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축대가 있던 집/신금재


비만 오면 무너져내리던 돌 축대 집

당에는 계절마다 꽃이 피었다


봄이면 나이롱꽃 

하늘하늘 보랏빛

미군들이 보내주던 나이롱잠바

아랫도리 다 내어놓은 사철 벌거숭이 

앞짱구 뒤짱구 막내아우가 입었고

그 꽃이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걸 이민 와서 알았다


여름이면 다닥다닥 앵두나무

돌축대 가장자리에서 곤두박질떨어지면

우물가 두레박 옆

깊은 우물 속으로 비치던 아버지 얼굴

이산가족 방송때마다 슬며시 사라지던 그분 뒷모습 

지붕 아래  빗물로 울고있었다


아, 가을

마당에는 노란 국화들 지천으로 피었지

함지박에 담긴 꽃들이 신작로 따라 

어머니 등 뒤로 흔들리면 

미군 부대 창녀촌 

그녀들의 못다이룬 꿈조각

붉은 등 아래 쪽방창가에

못다 핀 꿈들로 피어나겠지


개중 나무 있던 마당 양지쪽 

해바라기 하던곳

황해도 실향민 아버지 

당신의 아들이기를 바랐던 외동딸 

무릎에 눕혀놓고 하얀 서캐 잡아주면 

배꼽산 아래로 걸어 내려오던 구름 한 조각 

이산의 꿈 따라 

북쪽으로 흘러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