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_MG_0195.jpg

(2015_04_28 knighshays garden_davon_england )


수선화

?김옥인

 

 

자꾸 흩어진다. 매끄러운 감촉이 손에 시리도록 권태로움이 들어, 보는 것을 멈추었다.

 

? 아줌마! 왜 사진을 이렇게 굴려요? 앨범에다 붙이지 않고..“

?글쎄.........“

그녀의 눈은 음성과는 달리 먼 데를 응시하며 내가 흩어놓은 사진들을 무심히 만지고 있었다.

?전에 플루트를 불으셨댔어요?“

??....잔잔한 호수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 이 사진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신경은 이 순간을 떠나 다른 데로 가 있었다. 그 사진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인사도 없이 그녀로부터 밖으로 나와버렸다.나를 무관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무안함을 느끼었기 때문이다.밖에는 하늘의 선사가 내리고 있었다.내린지 얼마 안 되었나보다.올해 들어 첫눈이구나.

 

작년에도 첫눈이 내리던 날,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무거운 가방을 옆에 들고 한참이나 거리를 헤메던 나는 새로 생긴듯한 서점을 발견하였다. 아담한 단층집이었다.

수선화의 집?

서점이름으로부터 호기심이 가득 차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서른남짓하게 보이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내가 들어온 것을 못 느끼는지 깍지를 낀 손을 목뒤로 두르고서 천정을 바라 보고 있었다. 한참 주위를 살피던 나는 입을 열었다.

 

? 새로 개업하셨나 봐요....“

? ..........“

그녀는 힐끗 쳐다보곤 다시 제 위치로 시선을 돌렸다.무안함이 얼굴을 뜨겁게 했다. 그녀의 시선은 무한한 말들을 하는 것이었다.자신이 상인이라는 것을 잊은 듯한, 또한 내가 자신의 공상을 깨뜨리기나 한 방해자인 양. 그러나 나는 서점을 나오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이랄까 호기심을 가지게 했기 때문에. 아무 책이나 빼어 보았다. 글들이 머리에 들어 올 리 없었다. 한참 그런 침묵이 흘렀다.

 

? 학생머리는 꽤 까맣군요

나는 온몸이 야릇하게 떨렸다. 그녀가 나를 유심히 보았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음성은 너무나 잔잔한 것이었다.부드럽고, 고요한.

나는 계속 책을 보았다.어쩐 일인지  얼굴을 그녀에게 보이기가 망설여졌다.

?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그녀가 옆에 다가왔다.

?? ....헤세전집이요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이 당황해 했다.그리고는

?그책 사러 왔어요?“ 라고 갑자기 사무적인 음성으로 변해 말하는 것이다.

? 아뇨... 그냥 들어와 봤어요. 새로 생긴듯해서....“

나는 그제야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 오늘 새로 시작했어요.... 아직 책들이 미비하지만 웬만한 책들은 있으니까....“

? . 갖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고를지 모르겠어요. 아줌마가 부럽네요

 

그녀의 눈빛이 흐려지더니 야릇한 미소를 흘렸다.

? 그래요? 책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요?“

? 아니... ....“

? 이 책은 내 책이 아니에요. 헤세전집은 헤세 자신 거고요. 니이체전집은 니이체 자신  거에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창백하던 얼굴에 점차 홍조가 띄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빌려오는 것뿐이에요. 이 책을 소유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 못된 생각이에요.“

나는 무어라고 말을 해야 했지만 어떤 말로 그녀의 흥분됨을 가라앉힐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냥 그녀의 시선을 피해 손에 쥐어진 책의 지면에 시선을 주는 것뿐이었다.

? 내가 별 소리를 했군요.....이상하게 학생은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게 하는 힘이 있나보죠?“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까만 한복으로 하얗게 여윈 얼굴에 조화되고 있는 두 눈은  그녀를 더욱 더 가냘퍼 보이게 하였다.

 

그녀는 망설이듯 하더니,

? 이름은?“ 내 이름을 물어왔다. 선뜩 대답 할 수가 없었다.

? 말해 봐요. 무척 알고 싶어요

? 인지에요.“

? 인지?“

?

? 인지! 내가 선물하고 싶어요. 인지가 오늘 개업하고 처음 말해 본 손님이거던요. 여러 손님이 왔다가 그냥 가버렸어요. 난 상인이 못 될런지도 몰라요.“

 

나는 마음이 점점 떨려왔다.

 

? 어느 책이던 갖고 싶은 책으로 한 권 골라봐요

한번 휘 둘러 보았다.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스쳐가는 것뿐이였다.그녀의 말들이 쟁쟁히 울려왔다.... ?이책을 소유했다고 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것은 잘 못된 것이에요’...

 

? 모두....“  엉겹결에 말해버렸다.정말로 갖고 싶은 책들이 많았다.

?모두?“ 그녀의 눈빛에서 짜릿한 전율이 전해오고 있었다.분명히 공감을 느낀 눈빛이었다. 허나 그녀는 그것을 감추듯,

? 그래요.. 욕심장이군요.“ 라고 말했다.

? 한 권을 선택할 수가 없어요. 너무 좋은 것들이 ...“

?그럼, 아무 때나 들러서 보고 싶은 책을 보도록 해요

? ....“ 난 뛰어 나오고 싶었다. 내가 그녀 앞에서 위축돠는 기분이 들었다.

? 저 가보겠어요.“

?. 그렇게 해요. 종종 들러요. 잘 가요.“

 

그 후 마음이 울적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그녀를 찾았었다. 대부분 그녀는 별로  얘기를 안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되면 마음 속에 끓어 오르는 얘기들을 억제시키게 되었다. 대신에 쓸데 없는 얘기들을 지껄이곤 하였다.나중에 그녀와 헤어져서 혼자가 되었을 땐 후회심으로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도 그런 그녀와의 엇갈린 대화 때문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내가 서점 안으로 들어섰을 때 작년의 그날처럼 내가 들어 간 것을 인식하지 못 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석유 스토브의 불도 꺼져 있었다. 어쩜 그녀는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진열장 틈으로 삐죽보이는 사진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개성적인 용모였다. 손이 시려 보기를 중단하고 스토브에 불을 부치려고 얼굴을 들었을 때 그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어찌나 그녀가 당황스레 시선을 거두던지 오히려 내가 당황해 버렸다.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인지 언제 왔니? 오늘도 손님들이 왔다가 모두 그냥 가버렸어. 내가 먼저 말을 시키지 못 했어. 낮엔 몸이 불편하길래 저녁에 문을 열었어. 괜히 오늘은 인지가 올 것만 같더군.“

? 오고 싶었어요

? 그랬어?“

? , 오늘은 학교에서도 줄 곳 아줌마 생각했어요

? 나는 가게 덧문을 닫고 문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에 보이는 먼지를 쳐다보며 저 먼지들처럼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그들의 얼굴울 그려봤지만, 모두 허상들뿐이지 인지처럼 뚜렷이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어. 그 옛날 그네들과 지낼 때엔 영원히 잊을 수 없던 것 같던 그네들이 말이야...“

 

그녀는 처음으로 지난 얘기들을 시작했다.

? 언제인가 인지가 물었었지?“

? 아줌마한테요?“

? , 서점이름을 왜 ?수선화의 집이라고 했냐고.“

? 그땐 아줌마가 입을 꼭 다무셨어요. 그래서 다신 안 여쭤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 해 주시겠어요?“

? 아직은 잘 몰라, 나는 무슨 얘기든 하겠다고 미리 생각해보고 해본 적이 극히 드물었으니까. 인지에게는 아직 이른 얘기인지 몰라. 그렇지만 지금 나는 얘기를 하려고...인지는 나에게 어떤 힘을 가하고 있어. 물론 인지는 안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 힘을 느끼고 있어.

 

옛날에, 아니 정확하게 따져 10년 전 오늘 날짜에 사랑한다고 생각한 이와 결혼을 했었어.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가장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뿐야.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몰라. 그이는 나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어.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 중의 음악적 기능을 사랑하고 있었어. 나도 그이를 그렇게 대했는지 몰라.나는 늦게서야 깨달았어.우리는 자기형성을 어떤 한 부분 속에 절대적으로 예속적인 삶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남들이 어떤 특정한 분야  속에서 자기형성을 이룬다 하더라도 나의 완성은 예술의 극치가 아니요, 종교의 극치가 아니요, 어떤 특정한 것의 극치가 아니었어.

우리의 세계엔 두 세계가 있는 거야. 서로 안다는 것은 외면적인 세계일 뿐이지. 내면적 세계의 공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너는 너로서의 세계가 있는 게고, 나는 나로서의 세계가 있는 거야먼 옛날, 수선화의 얘기는 인지도 알겠지만 자기의 얼굴을 몰랐던 소년이 물빛에 비친 자기얼굴에 도취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신화는  차라리 아름다운 얘기야. 그렇지만 지금은 자기를 완전히 모르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해.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말하는 만큼 쉬운 일은 결코 아니야. 우리는 세계의 중점을 자신에게 두었을 때, 온 세계는 나에게로 포함되고 내 세계는 영원한 것이 되는 거야.진리를 더 많이 알고 배워야 돼. 남보다 더 알고자하는 것은 아니야. 과거의  내 자신보다, 현재의 내 존재가 더 알아야 한다는 거야. 우리는 이 순간에도 점점 변하고 있는 거야. 인지에게 주어진 길은 오직 하나. 나에게 주어진 길도 오직 하나야.그렇다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도 아니야. 지금 순간적으로의 연속이 연결되는 오직 한 길이라는 거야.내가 얘기를 해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네가  나보다 못 하다고 생각함은 큰 오해야. 우리는 무엇이든지 어떤 기준이 확실하지 않는 한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거야

 

? 그럼 그분과 헤어지셨나요?“

 

?우리는 애초부터 헤어져 있던 거야, 사람이 사람과 결합은 영혼적으로 절대 불가능해.영혼은 언제나 고립되는 거야.정신적으로 공통성이 많을 수록 대화는 단절되기 쉬워.루이제 린저의 ?침묵속의 공감은 무척 괴로운 일이야. 그렇게 공감을 얻을 수록 대화는 단절되고 다음 일의 연속은 말살돼 버리는 거야.“

그다음 그녀는 내 물음에 간간이 대답만 할 뿐 지난 얘기는 끊어지고 말았었다.

 

괜히 나왔나 봐 , 다시 돌아가 볼까?

아줌마한테 뛰어 갔다. 불안하다, 스토브의 꺼진 불과 인사를 안 하고 나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서점은 아직 덧문이 열린 채다.유리문을 열던 나는 발을 멈추었다.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온다.

풀루트 소리!

연주하는 그녀의 옆에 가서 앉는다스토브의 불은 빨갛게 피어오르고 있다.

아줌마의 손은 아름다운 선률과 함께 길다란 은반 위를 날고 있다아직도 음악은 그칠 것 같지 않다.열어 놓은 유리창 사이로 가벼운 바람이 들어 온다책상 위 종이가 떨어진다.줍는다. 아니 이건? 백지 위에 아줌마의 글씨가 쓰여있다.

 

.......

생에 일어 나는 모든 일은 끝을 갖고 있지 않다.결혼도 끝이 아니고 죽음도 다만 가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생은 계속해서 흐른다. 모든 것은 그처럼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생은 아무런 논리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즉흥한다. 그 중에서 우리는 한 쪼각을 끌어내서 뚜렷한 조그마한 계획하에 설계를 한다. 포오즈를 취한 사진이다. 극장에서 처럼 차례로 진행된다. 모두가 그렇게 쓰이고 있다.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간단하게 해버리는 인간이 싫다. 모든 것은 이처럼 무섭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 / 독일 전후 문제작품집에서

 

음악이 끝나가고 있다.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 어느 덧 거리는 눈이 쌓이고 있다.

조심히 눈길을 걸어가는데  멀리서 그녀의 덧문 닫는 소리가 끊기듯 말듯 들려온다.

 

환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