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2015_04_28 knighshays garden_davon_england )
수선화
?김옥인
자꾸 흩어진다. 매끄러운 감촉이 손에 시리도록 권태로움이 들어, 보는 것을 멈추었다.
? 아줌마! 왜 사진을 이렇게 굴려요? 앨범에다 붙이지 않고..“
?글쎄.........“
그녀의 눈은 음성과는 달리 먼 데를 응시하며 내가 흩어놓은 사진들을 무심히 만지고 있었다.
?전에 플루트를 불으셨댔어요?“
?응?....응“ 잔잔한 호수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 이 사진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신경은 이 순간을 떠나 다른 데로 가 있었다. 그 사진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인사도 없이 그녀로부터 밖으로 나와버렸다.나를 무관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무안함을 느끼었기 때문이다.밖에는 하늘의 선사가 내리고 있었다.내린지 얼마 안 되었나보다.올해 들어 첫눈이구나.
작년에도 첫눈이 내리던 날,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무거운 가방을 옆에 들고 한참이나 거리를
헤메던 나는 새로 생긴듯한 서점을 발견하였다. 아담한 단층집이었다.
수선화의 집?
서점이름으로부터 호기심이 가득 차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서른남짓하게 보이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내가 들어온 것을 못 느끼는지 깍지를 낀
손을 목뒤로 두르고서 천정을 바라 보고 있었다. 한참 주위를 살피던 나는 입을 열었다.
? 새로 개업하셨나 봐요....“
? ..........“
그녀는 힐끗 쳐다보곤 다시 제 위치로 시선을 돌렸다.무안함이 얼굴을 뜨겁게 했다. 그녀의
시선은 무한한 말들을 하는 것이었다.자신이 상인이라는 것을 잊은 듯한, 또한 내가 자신의 공상을 깨뜨리기나 한 방해자인 양. 그러나 나는 서점을 나오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이랄까 호기심을 가지게 했기 때문에. 아무 책이나 빼어 보았다.
글들이 머리에 들어 올 리 없었다. 한참 그런 침묵이 흘렀다.
? 학생머리는 꽤 까맣군요“
나는 온몸이 야릇하게 떨렸다. 그녀가 나를 유심히 보았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음성은 너무나 잔잔한
것이었다.부드럽고, 고요한.
나는 계속 책을 보았다.어쩐 일인지 얼굴을 그녀에게
보이기가 망설여졌다.
?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그녀가 옆에 다가왔다.
?네? ....헤세전집이요“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이 당황해 했다.그리고는
?그책 사러 왔어요?“ 라고 갑자기 사무적인 음성으로 변해 말하는 것이다.
? 아뇨... 그냥 들어와 봤어요. 새로
생긴듯해서....“
나는 그제야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예, 오늘 새로 시작했어요.... 아직 책들이 미비하지만 웬만한 책들은 있으니까....“
? 네. 갖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고를지 모르겠어요.
아줌마가 부럽네요“
그녀의 눈빛이 흐려지더니 야릇한 미소를 흘렸다.
? 그래요? 책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요?“
? 아니... 저....“
? 이 책은 내 책이 아니에요. 헤세전집은 헤세 자신 거고요.
니이체전집은 니이체 자신 거에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창백하던 얼굴에 점차 홍조가 띄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빌려오는 것뿐이에요. 이 책을 소유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 못된 생각이에요.“
나는 무어라고 말을 해야 했지만 어떤 말로 그녀의 흥분됨을 가라앉힐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냥 그녀의 시선을 피해 손에
쥐어진 책의 지면에 시선을 주는 것뿐이었다.
? 내가 별 소리를 했군요.....이상하게 학생은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게
하는 힘이 있나보죠?“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까만 한복으로 하얗게 여윈 얼굴에 조화되고 있는 두 눈은 그녀를 더욱 더 가냘퍼 보이게 하였다.
그녀는 망설이듯 하더니,
? 이름은?“ 내 이름을 물어왔다. 선뜩
대답 할 수가 없었다.
? 말해 봐요. 무척 알고 싶어요“
? 인지에요.“
? 인지?“
? 네“
? 인지! 내가 선물하고 싶어요. 인지가
오늘 개업하고 처음 말해 본 손님이거던요. 여러 손님이 왔다가 그냥 가버렸어요. 난 상인이 못 될런지도 몰라요.“
나는 마음이 점점 떨려왔다.
? 어느 책이던 갖고 싶은 책으로 한 권 골라봐요“
한번 휘 둘러 보았다.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스쳐가는 것뿐이였다.그녀의 말들이 쟁쟁히 울려왔다....
?이책을 소유했다고
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것은 잘 못된 것이에요’...
? 모두....“ 엉겹결에 말해버렸다.정말로 갖고 싶은 책들이 많았다.
?모두?“ 그녀의 눈빛에서 짜릿한 전율이 전해오고 있었다.분명히 공감을 느낀 눈빛이었다.
허나 그녀는 그것을 감추듯,
? 그래요.. 욕심장이군요.“ 라고 말했다.
? 한 권을 선택할 수가 없어요. 너무 좋은 것들이 ...“
?그럼, 아무 때나 들러서 보고 싶은 책을 보도록 해요“
? 네....“ 난 뛰어 나오고 싶었다. 내가 그녀 앞에서 위축돠는 기분이 들었다.
? 저 가보겠어요.“
?응. 그렇게 해요. 종종 들러요. 잘
가요.“
그 후 마음이 울적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그녀를 찾았었다. 대부분 그녀는 별로 얘기를 안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되면 마음 속에
끓어 오르는 얘기들을 억제시키게 되었다. 대신에 쓸데 없는 얘기들을 지껄이곤 하였다.나중에 그녀와 헤어져서 혼자가 되었을 땐 후회심으로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도 그런 그녀와의 엇갈린 대화 때문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내가 서점 안으로 들어섰을 때 작년의 그날처럼 내가 들어 간 것을 인식하지 못 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석유 스토브의 불도 꺼져 있었다.
어쩜 그녀는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진열장 틈으로 삐죽보이는 사진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개성적인 용모였다. 손이 시려
보기를 중단하고 스토브에 불을 부치려고 얼굴을 들었을 때 그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어찌나 그녀가 당황스레
시선을 거두던지 오히려 내가 당황해 버렸다.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인지 언제 왔니? 오늘도 손님들이 왔다가 모두 그냥 가버렸어.
내가 먼저 말을 시키지 못 했어. 낮엔 몸이 불편하길래 저녁에 문을 열었어.
괜히 오늘은 인지가 올 것만 같더군.“
? 오고 싶었어요“
? 그랬어?“
? 네, 오늘은 학교에서도 줄 곳 아줌마 생각했어요“
? 나는 가게 덧문을 닫고 문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에 보이는 먼지를 쳐다보며 저 먼지들처럼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그들의 얼굴울 그려봤지만, 모두 허상들뿐이지 인지처럼 뚜렷이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어. 그 옛날 그네들과 지낼 때엔 영원히 잊을 수 없던 것 같던 그네들이 말이야...“
그녀는 처음으로 지난 얘기들을 시작했다.
? 언제인가 인지가 물었었지?“
? 아줌마한테요?“
? 응, 서점이름을 왜 ?수선화의 집’ 이라고 했냐고.“
? 그땐 아줌마가 입을 꼭 다무셨어요. 그래서 다신 안 여쭤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 해 주시겠어요?“
? 아직은 잘 몰라, 나는 무슨
얘기든 하겠다고 미리 생각해보고 해본 적이 극히 드물었으니까. 인지에게는 아직 이른 얘기인지 몰라.
그렇지만 지금 나는 얘기를 하려고...인지는 나에게 어떤 힘을 가하고 있어.
물론 인지는 안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 힘을 느끼고 있어.
옛날에, 아니 정확하게 따져
10년 전 오늘 날짜에 사랑한다고 생각한 이와 결혼을 했었어.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가장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뿐야.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몰라. 그이는 나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어.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 중의 음악적 기능을 사랑하고
있었어. 나도 그이를 그렇게 대했는지 몰라.나는 늦게서야 깨달았어.우리는 자기형성을 어떤 한 부분 속에 절대적으로 예속적인 삶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남들이
어떤 특정한 분야 속에서 자기형성을
이룬다 하더라도 나의 완성은 예술의 극치가 아니요, 종교의 극치가 아니요, 어떤 특정한 것의 극치가 아니었어.
우리의 세계엔 두 세계가 있는 거야. 서로 안다는
것은 외면적인 세계일 뿐이지. 내면적 세계의 공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너는 너로서의 세계가 있는 게고, 나는 나로서의 세계가 있는 거야. 먼 옛날, 수선화의
얘기는 인지도 알겠지만 자기의 얼굴을 몰랐던 소년이 물빛에 비친 자기얼굴에 도취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신화는 차라리 아름다운 얘기야. 그렇지만 지금은 자기를
완전히 모르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해.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말하는 만큼 쉬운 일은 결코 아니야. 우리는 세계의 중점을 자신에게 두었을 때,
온 세계는 나에게로 포함되고 내 세계는 영원한 것이 되는 거야.진리를 더 많이 알고
배워야 돼. 남보다 더 알고자하는 것은 아니야. 과거의 내 자신보다, 현재의
내 존재가 더 알아야 한다는 거야. 우리는 이 순간에도 점점 변하고 있는 거야. 인지에게 주어진 길은 오직 하나. 나에게 주어진 길도 오직 하나야.그렇다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도 아니야. 지금 순간적으로의 연속이 연결되는 오직 한
길이라는 거야.내가 얘기를 해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네가 나보다 못 하다고 생각함은 큰 오해야. 우리는 무엇이든지 어떤 기준이 확실하지 않는 한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거야“
? 그럼 그분과 헤어지셨나요?“
?우리는 애초부터 헤어져 있던 거야, 사람이 사람과 결합은 영혼적으로 절대 불가능해.영혼은 언제나 고립되는 거야.정신적으로 공통성이 많을 수록 대화는 단절되기 쉬워.루이제 린저의 ?침묵속의 공감’은 무척 괴로운 일이야.
그렇게 공감을 얻을 수록 대화는 단절되고 다음 일의 연속은 말살돼 버리는 거야.“
그다음 그녀는 내 물음에 간간이 대답만 할 뿐 지난 얘기는 끊어지고 말았었다.
괜히 나왔나 봐 , 다시 돌아가 볼까?
아줌마한테 뛰어 갔다. 불안하다,
스토브의 꺼진 불과 인사를 안 하고 나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서점은 아직 덧문이 열린 채다.유리문을 열던
나는 발을 멈추었다.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온다.
풀루트 소리!
연주하는 그녀의 옆에 가서 앉는다. 스토브의 불은
빨갛게 피어오르고 있다.
아줌마의 손은 아름다운 선률과 함께 길다란 은반 위를 날고 있다. 아직도 음악은 그칠 것 같지 않다.열어 놓은 유리창 사이로 가벼운 바람이 들어 온다. 책상 위 종이가 떨어진다.줍는다. 아니 이건?
백지 위에 아줌마의 글씨가 쓰여있다.
.......
생에 일어 나는 모든 일은 끝을 갖고 있지 않다.결혼도 끝이 아니고 죽음도 다만 가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생은 계속해서 흐른다.
모든 것은 그처럼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생은 아무런 논리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즉흥한다.
그 중에서 우리는 한 쪼각을 끌어내서 뚜렷한 조그마한 계획하에 설계를 한다. 포오즈를
취한 사진이다. 극장에서 처럼 차례로 진행된다. 모두가 그렇게 쓰이고
있다.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간단하게 해버리는 인간이 싫다. 모든
것은 이처럼 무섭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 / ' 독일 전후 문제작품집’에서
음악이 끝나가고 있다.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 어느 덧 거리는 눈이 쌓이고 있다.
조심히 눈길을 걸어가는데 멀리서 그녀의 덧문 닫는 소리가 끊기듯 말듯 들려온다.
환한 밤이다.
본인 스스로 소녀시절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부분입니다.
우리 여고시절에 한창 유명하게 듣던 플루트곡이 있었지요.
비제 작곡 ' 아를르의 여인' 이었는데 점심 휴식시간에 학교방송실에서 자주 들려 주었었습니다.
대학시절 다른 플루트 곡들을 피아노 반주해주면서 여고시절에 들었던 곡이 상기 되었었습니다.
세월이 반백년 가깝게 지난 지금 이 글을 읽는데도 그 시절 모습이 어제인 양 떠오릅니다.
몇몇 문학가 이름들이 언급된 것을 보면,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니이체 등등... 당시에 많이 읽히던 문학소설 속의 주인공들과 만나면서 사랑을 간접경험하며 삶의 의미, 결혼등등 실제적인 경험 없이 상상으로 그려 보며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회의적으로 본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 실제의 인생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시에 파문을 일으켰던 전혜린처럼 너무 인식욕에 묶여있다 일찌기 자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다행스럽다면 오히려 아직 인생을 모르는 것일까요?
그 시절 소녀가 보았던 30대의 여인이 '아줌마' 로서 표현되면서 훨씬 연상자로 생각했던 것에 미소를 지어봅니다. 또한 70년대의 한국 여인상도 얼핏 보입니다. 한복을 입은 모습. 45년 동안 한국의 여인상들이 많이 변했습니다.
서점의 덧문이 나오는 것을 읽으면서 그 시절 상가의 덧문이 나무로 되어있어 덧문을 닫고 실내에서 보면 나무틈새로 바깥의 움직임이 대충보이고 햇빛이 틈새로 강열히 들어 오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요즈음 학생들이 읽으면 그런 부분을 이해 못 하겠지요?
거리를 거닐다가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유쾌한 어린 소녀들을 보니, 본인의 그 시절이 떠오르며 그때 가졌던 소녀적 예민한 감상을 잘 극복하고 여태 잘 살아 왔구나 싶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봄입니다.
내 인생의 봄은 이렇게 오래전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인생의 고목이 되기 전에 다시 피어나는 내 안의 움트임으로
소생의 기쁨을 가지며 진정으로 살고 싶습니다.
역시~~옥인이 답구나~~*^^*
여고시절 문학소녀 기질이 다분히 많았던 옥인이~~*^^*
음악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고 말이지~~
옥인아~~봄이 성큼 우리 안에 다가왔단다~~
그래~ 우리 아프지 말고 시들지 말자~
마음만은 소녀적 감성을 잃지말자구~~*^^*
글사랑방을 찾아준 동기 동창 창임아!
세월이 어찌 이리 지나갔는지 신기하구나.
네가 잃지 말자는 감성(感性, 독일어: sinnlichkeit, 영어: sensibility)을 평생 가지고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그런데 우리가 지녔던 소녀적 감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 생각을 정리해보면...
感傷.. 좀 비관적 성향이 있어서 오래 가지면 스스로와 타인에게도 어려웁겠지?
感想.. 철학에 접근하는 자세로서 스스로에게나 아니면 이상 속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일상생활이 어렵겠고...
鑑賞... 대상을 놓고 조용히 즐기는 차원이니까 제일 부드럽다고 할까나.
보통 소녀시절에는 感傷에 빠지기 쉬운데 성인이 되어서도 이 기질에 머문다면 인간 관계가 힘들거야.
어떻든 우리가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모두 다 골고루 수료한 느낌이다.ㅎㅎ
앞으로는 너의 말대로 감성(感性) 만은 절대 잃지 말고 곱게 살자꾸나.
수선화가 철을 맞아 피어 나고 있다
얼마 전 부활절을 맞아 이나라 풍습대로
비엔나 근교의 현지인 어르신댁에 인사하러 찾았었다.
이 부부는 40대 중반과 50대에 이르른 두 딸을 두었다.
딸들이 어린 시절 인형놀이를 하도록 전원 한 곳에 놀이집을 지워 주었었는데,
이제 딸들은 출가하여 필요하지 않으나
노부부가 어린 딸들을 키우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그대로 놔두고 있다.
바로 그 나무집 앞에 피어난 수선화를 보며
내가 바로 어린 시절 그곳에서 지냈던 듯 반가웠다.
지난 주말에 비엔나 대학 보타닉 가든에서 하얀 수선화 들판을 거닐었다.
이제 생각하니 여고시절 '수선화'라는 제목의 글을 지었을 때 제대로 꽃을 보았던가 의문이 생긴다.
꽃말에 이끌리어 나름대로 상상하였던 것은 아닐까? 싶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 계절마다 곳곳에서 수선화를 만난다.
이렇게 살아가며 다시금 옛적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언니 잘 지내셨어요?
제목에 이끌려 들어왔습니다.
여고시절 그저 공부하느라 바빴던 저로서는
참으로 부럽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현실의 삶에 급급한 저로서는
아직도 인간의 삶에 우선 되어져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보다
그저 이 시간을 살아내는 것 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침에 '언제나 생의 한가운데서'-엘리자베트 슐룸프-를
읽기시작했습니다 제목을 보며 루이제린저를 떠올렸는데
이 책은 노년의 삶의 길잡이가 되고자 쓰여진 책 이랍니다
성장-직업교육-직장생활-짧은 휴지기-생의 종착으로
인간의 평균적 삶을 표현하던 공식(?)에서 벗어나
평균수명이 늘어난 오늘날은
짧은 휴지기가 아니라
노년기를 자신 안에서의 휴식기 라 생각하고
의식적이고 개인적인 통찰을 얻어
있는 그대로의 우리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타인과 대화를 통해 화합하는 과정으로 표현합니다
이제 읽기사작했지만 흥미진진합니다.
이곳은 4일 연휴중 2일 째 입니다
언니도 그 곳에서 좋은 시간되세요^^
??
답글이 늦어져서 미안해요.
여기도 연휴를 맞아 근교에서 지내다 돌아왔어요.
그곳은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못해 글을 쉽게 못 올린답니다.
얼마 전까지는 노트북을 핸펀으로 연결하여 홈피를 방문하였었는데,
이제는 자연 속에 그냥 지내고 싶어 며칠 동안 문명의 이기를 좀 미루어 놓고 편하게 지낸답니다.
위 본문의 글을 썼던 여고시절을 이제 돌아 보니,
인일여고의 수업을 하면서 늦게 귀가하여 개인 독서생활을 하며 종종 밤을 지새웠던 그 시절...
밤새고 난 다음 동이 틀 때의 그 신선한 여명, 지금도 그 감동이 가슴을 설레게 하네요.
몇 편의 창작글은 방학 중에 썼었지요.
엄마의 배려로 저 혼자 지내는 다락방이 있었어요.
일본주택이라 다락방 바로 아래가 부얶이었는데,
엄마가 음식하면서 콧노래 하시던 소리,,맛있는 음식냄새가 코를 감돌게하였지요. 모두가 그립네요.
다락방의 천정이 제법 높아 책상도 놓을 수 있었어요.
거기서 여름 밤에 백열전등 아래 조그마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 한참 돌다보면 오히려 선풍기 바람이 뜨거워지던)
완전 자유스러웁게 문학에 취할 수 있었어요.
다락방 작은 창문넘어 이웃집의 마당이 보였는데,
호기심 넘쳐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였었기도...ㅎㅎ
다락방에서 비스듬히 내려오면 연결된 방에는 세상에서 저를 제일 사랑해주셨던 할아버지가 느을 계셨어요.
할아버지는 공산당의 감시를 피해 단신으로 월남하신 후 남북 전쟁이 나는 통해 할머니와 생이별 하시고
막내 아들인 우리 아버지의 식구인 저희와 사셨지요.
인천에 머무렀던 친지 실향민들을 만나러 가실 때 어린 손녀 딸인 저를 데리고 종종 다니셨답니다.( 초등 들어 가기 전 후쯤일 거에요)
고삼때 아버지의 반대로 대학진학을 문학으로 가려던 것을 접고 음악으로 정한다음
온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듯이 밤 늦게까지 할아버지 방과 일본식 미닫이 문을 사이에 놓은 옆방에서
피아노를 연습했었는데 편찮으셔서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가 반복된 연습곡을 싫증도 안 내시며
" 옥인아! 음악이 좋구나. " 하시던 목소리가 지금 이순간에도 생생합니다.
할아버지가 그 다음해 4월에 돌아 가시면서 저는 제 생애의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었어요.
얼마나 그해 내내 섧게 울었었던지...
저의 유년시절은 어르신네와 책속에서 만나는 여러 인물들과 지내며
나름대로 상상과 더불어 조숙했던 듯 싶어요.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하니
그때 이미 순수하게 정신적으로 거의 자라서
오히려 나중에는 철이 덜 든 것 같기도 합니다.
아... 쓰다 보니 한도 끝도 없네요.
시간이 한가해지면 지난 추억을 모아 써보아야겠어요.
그런 때가 오겠지요...
신영후배가 읽기 시작했다는 글,
끝까지 잘 읽고 깊은 감동으로 채워지기를 바래요.
또 봐요! 안녕히
이 글은 인일여고 2학년 때 인일여고 교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현재 저에게는 그 교지가 없어서 습작노트에 적었던 것을 정리하여 올렸습니다.
(당시에 원고지글은 국어선생님께 드려서 없고요.)
이 글을 쓸 당시와 달리 철자법이 현저하게 바꾸어진 부분은 현재식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참고 사진:
수선화 시작부분(위) 을 적은 습작노트와
마지막부분에 나오는 인용구 (아래)를 적어 놓았던 독후감메모
그 시절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들을 메모노트에 옮겨 보관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