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옆 집 폴라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보고 왔다.
목요일 오후의 피곤함과 나른함이 씻겨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토론토 공연에서는 실제로 헬리콥터가 무대 위를 날면서 연출했다는데...
이 곳 캘거리 대학 오라토리움(강당)에서는 헬리콥터의 음향 소리만으로도 모든 관객들이 숨을 죽이면서 막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평화로운 사이공 거리에 어느 날 전쟁의 기운이 몰려오고 그 거리 위에는 시골에서 막 상경한 듯 한 소녀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소녀를 본 순간 낯설기보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이었다. 작은 체구에 부리부리한 눈망울... 어린 시절 이웃집 친구를 많이 닮은 인상이었다.

미스 사이공 역을 맡은 베트남 여배우도 무척이나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가슴이 잔잔히 떨리면서 온 강당을 울리는 그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미스 사이공은 그 제목처럼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신파조의 연극 뮤지컬이다. 스토리는 아주 단순하지만 동서양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뮤지컬 쇼는 아주 일품이다.
미스 사이공을 구해주는 사람은 어느 작은 술집 주인인데 별명이 '엔지니어'로 불릴만큼 다재다능하고 주인공 못지않게 반짝이는 "빛나는 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대이든지 여우처럼 약싹빠르게 처신해서 살아남는 인간형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엔지니어"를 미워 할 수 만은 없었다. 그가 하는 대사들은 결코 품위가 있는 것 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특히 미국 아메리칸의 상업주의를 비꼬는 부분에서는 이 곳 케네디언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었다.

전쟁 후의 일사불란한 공산주의를 붉은 깃발과 획일적인 행진, 그리고 호치민의 거대한 동상을 배경으로 표현하였고 아메리카의 거대한 상업주의는 술집의 화려한 불빛과 호스티스들, 댄서들의 벌거벗은 몸으로 나타내었다.

나는 그동안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그리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단지 우리 바로 전 세대들이 미국을 도와 군인으로 파병되었고. 간혹 사진 속에서시원하게 생긴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전쟁에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 아이의 모습등...
미국이 끝내 월남전에서 손을 뗄 정도로  민족성이 강한 사람들...
하나 더 있다면 영어교실에서 만난 트랭이 늘 가져오던 월남 고유의 음식( 커다란 이파리에 찰밥을 싼 것)
그리고 월남국수...

그런데 이 뮤지컬을 보면서 내내 가슴이 아팠던 것은 미스 사이공의 그 처절한 몸부림-부모님이 맺어준 정혼자가 있었지만 미국군인을 사랑하게 되고 전쟁이 끝나면서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야하는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한국도 문화적으로 많은 유산을 갖고 있다고 배웠고 베트남보다는 앞선 나라라고 늘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뮤지컬이나 어떤 공연이 캐나다를 순회공연한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 나라의 국력이 결코 경제력으로만 평가되지 않는다면 우리도 문화적인 힘을 길러야하지 않을까?

미스 사이공은 전쟁 후의 어수선한 틈을 타서 숨겨 놓았던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오게 되고 사랑했던 그 군인을 만나지만 이미 결혼을 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 날 밤,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영원히 눈을 감는다.
그 녀의 모정에 눈물 흘리면서 역시 아시안의 정서는 비슷하다고, 아니 모정은 전 세계인의 공통어라고생각했다.
늦은 밤, 뮤지컬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많은 아쉬움을 느꼈고 함께 간 폴라와 그녀의 친구 테스는 케네디언의 긍지를 느끼는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