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날 즈음에


오스트리아서는 매년 유월 두째주일을 '아버지날'로 부른다.

벌써전부터 거리 곳곳에 `Vatertag`(Fathersday)선전구호와 더불어 선물용품들이 눈을 잡는다.


지난 주말에 친구 아버님이 가꾸시던 전원을 찾았다.

도착하자 마자 너무나 놀라워 한동안 그냥 서있었다.

야생풀이 꽃보다 훨씬 높게 자라나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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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전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산책하며 지냈던 

시냇물 졸졸흐르는 계곡이 아래로 보이는 중간 언덕 목좋은 곳에 자리잡은 

단정하던 전원의 모습은 어디를 봐도 없었다. 

재작년부터 전립선암치료를 받으시며 작년까지는 그래도 여름철에 이곳에 지내시더니 

올 봄에는 눈수술까지  받고 집에서 요양중이라 한번도 못 나온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날이 올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일까?

그해에 땅문서를 자식들이름으로 옮기며 

" 이제는 너네들이 가꾸어라. 나는 그저 잠시 쉬러 올 것이니라" 하셨었다.


자식들이 풀을 베고 담장나무를 베는 소리가 온동네로 울려 나간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가지와 잎들을 소쿠리에 담아 비료장으로 나른다.

어느 만큼 지나자  나무그늘에 앉아 잡초들을 뜯기 시작했다.

이분은 화단주위에 항상 동글 동글한 돌로 장식을 했었는데

잡초가 무성하여 돌들이 묻혀 잘 보이지가 않는다.

돌이 나올때까지 잡초를 뽑아내는 동안 저절로 그 분의 손길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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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이 가꾸시던  정원의 단정한 모습들)



이 곳에 처음 왔었을 때 그분이 설명하던 것이 떠오른다.

결혼하기전 부터  이곳 작은터를 사기 시작하고 

결혼하고서는 퇴직후 전원 주택을 지을 작정으로 옆의 택지가 나올 때마다 사들였다.

그러나 퇴직 하기 10년전에 부인이 병으로 죽고 자식들은 장성하여 모두 비인으로 이주를 하니 

이곳에 전원주택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자그마한 목재 오두막을 짓고 봄부터 가을까지 며칠씩 이곳에 나와 

전원가꾸는 것에 취미를 가지고 지냈다.


이 싯점에 친구들 따라 여기를 첨으로 찾아 오면서 

두 자식을 부인 몫까지 대신하여 키우며 재혼도 안하고 

여가시간에 온 정성을 드리는 전원을 돌아보며 

보기드문  분이시구나 ... 존경하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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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라지만

건강에 무리가 오면 이렇게 여지 없이 무너지는 것이구나.

50여년 사랑으로 가꾸던 전원이 반년도 못되어 허물어 질 수도 있구나.

첫째가 한달전 나와서 풀을 베고 갔었다는 데도 

그 동안 또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것이라니...

저절로 이 곳으로 부터 30분 거리에 자리 잡은 우리 전원이 떠 오르며

나도 건강이 허물어 지면 어쩔 수 없게 되리니 장래를 생각하여 신중해야 할 것을 각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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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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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테두리 돌들이 보인다."친구들에게  소리친다.

그들이 가까히 닥아와 내가 뽑아 논 잡초더미를 보더니,

" ㅎㅎ 우리들보다 네가 더 열심이네? 그리 좋니?"

" 그럼..다음주가 아버지날인데  그전에 모두 전처럼 가꾸면 좋잖아."

" 좋지.. 근데 나는 베를린 출장이 있는데..." 첫째가 난감해 한다.

" 내가 또 오지 . 너도 올 거지?" 둘째가 나에게 묻는다.


" 그럼... 사실 아버님을 찾아 뵙고 싶었는데..."


어느새 석양빛에  전원이  곱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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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작업복을 벗고 돌아갈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곳곳 정원기구 사물함의 자물쇠가 많아 열쇠꾸러미가 제법 크다.

첫째가 둘째에게  열쇠꾸러미를 넘기며 곳곳의 짝을 설명해 준다.

아버님이 첫째에게도 저리 넘겨주었겠지.


떠나 오기 전에 새로 단장된 담장에 서서 

마음속 그 분에게 " 또 올께요" 인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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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6일 피스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