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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주년 기념 중편 불교소설 공모 당선가작-구슬아 4 법보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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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를 강제로 환속시키게 되면 사납고 나쁜 무리들이 목숨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 시끄럽게 선동하며 화란(禍亂)을 일으킬 걱정이 없지 않으니, 상의 뜻을 굳게 하여 꺽이지 마소서. 그리고 그 방법은 반드시 점진적으로 하되, 먼저 양민의 역을 너그럽게 해서 백성을 몰아가는 일을 막고 과조(科條)를 엄격히 세울 것이며, 또 입산 금지의 명령을 거듭 밝히고, 친속 또는 전토(田土)가 있는 자들은 군보(軍保)에 충정하여 공역(公役)에 응하도록 한다면 이것 또한 점진적으로 줄이는 한 방법이 되니, 민적(民籍)이 정리되기를 천천히 기다렸다가 사람들의 역(役)이 고르게 된 뒤에 영을 내리면 이교(異敎)를 영구히 혁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성에 니원(尼院)이있는 것은 극히 부당하오니 먼저 혁파하여 이단을 배척한다는 뜻을 보여야됩니다." 정초(正初)의 일이었다. 새해의 밝은 희망을 내다보고, 서로에게 덕담으로 한해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정초에 조정에서는 불교를 영구히 혁파할 계획부터 수립했던 것이다. 1월 5일에는 임금이 유계, 정태화와 자리를 함께하여 국책을 의논하다가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태화〉 전번에 승려를 환속시키라는 분부가 계셨으니 이는 매우 거룩한 처사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시행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데 담당관서에서도 역시 이러한 의견입니다. <임금〉 나도 다시 생각해보니 도태시키는 것이 진실로 마땅하나 소란스러울 염려가 없지 않다. 그러니 지방에서는 일단 서서히 실시하고 도성 안에 있는 두 니원을 우선 혁파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태화〉 이는 바로 역대 제왕에게 없었던 거룩한 일이니, 성상께서 만일과 단성 있게 행하신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읍니까. 다만 이 니원이 언제 창설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듣건대 오래 전부터 연로하여 의탁할 때 없는 후궁이 의해 니원에 거한다 하옵고 선왕조(先王朝)때의 후궁도 나가 살고 있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만일 이런 것을 갑자기 혁파하면 그들이 돌아갈 데가 없게 되니 도리어 염려가 됩니다. <임금〉 선조조에 은혜를 받은 상궁 박씨가 의지할 데 없어 삭발하고 여승이 되어 자수원에 나가 거주하였었는데 지금은 이미 죽었고 지금은 살고 있는 자가 없다. <유계〉 니원을 헐어버리라는 분부는 실로 이단을 물리치시려는 성상의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더구나 선조의 후궁은 니원에 나가서 거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데 어찌 이러한 조치로 구애받을 바가 있겠읍니다. 이후 임금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린다. "도성 안의 두 니원은 모두 혁파하고 여승의 나이 40세 이하인 자는 모두 환속시켜 시집가는 것을 허락하고, 늙어서 돌아갈 데 없는 자는 모두 도성 밖의 니원으로 내치되, 나이가 비록 40세가 넘었더라도 환속하려고 하는 자는 들어줄 것이다. 또 자수원에 봉안된 열성 위판(列聖位板)은 지난해 봉은사에 예에 의하여 예관으로 하여금 매안하게 하되 속히 거행하도록 하라. 그리고 두 니원의 여승으로서 환속할 자가 몇 명이며 도성 밖으로 방출될 자가 몇 명인가도 아울러 일일이 아뢰도록 하라."
탑이 드리운 그림자의 기울기가 오른쪽으로 조금 비켜 있었다. 백곡은 자신이 적지 않은 시간동안 탑을 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합장을 하고 탑돌이를 시작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뒷짐을 지고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다. 탑은 워낙 재가신자들의 몫이라 스님들은 그다지 가까이 하지 않지만 백곡은 홀로 있을 때 무념의 상태로 탑 주위를 천천히 도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발 끝을 쳐다보며 걷다 보면 문득 문득 싯귀절이 떠오르는 때가 많았다.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정이 많은 백곡스님은이 시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리하거나 재창조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글: 노명신 삽화: 김영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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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주년 기념 중편 불교소설 공모 당선가작-구슬아 5
기사승인 2004.08.10 16:00:00
법이란 본래 별것 없거니
禪에 무슨 위계가 있겠는가
오랜동안 들었나니
南岳의 말은 한번 뛰어
江西를 밟는다 하네
法本無多字 禪何有幾階
久聞南岳馬 騰躍踏江西
이십여년 전에 쓴 글이다. 이때 백곡이 이십대였는데 이와 비슷한 글을 쓰기만 하면 스승과 그 주변의 문인들 또는 스님들이 무척 기뻐하였다. 백곡이 조용히 탑을 돌면서 명상하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이 때부터였다. 이렇게 조용히 명상하는 시간은 경전구절을 음미하기에도 좋았고 뛰는 가슴을 잠재우는 데에는 더욱 좋았다. 탑 주변에서 많은 글들이 나왔다.
그대가 스스로 인연이 이르는대로 따르는 것을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느니
일찍이 방외의 배움을 좇으면서도
함께 세간의 글도 깨달았지
물 속의 달은 둥글고 이즈러짐을 같이 하고
산중 구름은 뭉쳤다 흩어지니
표연히 물병과 지팡이가 있거니와
어느 곳엔들 안거하지 못하리오
爾自隨綠至 吾今着眼初
早從方外學 兼解世間書
水月同圓缺 山雲有卷舒
飄然一甁錫 何地不安居
이렇게 이십대에 편양대사가 이식(이식)대감에게 써올린 글들로 백곡은 어른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 하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위로 어른을 모시기보다는 아래로 거느리는 사람이 더 많아졌지만, 그들에게도 여전히 따뜻한 징표의 글들을 많이 썼다. 행각을 떠나는 혜심사미에게는 다음과 같은 다정한 글을 써서 보내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물 긷고 나무 나르기
얼마나 그 몸을 괴롭혔던가
다듬이 품에 한 해 지내고
온갖 천한 일로 삼년 지냈구나
오늘 밤에 내게 하직하는데
어느 산 누구를 찾으려는고
부디 도중에 탈없이 잘 가라
이별에 달아 더욱 섭섭하구나
運水般紫久 勞筋苦骨頻
砧傭經一臘 後過三春
比夕還辭我 何山欲訪人
途中善爲去 臨別倍傷神
며칠 전에는 오래된 친구로부터 반가운 편지를 받고 탑 앞에서 기뻐 뛰는 가
슴을 달랜 뒤 답신을 적었다.
岳寺의 齋鐘은 이미 그치고
산성의 畵角소리 처음 이는데
갑자기 천리의 나그네 만나
그 편에 한장의 편지 받았다
지는 해는 바야흐로 붉은 노을을 거두려는데
뜬 구름은 잠깐 사이 푸른빛을 편다
남쪽의 옛 法呂여 별 탈 없는가
어떻게 지내는가
岳寺齋鐘後 山城畵角初
忽逢千里客 憑得一封書
落日紅將 浮雲翠 舒
南中舊法呂 無恙各何居
글: 노명신 삽화: 김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