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전편 한 여자 (21) 클릭
한 여자( 22)
-74.-
"미하엘이 왔는가? 내려가 봐.. 그럼 나는 내 방에서 쉬다 저녁먹으러 갈 때 내려갈게. 내가 한 말 잘 생각해 보고."
" 예, 아래 로비에 있다고.. 그럼 어르신 좀 있다 뵙게요."
그와 헤어진 후 아래로 일부러 천천히 승강기를 안 타고 내려온다.
왜? 온 것이지..
로비에 그가 안 보여서 바깥으로 나간다. 예상대로 야외 카페에 앉아있던 그가 여자를 보더니 손을 번쩍 들며,
" 와! 여기에서 보니 신선하네 .. 요 난장이야! 하하하!"
그는 여자를 여러 호칭으로 부르며 스스로 즐거워 하는 취미가 있다.
" 그래! 요 장다리! 오지 말라니까 왜 부득부득 온 거에요..."
" 아니 일원천리 보고싶어 온 사람에게 이런 대접을 하다니.. 우리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야?"
"..........."
지금 내가 농담하고 싶은 심경이 아닌데.. 몰라요?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에요? 여자는 직접 묻지는 않지만 속으로 복잡하다.
" 제이드가 누구를 만났었는데 얼굴이 왜 이렇게 부석부석해. 울었어?"
어머! 어쩌면 이리도 알아챌까?
아무 말도 못하는 여자를 가만히 살피더니,
" 내가 근접하지 못 하는 제이드의 옛날로 돌아갔었나 보다...."
자조적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이 좀 어둡다.
" 미하엘, 나도 오늘 아무 것도 모르고 로렌스옹 따라 온 것이에요. 클라우스 선생님을 만났어요. 많이 여위고 편찮으신 모습에 놀라웠어요. 물론 예전 얘기들을 나누며 다시 그 시절을 회상하였지요..."
" 그래, 로렌스 옹은 언제까지 제이드를 이렇게 묶어 놓고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게 하는 거야. 이런 일이라면 사전에 제이드와 의논 했어야 하는 게 예의잖아. 그리고 제이드도 마찬가지야. 왜 미리 물어보지 않고 하는 데로 나두고.."
" 오랜 세월 동안 접하면서 저절로 생긴 습관이겠지요..."
"............................"
그가 입을 꾹 다문 채 커다란 배가 정박한 바다를 응시한다.
" 좋아! 내가 이리 내려온 것은 당신에게 현재를 각인 시키고 싶어서야. 당신이 작년 가을부터 머리가 어지럽다고해서 속으로 걱정 중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케른튼으로 갔다가 다시 헬기로 여기를 오는 일정을 생각하니 염려 안 될 수가 없어. 왜 그래야만 하는 거야. 클라우스를 만나러 직접 여기로 올 수도 있었잖아. 그 다음 케른튼으로 가서 계획했던 일정을 마무리 하고.. 그런데, 로렌스 옹은 부득이 자신과 같이 여기까지 동행하고 싶어 당신에게 무리한 비행일정을 한 것이야."
"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네요. 당신 경우에는... 그런데, 로렌스옹은 나에게 미리 얘기하면 내가 클라우스선생님 만나는 것을 거부할 까 싶기도 하고, 만나기 전에 그분의 심경을 어느 정도 나에게 미리 얘기 하고 싶으셨던 거에요. 너무 로렌스옹을 힐난하지 말아요."
" 흠... 그래. 당신은 언제나 그래. 로렌스옹의 일이라면 어떤 일도 제치고 해왔지."
" 미하엘! 오늘 좀 과장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평소 답지 않게..."
" 제이드! 나 다운 것이 어떤 것인데... 평소 답지 않다니... 그럼 제이드가 무어를 하나 그냥 놔두고 쳐다만 봐야 하는 게야?..아니.. 나는 이제 편해지고 싶어..."
" 편한 대로 해요 그럼.. 내가 강요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 제이드의 그런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말이 아닌 줄은 알잖아"
그럼요. 알고 말고요. 미안해요.
" 제이드 얼굴을 보았으니 되었어. 나는 저쪽 바닷가 호텔에 방을 잡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이곳에 묵을까.. 그럼 제이드가 불편해?"
" 미하엘 맘대로 해요. 나는 조금 있다가 저녁 식사하러갈텐데. 어떻게 할 거에요?"
"당신 일행들이 불편해 안 하면 동석해도 좋을텐데."
" 글쎄요.. 그럼 제가 클라우스 딸 오르넬라에게 연락해 볼게요."
" 오르넬라? 아! .. 내가 그 여 기획자 아는데.. 지난번 여기 축제에서 극장장의 소개로 알고 있거든.."
" 그래요? 그래도 클라우스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 당신이 불편한 것은 아니고?"
" ......."
" 하하하! 당신이 이리 풀죽은 모습을 보여주니 기분이 묘하네.. 좋아 부담 안 줄테니 어서 방에가서 외출할 준비하구려. 저녁 식사 후에 여기서 칵테일이나 같이 하자구.나는 호텔방을 알아봐야겠네... 비엔나로 부터 바로 달려 왔더니 피곤도 하고. 좀 쉬고 있을게..알았지? 쥐방울아! 하하하!"
일부러 유쾌히 웃는 그가 오늘따라 안스럽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여자의 손을 잡고 일으키다가 살포시 껴 안는다.
" 제이드, 너무 깊게 과거의 바다로 침전하는 것 조심해. 그러다가 다시 못 올라 오면 어떻게? 여태까지 물위에서 당신의 부포를 쥐고 있었던 나는 어떻하라고? 이번에 아주 물속에서 나와 버리면 좋겠다. 그럼 내가 다 말려 줄께."
고마워요. 노력해 볼께요.
" 어머! 미하엘! 여기서 만나다니... 아니 그럼 제이드의 그 후견인? 와! 이런..."
호텔에서 나오던 오르넬라가 놀라운 음성으로 미하엘에게 말한다. 그 뒤에 서 있던 클라우스는 미하엘을 살피는 눈으로 쳐다 본다.미하엘이 여자를 풀어주며 그들에게 인사를 한다.
" 미하엘 입니다. 마에스트로! 존함을 익히 저의 외할아버님으로부터 어렸을 적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 아. 그래요? 할아버님 존함이?"
" '션 피갈' 이십니다."
" 아니! 그분의 외손자 이라고요.. 허 참! 세상이 이리도 좁다니.. 그러고 보니 훤칠한 모습이 많이 비슷하군요."
"파! 우리 오늘 저녁 미하엘과 동석 할까요? 그러잖아도 제가 이 사람과 페스티발 관계로 의논 차 연락하려던 참이었거던요."
" 그렇게 하지 그럼.. 존경하던 돌아가신 피갈 화백의 외손자를 이리 만나는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니."
"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이드가 불편해하겠지만 . 안 그래 ? 제이드?"
"............"
갑자기 일어나는 일에 여자는 할 말이 없다.
" 저, 그럼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내려올게요."
" 그래 , 그사이 우리들은 미하엘과 얘기 나누고 있을게. 로렌스 옹도 곧 내려 오실거야. 제이드방에 전화하니 안 받아서 그냥 우리가 여기로 내려왔던 거니까. "
오르넬라가 웃으며 대답을 준다.
여자는 방으로 돌아 와 잠시 의자에 앉아 미하엘이 한 말을 생각해 본다.
...... 제이드! 나 다운 것이 어떤 것인데... 평소 답지 않다니... 그럼 제이드가 무어를 하나 그냥 놔두고 쳐다만 봐야 하는 게야?.. 아니.. 나는 이제 편해지고 싶어...
그래, 이제는 나도 편해지고 싶어.
-75.-
여자는 앉았던 자리를 툭 털듯이 일어나 낮에 입었다가 벗어 놓았던 옷으로 갈아입는다.
편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갖자 정말로 몸이 가벼워 지는 것이라니... 그래. ..이 아름다운 6월에 어울리게 지난 아름다운 추억만을 현재로 불러 들이자구.이제는 울지 말아야지. 미하엘도 옆에 있는데.
화장을 좀 더 손보면서 일부러 눈섭에 마스카라를 살짝 한다. 눈물로 안 번지게 하려면 울지 안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마지막으로 향수를 팔목아래 뿌린 다음 귓볼 뒤로 가만히 눌르듯이 향을 전한다. 얼마 전에 미하엘이 파리출장에서 선물로 가져다준 라바바향기이다.
.......내가 이리 내려온 것은 당신에게 현재를 각인시키고 싶어서야....
라고 미하엘이 말한 것이 떠오른다.
미하엘! 당신이 내 속에 이리 자리를 잡아가고 있군요. 불과 몇 시간 전에 이 방에 들어와서 파울을 상기하기도.. 클레멘스의 현재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며 어찌 할지 당황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당신을 방금 전 만난 연유인가요...
방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큰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자신내면에게 속삭인다. 방문을 닫고 승강기쪽 앞에서 승강기 스위치를 누르고 기다린다. 아랫층에서 승강기가 올라오다 그녀 층에서 멈추고 문이 열리며 미하엘이 내린다.
어머!
" 놀랐나? 메니져가 방을 주네. 로렌스옹과 제이드와 같은 층으로 ... 내가 짐만 놓고 내려갈게. 먼저 내려가 있지."
" 알았어요. 곧 봐요" 그녀가 대답하며 승강기로 들어가려는데,
" 아... 이 향기 ! 고마워! 제이드. 나는 당신이 통 이 향수를 이용 안 해서 별로 맘에 안 드는 줄 알고 섭섭했었는데.. "
" 미하엘! 오늘 당신 과장이 얼마나 심한 줄 알아요? ㅎㅎ"
" 그래? 그렇다면 이렇게 더 과장해도 되지?"
그러더니 여자를 힘주어 껴 안으며 귓볼 뒤로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 흠.. 흐음.."
" 아.. 참..이러면 어떻게요." 당황하며 그를 밀어낸다. 아주 찰나적이었지만 파울이 비엔나 숲에 있는 호텔방 앞에서 여자를 뒤로 안으며 그의 머리로 그녀의 머리를 흐트리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이다.
" 제이드! 왜 이리 민감한 반응이야.. 내가 실수를 한 것이야? 좋아! 자, 그럼 어서 내려가요"
" 알았어요" 흐트러진 귓가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 내리며 승강기 안으로 들어간다.
승강기 문이 닫힌 후 실내안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본다. 발그레한 볼이 눈에 뜨인다. 백을 열어 콤팩트를 꺼내 볼타취를 해 준다.
아.. 오늘은 왜 이리도 모든 지난 것들이 가까이 실제처럼 나타나는 것인가.
로비층에 도달해 문이 열리는데, 오르넬라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 오! 제이드! 어쩌면 이리 아름다울까? 피곤도 안해? "
그녀의 찬사에 더욱 더 얼굴이 달아 오른다.
" 호!호! 호! 제이드가 아직도 수줍음이 있구나. 나는 도통 그런 감각이 없는데 말야. 자! 그럼 저기로 가자구 모두들 기다리고 있어. 로렌스옹이 제이드 배려하시는 게 보통이 아니셔. 오늘은 무조건 제이드 뜻대로 해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 .. 많이 부럽네, 제이드가 "
" ...."
왜들 모두 과장되게 이러는 것이지.?
조용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여자가 움직이자 오르넬라도 말을 끊고 같이 바깥으로 나온다.
로렌스 옹은 크림색 마쟈켓에 흰 셔츠를 받혀입고 있다. 그의 백색에 가까운 금발 머리색과 잘 어울린다. 귀족적인 그의 면모가 더 돋보이면서도 웬지 고독해 보인다. 반면 클라우스는 연 하늘색 셔츠에 미색 거디건을 어깨위로 두르고 있는데 경쾌한 모습이, 금방이라도 가볍게 산책하려는 둣하다. 오르넬라는 넓적 다리 아래 까지 내려오는 자주색 윗도리에다 연 회색 넓은 마바지를 입고 있는데 회색 머리색과 조화로우며 길게 늘어진 목거리의 장식이 그녀를 생기있게 한다.
여자는 커다란 장미 문양이 사선으로 들어간 검은 쉬폰 끈 없는 원피스에 숄을 받쳐 입었다. 팔에는 저녁바람을 대비하여 볼레로를 들고 있다. 여자가 자리에 앉기 전에 세 사람 모두 유심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 아니 왜들 이리 쳐다 보세요. 무안하잖아요. ㅎㅎ"
" 제이드. 아까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이 보기 좋군. 든든한 후원자가 나타나서 그런가? 허!허!허!"
클라우스가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
"..... 놀리시지 마세요 선생님. 저는 사실 그 사람이 갑작스레 와서 좀 불편해요"
여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말한다.
" 제이드. 클라우스와 오르넬라는 그 사람을 잘 모르지만 , 미하엘은 제이드를 통해 어느 만큼은 옛날의 관계를 알게 아닌가. 그러니 불편해 할 필요가 없네. 클라우스와 오르넬라는 과거의 자네를 만나려고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니니까.. 안 그렇나? 클라우스!"
"물론이지. . 그동안 우리가 못 만나는 동안의 제이드가 어떻게 지냈는가가 궁금했었지만 오늘 잠간동안 제이드를 만나면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어... 제이드. 자네가 이리 굳건히 존재하는 모습이 든든하네."
" 아. 모두들 왜들 이러세요.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 호호호! 파! 그리고 로렌스 옹! 정말 제이드가 아직도 저런 모습을 보여주니 저는 부끄러워요. 이젠 중성처럼 수줍은 것 없이 매사를 대하는 제가 말이에요. 호! 호!호!"
그녀의 웃음에 주위의 손님들이 관심가지고 쳐다 본다.
" 와! 무슨 테마로 분위기가 이리도 웃음이 넘칩니까?"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멘 미하엘이 어느새 다가와 합류한다.
" 아.. 그런 얘기가 있었네. 자 그럼 이제 떠나지 우리 . 오르넬라 차량은 ?"
클라우스가 묻는다.
" 차 두 대를 준비했어요. 파는 물론 제이드와 동승하시기를 원하시겠죠? 로렌스옹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와 미하엘이 같이 타고 갈게요. 오가며 페스티발건을 의논 해도 좋으니까요."
오르넬라가 이미 결정된듯이 말한다.
" 잠깐, 오르넬라! 내 생각은 , 나도 미하엘과 의논할 일이 있어 미하엘과 동승하고 싶으니 우리 셋이 같이 가고 , 클라우스와 제이드가 단둘이 동승하며 하고 싶은 얘기들을 더 나누지 그래."
로렌스옹 말이 마치자 마자,
" 역시 율리오는 내 맘을 잘 아네그려. 자, 그럼 제이드 ! 이리 와서 나랑 데이트 계속 하자고"
제이드가 찰나적으로 미하엘을 쳐다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 하! 이렇게 제이드 인기가 높은 줄 몰랐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운전을 안 해도 되니
음료수를 맘 놓고 들어도 되겠네요. 안 그래? 제이드."
" 자.자 이제 팀이 짜였으니 출발하시지요. 호텔 측면 길에 차가 이미 대기 중이에요."
다섯 사람이 모두 일어나 대기 중인 차 쪽으로 가니 기다리던 기사들이 각각 차 문을 열어 준다.
앞차에는 클라우스와 제이드가 나란히 뒷자리에 앉는다. 뒷차에는 앞자리에 미하엘이, 뒷자리에는 로렌스옹과 오르넬라가 앉는다. 모두가 좌정을 하자 동시에 두 대의 승용차가 움직인다.
6월 중순의 석양이 부드럽게 내리는 아드리안 해변가를 자동차가 미끄러지듯이 달린다.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를 보는데, 바로 빠르게 돌아 가는 영화 필름처럼 돌려지다가 갑자기
?탁’ 끊어지며 영화테이프가 휘리릭 거리는 허공 속에 한사람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른다.
오! 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