈을 보며 당황을 하기 시작하였다.

눈을 헤치고 앞으로 달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더니 눈바람이 더 거세어지자 말은 더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왈트는 눈폭풍을 피하여 가까운 여관으로 찾아들어갔지만 이미 여관은 빈 방이 하나도 없었다.

말을 데리고 외양간에서 머무르는 수 밖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왈트가 3일 낮과 밤을 아무 할 일 없는 외양간에서 고문에 까까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프레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한 작은 여인숙에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있었다.

 

3일 째 되는 정오 무렵, 눈은 드디어 그치고 왈트는 외양간 문 앞부터 눈을 치우면서 길을 만들어나간다.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가야할 길을 가기 위하여 길을 재촉하고 말도 이제 속도가 붙어  잘 달려서 돌아온  집.

 

여전히 왈트의 집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프레드의 집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새집들이 걸려있고 고양이 한 마리가

반가이 맞아준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백발이 성성한 두 노인이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 눈폭풍은 없을거야."

"정말 무서웠지."

 

요즈음 뉴스에서는 캐나다 동부 지방에 눈이 아주 많이 와서 여러가지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 곳 캘거리도 지난 주에는 체감온도 30-40도를 오르내리더니 다행히 이번 주에는 "치눅바람"이 불어오고있다.

 

썬 라이프 빌딩에 가면 눈폭풍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보여주는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한 마리의 들소가  커다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눈 내리는 들판에 서서 폭풍 피할 곳을 찾고 있는 그림이다.

그림 제목은 "눈폭풍으로부터의 피난처"

 

그러나 그 아래에 있는  그림 설명서에는 피난처가 무덤으로 변한 이야기가 쓰여져있다.

 

1970년대 그 들판을 여행하던  초등학생들에 발견될 때까지 그 들소는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돌바위 옆에서 그렇게 죽어갔던 것이다.  그 곳에서 발견된 들소의 뼈들을 커다란 유리관 속에  얼음과 함께 넣어서  이 곳 빌딩  정원과 분수대 사이에 진열을 해 놓은 것이다.

 

그 들소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네 삶을 돌아보곤 한다.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때아닌 눈폭풍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디를 피난처로 생각할까?

때로 우리도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엄청난 오해를 받기도하고 그 오해와 상처 라는 눈폭풍에서 헤어나오려 발버둥치기도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다시 태양이 찾아오기를 바랄 뿐.

 

눈폭풍이 오면 오는대로,  따스한 시눅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다.

 

다시 눈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