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돌 축대가 있던 집/신금재
비만 오면 무너져내리던 돌 축대 집
마당에는 계절마다 꽃이 피었다
봄이면 나이롱꽃
하늘하늘 보랏빛
미군들이 보내주던 나이롱잠바
아랫도리 다 내어놓은 사철 벌거숭이
앞짱구 뒤짱구 막내아우가 입었고
그 꽃이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걸 이민 와서 알았다
여름이면 다닥다닥 앵두나무
돌축대 가장자리에서 곤두박질떨어지면
우물가 두레박 옆
깊은 우물 속으로 비치던 아버지 얼굴
이산가족 방송때마다 슬며시 사라지던 그분 뒷모습
지붕 아래 빗물로 울고있었다
아, 가을
마당에는 노란 국화들 지천으로 피었지
함지박에 담긴 꽃들이 신작로 따라
어머니 등 뒤로 흔들리면
미군 부대 창녀촌
그녀들의 못다이룬 꿈조각
붉은 등 아래 쪽방창가에
못다 핀 꿈들로 피어나겠지
개중 나무 있던 마당 양지쪽
해바라기 하던곳
황해도 실향민 아버지
당신의 아들이기를 바랐던 외동딸
무릎에 눕혀놓고 하얀 서캐 잡아주면
배꼽산 아래로 걸어 내려오던 구름 한 조각
이산의 꿈 따라
북쪽으로 흘러 흘러갔다
옥인 선배님
돌축대가 있던 그집에서 결혼할 때까지 살았지요
스물 몇 살---얼른 그집에서 탈출해서 내가 꿈꾸는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었는데
돌아보니 참으로 정겨웠던 집---다시는 돌아갈수없는 마음의 고향이네요
안녕---현숙
요즈음은 자꾸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가니---
나도 결혼후 서울 성북구에서 돌축대 위에 지어진 집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축대쪽에 장독광이 있었는데 그위에 올라가서 축대아래를 보면 어찔 거리던 기억...
그 집을 떠나와서는 아파트생활을 하면서 잊어가고 있었는데,
금재후배 글을 읽으니 어제 일처럼 생생해 지네요.
그 집에서 대한민국의 변혁기 (10.26,) (12,12) 사태 등등 70년대 말을 보냈어요.
결혼하고 7년동안 애가 없어 괜하게 부지기수로 집을 증축하였어요.
툭하면 정원 공사 연못공사 등등 하며 땅을 들쑤시기도 ㅎㅎ
그래도 축대위는 무게 때문에 유일하게 그냥 놔두었었지요.
80년 중반에 딸애가 생기고 백일도 치루고,돌되기 전에 떠났었는데..
지금과 비교하니 그 때가 청춘시절이네요.
돌축대 위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볼까요?
?네----한편 올려주세요 또 다른 돌축대집 이야기 좀 들어보지요 제가 살던 돌축대집은 결혼해서 대우조선이 있는 거제로 떠날 때까지 살았으니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요 엊그제 기타배우는 클라스에서 어느분이 우리나라 전쟁시기 사진전이 열렸대요 그 사진들을 보니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하대요 아마 그 사진들 속에 저희 삼남매 한줄로 세워놓고 미군 병사가 찍은 사진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미군들이 주말에 휴가나오면 아마도 송도헤수역장에 갔다가 조개고개 넘어오는 지름길을 지나려면 우리 동네 길을 지나야하는데 돌축대가 미군들 눈에 신기하게 보였던지 우리 삼남매 한줄로 세워놓고 찰깍 찰깍 사진을 찍어주었답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그리운 시절이네요 음악 참 좋으네요 여기는 비 내려요
어찌 이리도 소싯적 기억이 선명한지요..
예전보다 더 원숙한 시에 깊게 취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