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전편 한 여자 (24) 클릭
- 81.-
그리스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파울이 방금 스위치를 킨 것처럼 여자의 상념은 먼 그곳으로 달린다.
과연 내가 거기에 꼭 가려는 것은 무엇인가? 서울 이태원에서 만났던 성빈에게서 받은 그의 형 박영빈의 전화번호는 가지고 있지만 확실한 여행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이며, 미리 연락하는 것이 어쩐지 꺼려져 그리스에 있는 영빈에게는 아직 연락 안 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우리가 얼마나 서먹할지도 모르는데.
아! 내가 이리 유럽여행 할 줄을 언제 생각했던가. 영빈씨가 사는 곳을 갈 수가 있다는 것인가? 아니야. 안 만나는 게 나을 거야. 그냥 그곳이 어떤 곳인지만 혼자 다니며 알게 되도 다행이지 뭐.
" 제이드!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요?"
" 아! 미안해요. 자, 우리 이제 가지요. 애들이 기다리겠어요."
" 그래요. 그럼... 그런데, 당신이 방금 전, 내 옆에 있는데도 꼭 저 멀리 다른 세계로 떠난듯했어요. 당신은 참으로 잡혀지지가 않는 사람이에요. 항상 그래 왔어요?"
"무슨 뜻인지? "
" 아.. 자, 갑시다." 그가 자조적으로 말한다.
" 잠깐! 할 얘기가 있어요."
파울이 그녀를 놀란 둣 바라본다. 그녀의 목소리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 파울. 나는 이곳 비엔나에 와서부터 예전의 내가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이 '항상 그래 왔어요?' 라고 묻는 말에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처럼 한 남성과 집중적으로 만나는 것도 결혼 후 처음이기에 가끔 혼동이 오고 있어요."
" 제이드. 이제 그 정도만 해요. 알았어요. 그다음 하려는 말을 듣는 것이 저에게는 힘든 것이에요.제발"
".....................'
이제 아무 말이 필요 없다. 그래 가자. 떠나자.
둘이서 수사한테 온다.
" 제이드, 몸도 성치 않은데 오늘 무리한 것 아니에요? 언제라도 또 와요. 여기는 항상 제이드를 위해 비워 놓을게요. 하하하!"
" 수사님 오늘 고마웠어요. 7월 연주회 때 꼭 오세요. 저는 내일 비엔나로 돌아갔다가 여행을 떠날 거에요."
" 그렇군요. 그럼 건강히 다녀오기를.. "
"예. 그럼 안녕히 " 언제 다시 이곳에 또 올 수 있으려나.. 아쉬움이 일어 언뜻 떠나지를 못 한다.
" 제이드, 내가 선물 하나 줄게요. 잠깐만 기다려요." 말이 마치자마자 수사가 황급히 방을 떠난다.
여자가 파울을 쳐다보니 그도 어깨만 들썩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잠시후 수사가 조그만 상자를 가지고 돌아온다.파울이 깜짝 놀라며 ,
" 아니? 수사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계셨어요?"
" 그럼, 자네 어머님께서 나에게 맡긴 것이 아니었나. 내 맘대로 하라고 .. 그런데, 오늘 이제 이것을 제이드에게 주고 싶어서."
여자는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의아하다.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 제이드, 이것은 로렌스 부인이 내게 부탁하기를, 만약 파울이 한 여자를 데려왔을 때, 내 맘에 드는 사람이면 주라고 했던 묵주에요. 정말 오랫동안 지니고 있느라고 힘들었어요. 허허허!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살지 모르고, 파울이 언제 또 여자를 데려올지도 모르니 제이드에게 주려고요."
" 수사님,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 제이드, 이것은 신앙을 떠나 돌아가신 로렌스 부인의 유품으로 받으시면 됩니다. 당신은 파울이 다시 노래하도록 한 것만으로도 로렌스부인에게 커다란 기쁨을 준 것이에요."
".........."
여자는 언뜻 받지를 못한다. 너무나 당황한 것이다. 파울이 상자를 가슴으로 가져가더니 눈을 감고 한참을 만지다가 여자에게 건네주며,
" 제이드, 어서 열어 봐요. 수사님 말씀대로 어머님께서 살아계셔도 제이드에게 주셨을 거에요"
여자가 발그레한 나무 상자를 받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했던 것인지 반질반질한 것이 꼭 콩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끈하다. 고리를 따고 뚜껑을 연다.
어머나!
상아로 만든 묵주가 고상하며 섬세하게 장식된 것이다. 여자는 신자가 아니라서 묵주를 가져본 적이 없지만 이것은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여자가 수사와 파울을 번갈아 쳐다 본다.
수사가 여자의 손을 잡으며 ,
" 제이드, 나의 정성으로 알고 받아 주세요. 이제 나는 더 기다릴 기운이 없어요. 그저 이 노인네의 뜻을 받아 주어요. 당신이 파울과 연주를 할 때 이 묵주를 옆에 두고 하면 로렌스부인이 두 사람을 꼭 지켜 줄 거에요."
" 수사님, 그만 하세요. 제이드에게 너무 부담주시네요."
파울이 여자가 난처해 하는 모습을 보며 거든다.
" 자네는 왜 자꾸 내 말을 끊는가.. 허! 참!"
" 예, 그럼 수사님 제가 받아 갈게요. 그러나 제가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 돌려 드릴게요."
" 아니? 귀국한다고?"
" 예. 저는 이번에만 반주할 거에요."
" 그건 그리 단정해서 얘기 할 게 안 되어요. 여하튼 그럼 오늘 이것을 받아요"
" 예, 수사님의 설득에 제가 손을 드는 거에요 ㅎㅎ"
여자와 파울이 차를 타고 떠난 후, 모퉁이를 돌아 안 보이는 데도 수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있다.
"로렌스 부인! 이제 제 임무는 마쳤어요. 이제부터는 당신께서 저 두 사람을 지키셔야겠습니다"
수사는 옆에 사람이 있는 듯 큰 소리로 말하며 수도원 안으로 들어간다.
수도원은 평소보다 더 고즈넉이 저녁이 내리고 있다.
( 계속)
그 동안, 벌써 삼 년이 넘는 기간동안,
이곳 홈피에 댓글을 주신 여러분,
개인적으로 쪽지, 메일, 카카오톡으로 격려해 주신 몇 몇분,
그리고 표현을 아니 하셨으나 열심히 읽어 주신 여러 동문님들께!
오늘 주해후배의 댓글에 답하는 글을 쓰며
더불어 '한 여자' 소설을 쓰는 저의 심경을 전해 봅니다.
유럽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고색창연한 옛모습이었습니다.
세계적 격변이었던 1989년 즈음에 대한 줄거리를 기초로 시작한 '한 여자'의 삶도
그런 유럽에 대한 첫인상이 계속 되어지는 삶속에서 연연히 머물고 있습니다.
글을 엮어가는 동안 몇 번은 중단을 하다가 현재로 뛰어 넘으며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두었었는데,
올 가을 소설쓰기 삼년차를 맞이하며 찬찬히 풀어 가는 것으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기교가 들어간 유화 같은 소설작법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그저 담담히 수채화를 그리듯
그러다 보면 언제인가는 나름대로 틀이 잡히고 정리가 되겠지 싶어서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실제로는 돌아 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새롭게 다시 살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화를 그대로 쓰다가,
가슴이 너무 저려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잊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주 삭제해 버려야지 싶지만,
그러나 한 여자의 인생이 부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향이 있어
다시 대체적인 인물이나 사건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심장이 멈추듯 환희와 황홀경의 순간,
그 누구도 모르게 오로지 혼자만 간직하려던 순간도
이제는 세월이 흐르자 모두 너무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슬퍼지는 것들이
소설 속에서는 생생히 하늘을 향해 날라가며 살아나고 있습니다.
또한 실제적 인물이 부각되면, 바로 그 개인에게 무례를 남길까 싶어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고인이 되신분에 관하여서는 더욱..
제가 이렇게 아직 완성되어진 글이 아닌 것을 연재하여 올리는 것은
동문님들께서 주시는 감상의 글을 읽으면서
감상적,논리적, 허구성 등등에 대해 재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이 소설이 마칠지는 저도 가늠 하기 어렵습니다만
마음의 끈을 풀어가는 작업으로 계속 이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끝나는 때가 있기는 한 것일까요?
기쁨과 슬픔이, 신선함과 병듦이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망라한 삶과 죽음이
이리도 가까히... 멀리... 그리고 다시 바로 옆에 보이는데요.
앞으로도 관심가지시고 읽어 주시기를 바라며
그 동안의 애정어린 격려에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깊이 머리숙여 인사드립니다.
2015년 11월 27일 아침에
비엔나에서
김옥인 올림.
(본문 계속)
-82.-
차가 달리는 내내 여자는 묵주함에 손을 얹고 어제 로렌스옹과 오늘 요하네스수사가 들려준 얘기를 상기하며 조용히 파울의 어머니 로렌스여사를 그려본다.
젊은 날 성악을 전공했던 비엔나 토박이 여인, 이탈리아 태생 남편 로렌스 옹과 결혼 후 그의 사업과 더불어 각지로 여행을 다녀야 하는 까닭에 연주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 후에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었슴에 포기하고 유일한 아들 파울을 돌보며 다시 아들의 음악공부에 같이 몰두 하였다는데, 아들이 음악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에 얼마나 커다란 기쁨과 기대감을 가졌었을까. 이 비엔나 숲에서 지내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들에게도 인생의 깊이를 알려 주었던 여인..수도원에 피아노를 기증하며 수사님과 각별히 지내던 신심이 깊었던 여인.
그러나 찾아 온 병마에 기진해가며 그녀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어찌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얼마나 안타까이 떠나야 했을까.. 아니면 초연히 돌아갈 수가 있었을지도. .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인 장래의 아들 파울을 위해 요하네스 수사에게 묵주를 맡기던 염려와 배려의 증표이리니. .아! 이 어머니의 지순한 사랑을 어찌 내가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요 며칠 동안 그녀가 사용하던 방에서 느끼던 나즉한 분위기가 바로 그녀의 숨결이었나 보다. 그녀가 듣던 레코드 수집품들로부터 보았던 그녀의 소양이 이제야 더 가까워 지네.
어머니 ! 어찌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를 이리 두고 황망히 떠나셨나요. 파울도 나처럼 어머니를 그리워할까?
여자가 옆에 앉아 운전에 몰두한 파울을 가만히 바라본다. 처음으로 그를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다. 저녁이 되기 직전 부드러우며 따뜻한 햇빛에 그의 옅은 갈색 머리가 금발처럼 빛난다. 웨이브진 몇 가닥 앞머리가 미세한 힘줄이 비치는 단아한 이마 위에 살짝 얹어 있다. 실루엣의 얼굴선이 수려한 석고상 같은데, 얼굴빛이 하얀 셔츠에 반사되어 더욱 하얗다. 그리고 긴 목이 어쩐지 오늘따라 더 길어 보이며 셔츠 칼라가 헐렁해 보일 정도로 가늘어 보인다.
그가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여자를 보며, '어..왜요?' 눈길로 묻는다.
당신이 너무나 슬프도록 외롭게 보여요. 안으로 뇌이며 눈길을 앞으로 둔다.
? 제이드, 기분이 참 신비하네요. 당신이 내 어머님의 묵주를 받은 후부터 내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어머니께서 우리 곁에 계신 것 같아요“
?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지금 로렌스 여사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하셨을까 가늠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당신도 내 맘을 느끼었나 보아요. 나는 스스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 정말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어요.이미 돌아 가신 후에야 말이에요. 사람은 뒤 늦게 깨닫을 때가 많아요... 이제 부터는 그런 시행착오 없이 살고 싶어요.
어머나!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요 지금? 파울! 좀 빨리 가요. 갑자기 딸애가 보고 싶어요. 오늘 너무 그 애와 떨어져 있었어요.“
여자가 손목시계를 보며 다그친다.
? 제이드, 당신이 그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사랑스러워요. 어찌 당신은 이리도 여러 모습으로 나에게 보여 지나요.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귀여운 은지엄마 제이드님! 하하하!“
두 사람은 만나면서 지나던 중에 처음으로 부담 없이 편안하고 정답게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 온다. 파울이 주차하는 동안 제이드가 호텔 안으로 먼저 들어 가려는데,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지가 달려와 여자에게 안긴다.
?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와. 연습 많이 했어? 그런데 현수이모가 아까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무섭게 생긴 아줌마도 같이 .“
? 그래? 누군데?“
? 교수 아저씨 반주자 아줌마래 ..“
아. 언제인가 현수에게 방송인터뷰얘기 전해 주었다던 그 반주자 ?. 그런데 왜 왔을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 속에 그려지는
수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25편
다음편이 기다려지네요
한 여자의 드라마틱한 인생여정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