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구슬아 3간폐석교소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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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8.10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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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조에서도 말년에 성균관 유생들이 강력하게 상소하여 봉은사와 봉선사가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했었다고 들었네만 그래도 이렇게 심각한 지경은 아니었을 것이네.

그나저나 참 이상한 일이야. 상께서 등극하신 뒤 채 일년도 안되어서 우리 스승께서 열반하시더니 응준대사와 수초대사께서 뒤를 따르셨고, 이 시백, 시방대감 형제분도 모두 같은 해에 가셨던 말이야. 선왕께서 겨우 십년동안 보위에 계시다가 승하하셨는데 그 뒤를 모두가 한꺼번에 따르시다니.

든든한 울타리가 일시에 무너지더니 이렇게 감당못할 시련이 닥치는구만. 마치 맨몸으로 엄청난 해일 앞에 마주 서 있는 기분일세." 백곡은 그 즉시 봉은사로 달려 내려왔던 것이다. 부처님의 법력이라면 내 한몸 부서져서라도 이 무서운 해일을 감당할 수 있으리.

봉은사는 선종의 수(수)사찰이다. 명종 6년에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의 요청으로 봉선사를 교종 수사찰로, 봉은사를 선종 수사찰로 정하였다. 이와 동시에 오래 전에 폐지되었던 승과를 부활시켜 선종시(선종시)와 교종시(교종시)를 각각 봉은사와 봉선사에서 치루었는데, 이 시험은 문정왕후가 승하하기까지 불과 몇년동안 행해졌다.

이 승과시험을 통해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차례로 합격하여 대선사가 되었다. 명종조를 뒤이은 선조와 광해조에는 전쟁과 그 수습하는 일로 승군의 역할이 지대하였으므로 보은사는 전국팔도의 승군을 거느리는 총본부가 되었고, 조선조 어느 때에도 없는 번다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인조가 등극하여 잠시 승려의 도성출입을 금지하는 등 억불책이 머리를 들기도 하였지만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을 당하여 다시 의승군의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하게되자 그와 같은 출입금지는 자연히 해제되고 말았다.

효종대왕은 삼전도에서의 굴욕을 설복하기 위하여 재위기간동안 내내 북벌계획을 면밀히 계획하였다. 북벌을 위해서는 국력을 총동원해야 했으므로 의승군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 대한 억압은 어느 왕조보다도 미미하였다. 효종은 부왕의 나랏일을 끊임없이 도왔던 벽암각성대사를 스승처럼 받들었다. 보위에 계시는 동안에도 문득 문득 벽암대사의 안부를 신하들에게 묻곤 하였다.

우연한 일이지만 백곡과 효종은 나이가 같았으므로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전까지만 하여도 벽암대사 밑에서 서로의 친분을 다지며 형제처럼 지냈다. 일반승려들의 경우는 좀 달랐겠지만, 백곡의 경우 도성출입에 위협을 느낀다든지 천민으로 취급당하는 일은 없었다. 백곡의 유불(유불)을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과 다정다감한 인간미 때문에라도 주변의 유학자들은 오히려 그를 존경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북벌계획을 실현해보지도 못한 채 효종대왕이 돌아가시고 난 상황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19세의 현종이 등극하자마자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자의대비의 상복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워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결국은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그들의 세력이 조정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송시열과 송준길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들은 주자학의 예론을 실천하기 위한 한가지 방편으로 불교를 철저하게 탄압하려 들었다. 조선완조가 개국한 이래 가장 강력한 억불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렇게 해서 불교는 현종 초부터 이단의 교로 몰리어 찬서리를 맞기 시작하였다.

현종이 등극한지 1년4개월이 지난 현종 1년(1660년) 12월 19일, 임금은 다음과 같이 하교하였다. `이단의 교는 매우 허망하다. 절을 헐고 환속시키는 일을 비록 갑자기 거행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무리들이 멋대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도록 버려두어서 되겠는가. 이것을 다스리지 않으면 민정은 날로 줄어들고 승니는 날로
증가할 것이니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은 없을 것이다. 경외(경외)의 양민으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자는 모두 환속시키고, 만약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관리나 환속 대상자를 막론하고 모두 특별히 죄를 준다는 뜻을 분명히 알려 거행하도록 하라.'
또 현종 2년 1월 4일 부제학 유 계는 다음과 같은 차자(●자)를 올렸다.



글:노명신 삽화: 김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