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한 여자 (24)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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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파울이 방금 스위치를 킨 것처럼 여자의 상념은 먼 그곳으로 달린다.


과연 내가 거기에 꼭 가려는 것은 무엇인가? 서울 이태원에서 만났던 성빈에게서 받은 그의 형 박영빈의 전화번호는 가지고 있지만 확실한 여행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이며, 미리 연락하는 것이 어쩐지 꺼려져 그리스에 있는 영빈에게는 아직 연락 안 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우리가  얼마나 서먹할지도 모르는데.


아! 내가 이리 유럽여행 할 줄을 언제 생각했던가. 영빈씨가 사는 곳을 갈 수가 있다는 것인가? 아니야. 안 만나는 게 나을 거야. 그냥 그곳이 어떤 곳인지만  혼자 다니며 알게 되도 다행이지 뭐.


" 제이드!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요?"

" 아! 미안해요. 자, 우리 이제 가지요. 애들이 기다리겠어요."

" 그래요. 그럼... 그런데, 당신이 방금 전, 내 옆에 있는데도 꼭 저 멀리 다른 세계로 떠난듯했어요. 당신은 참으로 잡혀지지가 않는 사람이에요. 항상 그래 왔어요?"

"무슨 뜻인지? "

" 아.. 자, 갑시다." 그가 자조적으로 말한다.

" 잠깐! 할 얘기가 있어요."


파울이 그녀를 놀란 둣 바라본다. 그녀의 목소리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 파울. 나는 이곳 비엔나에 와서부터 예전의 내가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이 '항상 그래 왔어요?' 라고 묻는 말에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처럼 한 남성과  집중적으로 만나는 것도 결혼 후 처음이기에 가끔 혼동이 오고 있어요."

" 제이드. 이제 그 정도만 해요. 알았어요. 그다음 하려는 말을 듣는 것이 저에게는 힘든 것이에요.제발"

".....................'


이제 아무 말이 필요 없다. 그래 가자. 떠나자.


둘이서 수사한테 온다.


" 제이드, 몸도 성치 않은데 오늘 무리한 것 아니에요? 언제라도 또 와요. 여기는 항상 제이드를 위해 비워 놓을게요. 하하하!"

" 수사님 오늘 고마웠어요. 7월 연주회 때 꼭 오세요. 저는 내일 비엔나로 돌아갔다가 여행을 떠날 거에요."

" 그렇군요. 그럼 건강히 다녀오기를.. "

"예. 그럼 안녕히 " 언제 다시 이곳에 또  올 수 있으려나.. 아쉬움이 일어 언뜻 떠나지를 못 한다.


" 제이드, 내가 선물 하나  줄게요. 잠깐만 기다려요."  말이 마치자마자 수사가 황급히 방을 떠난다.


여자가 파울을 쳐다보니 그도 어깨만 들썩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잠시후 수사가 조그만 상자를 가지고 돌아온다.파울이 깜짝 놀라며 ,


" 아니? 수사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계셨어요?"

" 그럼, 자네 어머님께서 나에게 맡긴 것이 아니었나. 내 맘대로 하라고 .. 그런데, 오늘 이제 이것을 제이드에게 주고 싶어서."


여자는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의아하다.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 제이드, 이것은  로렌스 부인이 내게 부탁하기를, 만약 파울이 한 여자를 데려왔을 때,  내 맘에 드는 사람이면  주라고 했던 묵주에요. 정말 오랫동안 지니고 있느라고 힘들었어요. 허허허!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살지 모르고, 파울이 언제 또 여자를 데려올지도 모르니 제이드에게 주려고요."

" 수사님,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 제이드, 이것은 신앙을 떠나 돌아가신 로렌스 부인의 유품으로 받으시면 됩니다. 당신은 파울이 다시 노래하도록 한 것만으로도 로렌스부인에게 커다란 기쁨을 준 것이에요."

".........."


여자는 언뜻 받지를 못한다. 너무나 당황한 것이다. 파울이 상자를 가슴으로 가져가더니 눈을 감고 한참을 만지다가 여자에게 건네주며,

" 제이드, 어서 열어 봐요. 수사님 말씀대로 어머님께서 살아계셔도 제이드에게 주셨을 거에요"


여자가  발그레한 나무 상자를 받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했던 것인지 반질반질한 것이  꼭 콩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끈하다. 고리를 따고 뚜껑을 연다.


어머나!


상아로 만든 묵주가 고상하며 섬세하게 장식된 것이다. 여자는 신자가 아니라서 묵주를 가져본 적이 없지만 이것은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여자가 수사와 파울을 번갈아 쳐다 본다.


수사가 여자의 손을 잡으며 ,

" 제이드, 나의 정성으로 알고 받아 주세요.  이제 나는 더 기다릴 기운이 없어요. 그저 이 노인네의 뜻을 받아 주어요. 당신이 파울과 연주를 할 때 이 묵주를 옆에 두고 하면 로렌스부인이  두  사람을 꼭 지켜 줄 거에요."

" 수사님, 그만 하세요. 제이드에게 너무 부담주시네요."

파울이 여자가 난처해 하는 모습을 보며 거든다.


" 자네는 왜 자꾸 내 말을 끊는가.. 허! 참!"

" 예, 그럼 수사님 제가 받아 갈게요. 그러나 제가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 돌려 드릴게요."

" 아니? 귀국한다고?"

" 예. 저는 이번에만 반주할 거에요."

" 그건  그리 단정해서 얘기 할 게 안 되어요. 여하튼 그럼 오늘 이것을  받아요"

" 예, 수사님의 설득에 제가 손을 드는 거에요 ㅎㅎ"


여자와 파울이 차를 타고 떠난 후, 모퉁이를 돌아 안 보이는 데도  수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있다.


"로렌스 부인! 이제 제 임무는 마쳤어요. 이제부터는 당신께서 저 두 사람을 지키셔야겠습니다"

수사는 옆에 사람이 있는 듯 큰 소리로 말하며 수도원 안으로 들어간다.


수도원은 평소보다 더 고즈넉이 저녁이 내리고 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