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연금자 예비 연습 / 김옥인
4월 초에 다친 팔이 한 동안 약을 먹으며 연고도 바르고 압박붕대로 보호도 했건만
두달 가까이 되어도 예전같지 않아 6월 초부터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 손목 다친 일주일후 4월 15일 전원에서
임시평상을 만들어 놓고 쉬던 때)
그런데 10번 치료를 받기 위해 시간을 예약하는 점에서
나의 일이 정기적 출퇴근 하는 것이 아니므로 곤란했다.
우선 반 정도만 예약을 해놓으면서 아침일찍으로 잡아 두었는데
혹시라도 치료후 오후에 일하게 되면 해야지.. 싶어서였다.
그러나 치료받고 나면 손과 손목이 얼얼하여 쉬어야 했다.
그러면서 이날은 쉬는 김에 확 쉬기 시작했다.
(세종류 물리치료를 ..)
물리치료 연구소가 1996년부터 98년끼지 살았던 동네에 있다.
하루는 치료다음 길가의 카페에 앉아 오가는 전차를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했다.
모두 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하루가 시작되는 시각에 호젓이 혼자 앉아 있다보니,
햐! 연금자가 되면 이리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네.. 생각이 드는 것이다.
( 6월 9일 cafe winter에서... )
이러면서 물리치료 받는 날마다 연금자 예비연습이 시작되었다.
그 다음번도 치료를 마친 다음
어슬렁거리며 전차 두정거장 정도 떨어진 대학로로 걸어 왔다.
내가 음악학을 공부하던 당시 우리 학과가 머물었던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
신형대학건물 건너 '막시밀리언 카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로 근처에 보이는 '보티브'성당을 150여년전에 지을때
오스트리아 대공 막시밀리언이 축성기금을 모아서 봉헌했다고
그의 이름이 카페의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그 시절 달변가 였던 대학동료 하나가 한밤중까지 어찌나 얘기를 쉬지 않고 했던지,
이 카페 종업원이 이 달변가를 눈치챘던가
' 손님들 얘기가 마치면 찻잔과 컵을 그냥 여기 야외 탁자에 놓고 가세요.
저는 지금 퇴근하면서 카페문을 닫어야 하거던요.." 라며 말한 다음 가 버렸다.
그 종업원이 간 다음에도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무슨얘기를 그리도 했었을까?
그 동료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었는데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
늦은 나이에 다시 음악학 이론으로 전공을 바꾸었던 사람이었다.
남들이 최소 6년걸리는 대학석사과정을 2년에 마치어
대학전체에 화제를 뿌리고 박사과정을 밟았었는데,
그 후에 연락이 끊겨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인식욕에 번쩍이던 눈빛이 아직도 선연한데.
카페앞에는 대학생들의 자전거가 빼곡이 놓여있다.
아침을 시켜놓고 천천히 먹으면서
건너편 대학을 다니던 때로 서서히 진입한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건너 대학 부속건물 향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약자로 NIG 이라고 부른다.
금년이 비인대학이 1365년부터 설립 650년이 되는 해이므로
숫자가 적혀진 깃발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제일 눈에 띄게 바뀐것이라면,
내가 다니던 시절 승강기 문이 아예없이 입구가 열려있으며
한층마다 널 뜨는 것처럼 타고 내리던 승강기는 없어지고 새로운 신형이 설치되었다.
잠시 아쉬움에 젖다가 제일 윗층 대학식당으로 올라간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텅 비인 식당에서
창너머로 보이는 시가지를 내다보며
그 시절의 내가 즐겨 앉았던 자리가를 서성인다.
'생의 한가운데' /
MITTEN IM LEBEN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복도에서
시험준비하는 대학생들이 보인다.
이 들은 알까?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인생의 한기점이라는 것을.
루이제 린저가 쓴 소설의 제목에도 " 생의 한가운데'가 있는데
여고 시절에 전혜린 번역소설을 읽었었고
이곳 비인에 와서 독일원본으로도 읽었었다 .
제목이 맘에 들어서 읽었던 기억에
현수막을 보면서 향수에 젖는다
이왕 시작한 대학로 산책을 본부 건물로 향한다.
라틴어와 철학강의를 받으러 부지런히 다니던 길을 거닌다.
겉모습은 거의 변함이 없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부분적으로 현대화 되어 있었다.
중정마당 위를 유리로 덮어 휴식처로
마당에 승강기 건물을 세우거나 ..
어찌 구습에만 머무리리.
대학본부 정면으로 나온다.
'650' 주년 기념 깃발이 날린다. 올해내내 이러리라.
다음에는 700주년 깃발이 날리겠지.
그때 나는 어디에 ...
길을 건너와 이제 어디로 ?
잠시 생각을 한다.
연금자 예비 연습을 하다보니
정말로 시간에 구애 받지않고
다니는 즐거움이 넉넉하다.
또 하루 물리치료를 마친후 가까운 거리를 걷다가는
옛날 베토벤 장례미사를 성대하게 지내었다고 아직도 회자되며
청년시절 슈베르트가 ' 믿음, 소망, 사랑' 미사곡을 처음으로 헌정한
'알저 삼위일체 성당'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래전 이곳 성당합창단을 지휘하던 음악학 교수의 초대를 받아 처음으로 찾았던 때가 떠오르며 웃는다.
서울의 교회나 성당안은 따뜻했던 것을 기억하며 한복에 두루마기 차림으로 찾았던 그해 겨울!
아... 얼마나 성당 안이 추웠던지 으흐흐...
이제 들어와 살펴보니 지나간 세월동안 내 눈이 이곳 문화에 밝아졌는가
보이는 조각들의 의미가 닥아오면서 친근하다.
당장이라도 파이프올겐소리가 들릴듯..
성당축성한 바로크시절부터 얼마나 많은 강론이 이곳에서 이어왔을까...
오!성 안토니오! 조각상이 성당안 제일 앞 오른쪽 벽위에 보였다.
그 순간, 요 며칠전 3기 조영희 선배님께서 지으신 ' 걸어서 2천리 산티에고'에서 읽었던 내용중에
예수님을 안고계시던 성인 안토니오에 대한 저자의 에피소드가 가 떠오르면서 너무 기뻤다.
성 안토니우스 조각상 아래 옆문으로 나가니
미노리텐수도원으로 통하는 곳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좀더 앞쪽으로 가니 성 안토니우스 채플이 있다.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니 제단뿐이 아니라 천정에도 성인이 부조되어 있다.
한구석에 있는 가난한이들을 위한 헌금함 위에도 ' 안토니우스의 빵'이라고 적혀있다.
점점 호기심이 나 회랑을 둘러보다가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있는 이탈리아의 '파두아' 성당과 결연을 맺고 있다는 것이 적혀진 것을 보면서
삼년전 여름휴가때 다녀온 그 곳이 떠 오른다.다시 또 가보고 싶은 곳!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에도 성 안토니우스상이...
다 돌아 보고 나오는데 슈베르트의 ES DUR 미사곡 연주회 포스터가 보인다.
예전 추운 겨울에는 하이든의 미사곡을 들었던 것이 떠오른다.
그저,그저 예전 일들이 꾸역 꾸역 떠오르는 것이 연금자의 생활이려나?...
우선 연금자가 되면 지난 날을 떠 올리는 시간이 많지 않을까?
이날 cafe winter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지난 날을 떠 올렸다.
이 동네 살던 때에 딸애가 중학교를 다녔었다.
비인에 와서 처음으로 엘레베이터가 있었던 아파트였다.
오래된 하우스의 달팽이 계단사이 좁은 공간에 끼워진
비록 최대 3사람이 탈 수있는 비좁은 박스형 승강기였으나
그래도 딸애는 너무나 좋아했다. 학교친구들에게 기가 안 죽는 다나 ㅎㅎ
집에서 나와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 바로 여기 이 대로가 있고
슈퍼, 세탁소,은행등등 모든 것들이 가까워서 편했었다.
그러나 아파트 바로 아래층 여자가 스튜어디스였는데 원정 비행한 다음
낮에도 잠자는 때가 많아서 우리 모녀의 피아노 연습에 여러번 불평을 하여 연습지장이 있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 여자가 이해된다. 얼마나 진저리가 났었을까?
반복되는 연습곡을 듣고 있었을 테니..
딸애가 그리도 좋아하던 이집을 한국의 IMF경제 여파로 떠나 이사했다.
아랫층 여자가 그래도 그 동안에 정이 들었던가 떠나는 우리에게
" 이제는 자장가가 안들려 잠을 못 잘것 같네." 했었지.
여기 살았을 때는 서너번 밖에 안 들렀던 카페인데
이 날따라 친숙하니 옛정이 돋으며 평소에 생각지 않았던 것들이 살아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