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전편 한 여자 (26)
-86.-
옷 갈아입으려고 가운을 완전히 벗자, 목욕 후에 발그레히 물 든 여자의 몸이 적나라하게 거울 속에 서 있다. 여자는 당황하며 들고 있던 민속옷을 두 손으로 펼쳐 앞부분을 가리듯이 거울에 비춰본다.
연보라색!
어릴 적 엄마가 양장점에서 맞추어 주었던 옷이 떠오른다. 연보라색 굵은 마 질감의 원피스에 하얀 스탠드 칼라가 달렸던 옷. 어느 초가을이었던가 싶다. 할아버지, 엄마, 오빠 그리고 어린 동생들과 월미도 소풍을 갔다가 기념사진을 찍었었는데 분명히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진을 볼 적마다 선명히 떠오르던 '연보라색'이었었다.
사람의 잠재력은 시공간을 뛰어 넘는다더니 바로 이런 현상도 아닐까.
대학졸업연주회 연주복도 연보랏빛 하늘하늘한 샤폰으로 입었었다. 깡마른 모습으로 머리를 치어 올려 목을 다 내놓아 입으며 연주회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처연하도록 아름답다는 경탄을 받았던 드레스. 그해 가을 그리스로 다시 돌아간 박영빈의 소식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던 것이 기다란 목을 타고 흘러 내렸었을까? 어느 날 기차통학 중에 기차 위 난간에 놓고 내려 내내 아쉬워했던 연주복. 그 아쉬움은 가끔 문득 씩 떠오르고 있었는데 이제 이 순간에도 또 .
생각은 계속 달린다. 어느 토요일 저녁, 그때 입었던 연보라색 홈드레스. 잔잔한 꽃문양이 보일 듯 말 듯 연연하게 푸르고 진보라색으로 장식되었던 옷. 친지가 카나다로부터 가져다 주었던 부드러운 감촉이 좋아 아끼던 옷. 그러나 그날 저녁 남편과 의견이 달라 말다툼하던 중, 격앙된 감정을 손 제스츄어로 피력하던 그의 손에 걸려 앞섶이 찢어졌었다. 분명히 작정하고 찢은 것이 아니었으나 그 장면을 어린 딸애가 보았었다.
다음날 주일, 교회에 갔다가 성가대 연습마치고 모두들 점심 먹으며 담소하는 중에 부모 따라왔던 세 살짜리 딸애가 밑도 끝도 없이,
" 아이 참! 아빠가 엄마 옷 찢었어요"라고 또렷이 말했다.
모두들 기가 찬 모습으로 부부를 쳐다 보았다. 당황한 남편이 어쩔줄 모르는 모습에 여자는 오히려 담담히,
" 얘가 놀랐었나 보네요. 어제 어쩌다가 애 아빠 손에 걸려 옷이 찢어졌었는데요"
그 일은 두고두고 성가대원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하였다.
" 어쩜 세 살짜리가 깜찍하게도 그런 말을 전한대요? 이제 아빠 엄마가 딸애 앞에서는 꼼작 못 하게 되었네요 ㅎㅎ" 라고.
그랬다. 딸애는 가끔 부부의 상상을 초월하여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여자는 생각을 털듯이 가지고 있던 민속옷을 옆으로 밀어놓고 본인의 옷으로 입는다.
내가 입을 옷이 아니야. 아니 입을 형편이 아니야. 아프다고 쉬면서 이리 옷치장하는 모습을 애에게 보여 줄 수 없어. 그리고 또한 파울의 배려를 무턱대고 받을 수도 없고.
여자가 민속옷을 들고 거실로 나온다.
" 왜 안 입으셨어요?" 비올렛이 놀래며 묻는다.
"부담 스러워서요. 그냥 평상대로 입을게요."
" 엄마! 왜? 그럼 나도 벗어야 돼요?"
" 아니야. 은지와 소연이는 그냥 입어. 엄마는 좀..."
" 아이, 그래도 아줌마가 안 입으시면 저도 쑥스러워요."
" 소연이에게 잘 어울리는데 ? 자, 그럼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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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드, 벌써 시간이 깊었네요. 마지막으로 따뜻하게 차 한 잔 할래요? 나는 진토닉으로 마감하고 싶은데요."
그렇네. 이제는 마무리할 시간.
시작이 있으면 언제인가는 마무리할 때도 오는 것..
" 그럼, 저도 진토닉으로 할게요." 여자가 대답한다.
" 아니, 괜찮겠어요? 나야 좋지만.. 제이드와 대작도 하고 하하하!"
파울의 유쾌한 웃음이 홀을 진동한다.
대기하고 있던 종업원이 다가오자 음료를 주문하고 여자를 찬찬히 바라보다가는
" 제이드가 제법 알코홀도 마시는 가 본데요? "
"왜요? 진토닉은 그리 알코홀정도가 높지 않잖아요.. ㅎㅎ"
딸애와 단둘이 부산에서 지낼 때가 떠오른다. 남편은 딸애가 백일될 때부터 직장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평소처럼 여자에게는 아무 소리 없다가,
"다음 달부터 부산으로 직장을 옮겼소. 그리 알고, 우리 지낼 아파트는 스카웃하는 회사에서 마련해 준다고 하니, 일단 나 혼자 내려간 다음에 당신하는 일과 서울집 처분은 천천히 당신이 하고.."
그는 항상 그랬다. 무슨 일이나 독단적으로. 여자는 결혼 초에 생각하기를 나이가 많은 남편이기에 나이 어린 아내를 못 미더워 그러는가 싶었으나, 결혼생활을 점점 하면서 다른 부부들과 비교하니 남편의 행동이 독선적이라고 생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되돌리기에는 이미 세월이 지나고 있었다.
남편이 먼저 부산으로 내려가고 칠 개월이 지난 다음, 딸애 돌되기 한 달 전 성탄절 즈음에 그동안 정들었던 피아노 제자들과 이별하고, 정성들여 정원을 가꾸었던 서울집을 아쉽게 처분하고 부산 바닷가에 지어진 최신식 고층아파트에서 온 가족이 합치었다.아무 연고 없는 부산에서 여자는 처음에 너무 막막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부인네들이 여자가 매일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찾아와서 자식들의 교습을 부탁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피아노 교습을 하게 되었다. 또한 여자가 서울에서 합창단 반주를 했었단 말이 전해져 부산구청의 한 어머니합창단 반주도 하게 되어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자가 내려온지 6개월 만에 남편은 부산회사와 뜻이 안 맞는다며 사표를 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 갔다. 부산회사와의 사무적 뒤처리를 여자에게 내 동겨치듯이 맡기고는 홀연히..
낮에는 교습하는 일이 있고 어린 딸에게 신경쓰느라 외로운 줄을 몰랐으나 밤이 되면 광안리 아파트12층 발코니 난간에서 바로 보이는,무서운 바람과 넘실거리는 파도소리에 여자는 몸서리치게 떨리는 고독감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때 옆집 아낙과 복도를 오가며 만났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밤마다 나가는 유흥업소를 경영하는 터에 종종 두집 아이들이 잠들면 이웃집 두 여자가 서로의 집에서 번갈아 만나 진토닉 몇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말들을 나누면서 무료한 시간들을 소모했었다.
그렇다, 그 시간들은 그냥 소모된 것들이었다.
해를 넘긴 후에 다시 서울로 올라 오면서 옆집 여자와 진토닉과의 인연을 마쳤었다.
여자가 무엇인가에 몰두한 모습을 바라보는 파울은 기분이 묘하다.
( 대체 이 여자는 어디까지가 보여지는 것일까? 어찌 이리도 깊게 자신에 몰두하는 것일까?)
진이 들어간 두 개의 잔과 토닉워터병이 탁자 위에 놓이자, 파울이 두 것을 잘 혼합한 다음 먼저 한 잔을 들며 여자에게도 다른 한 잔을 건넨다.
" 제이드, 자 우리의 신비로운 만남과 그리고 다음 달 연주회를 위해서 축배!
여자도 급히 상념을 거두고,
신비로운 만남?.. 하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 파울, 그동안 고마웠어요. 연주회를 위해 축배!"
'창!' 낭랑한 소리가 퍼져 나간다.
(한여자 4부 마침)
언니 잘 지내셨어요?
청소를 하다 말고 갑자기 궁금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한 여자'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궁금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가끔 인일 홈피에 들어오면 언니 글부터 찾았었어요.
앞으로 또 어떻게 전개될지 사뭇 궁금하지만
글 쓴다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으니
부담 적게 하시고 마음 가실 때 또 시작하셔요.
참 요즘 언니 계신 곳도 꽃잔치가 한창이겠죠?
항상 건강 잘 지키시고 따님과 아름다운 계절을 만끽하시길 기원합니다. *^_^*??
언니 잘 지내셨어요?.. 라는 '최근 올라온 글'을 읽다가
신영후배? 라고 생각하며 클릭을 하니....역시 신영후배이군요.
2012년 5월에 신영후배의 댓글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때도,
언니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어디에 계실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사진은 많이 찍으셨을까?
어떤 음악을 올리셨을까?
항상 궁금해 하는 후배입니다.
..라고 따스하게 글을 주었어요.
그때는 아직 '한 여자'소설을 시작하기 전이었어요.
그해 가을부터 시작하고 햇수로 4년 차에 이르렀네요.
연재하는 것을 일단 중단하였어요.
올해는 개인적으로 몰두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들이 진행 중인데,
소설을 쓰다보면 저절로 과거로 이입되어 실제 생활에 무리가 와서요.
그러나 꼭 다시 쓰려고 해요.
이렇게 반가운 신영후배의 글을 받고 보니
혹 다른 분들도 궁금해 하시며 연재를 기다리실 것 같아
아래에 4부를 마치며 중단하는 제 심경을 적어볼게요.
이 소설은 2012년 10월부터 처음에 어떤 확실한 구성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으나,
중요한
공간과 시점에서 맥이 나누어지며 자연히 4부에 이르렀습니다.
1부 : 1편부터 8편까지 (01단편-43단편) 유럽 첫 방문과
새로운 만남
2부: 9편부터 16편까지 (44단편-63단편) 2013년에 이른 상태에서 과거회상
3부: 17편부터 22편까지 (64단편-76단편) 2013년 시점에서 18년전의 인연과 해후
4부: 23편부터 27편까지 (77단편- 88단편) 2부 마지막부분으로 다시
돌아가며 1989년시기
연재로
써가면서 머릿속에는 이미 결말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나
그것을 향하는 과정에서 필력에 역부족을 느끼며 몇 번이나 중단을 거듭했습니다.
글을
엮어가면서 다소 힘들었으나 얘기 속에 잠기며 행복했습니다.
뒤돌아보니, 글을 멈출까 더 나아갈까 하는 갈등의 순간에 직면하면 , 시공간의 넘나듬으로 줄거리를 바꾸며 더 솔직히 쓰고 싶은 부분을 나중으로 미루어 놓고 4부에 이른 것입니다.
다음
5부부터는 본격적 유럽여행과 더불어 옛인연과 해후하며 다소 격정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만,
여고 홈페이지의 성격상
어울리지 못 한다는
생각이 들어 머뭇거리며 발표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얼마
동안 발표 중단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계속
저의 습작노트에 쓰면서 좀 더
숙성하여
윤곽이
어느 만큼 잡혀지면 다시 연이어 올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더 말씀드리자면,
처음부터 개작하여 과감하게 아무 표현의 제한받지 않고 쓰고나서
발표하고
싶은 것이 저의 심경입니다.( 홈피를 떠난 다른 어느 매개체를 통해서라도)
그동안 성원해주시며 여러가지로 의견을 주셨던 몇 분과
조용히
읽으시며 조회수를 통해 저에게 책임감을 주셨던
동문 여러분께 심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6년 4월 25일에
-87-
계단을 내려가며 정갱이 아래 복숭아뼈 위까지 긴 민속옷을 양 손끝으로 잡은 딸애의 몸짓은 어느새 숲 속 공주의 움직임이였다. 그 뒤를 따르는 소연의 움직임도 평소와 달리 다소곳하게 내려가고 있다.
걸치는 옷이 이렇게 입은 사람을 변화 시키는 것이다.
호텔로비에서 기다리던 파울이 먼저 보이는 두 아이들의 민속옷 입은 모습에 환히 미소를 짓다가
뒤에 서 있는 여자를 보며 실망의 눈빛을 준다.
" 왜, 옷이 맘에 안 들었어요?"
" 옷은 참으로 곱지만... 웬지 그냥 오늘은 이대로가 편해서요. "
" 되었어요. 편한 것이 제일 좋지요..."
" 교수님, 고마워요. 제 옷까지 준비해 주시고요. "
소연이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소연과 은지는 정말 알프스 요정 같은데? 잘 어울리네요. 자, 식당으로 갑시다."
앞장 서 가는 파울은 은회색 가는 바둑무늬의 민속옷 셔츠에 회색 마바지차림으로 평소보다 다른 분위기이다. 이 사람도 민속의상으로 저녁만찬 준비를 하고 나왔네...여자는 잠시 미안한 맘이 든다.
식당에 들어서니 중앙에 여러 개의 촛불이 있는 정사각형 테이블 쪽으로 안내한다. 은지와 소연이 나란히 앉고 은지 건너로 여자가, 그리고 그녀 옆으로 파울이 앉는다. 대기하고 있던 종업원이 다가와 음료수메뉴판을 펼쳐준다.
아이들을 위해 쥬스를 시킨 파울이,
" 제이드, 샴페인 어때요? 식사 전으로 "
" 좋아요" 여자가 대답을 하니 종업원에게 시킨다.
그런 다음 건너편에 앉은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여자로 향한다.
"제이드의 민속옷 입은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웠었는데, 못 보니 좀 아쉽네요."
"...................."
" 제이드가 아직 건강회복이 안 되었다는 것을 잠깐 잊고서 .. "
" 그래도 다행이 아이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니 좋지요? "
"예, 그리고 당신이 지금 입은 흰옷도 청초하니 아름다워요. 당신은 어떤 옷이나 잘 소화하네요. 며칠 전에 의상 디자이너 후버트가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제이드를 모델로 같이 일하고 싶다던. 하하하!"
그의 표정이 밝아지며 유쾌하게 웃으니 여자의 마음도 안심이 된다.
" 호호호! 농담이었을 거에요. 참, 그날 여러 옷들을 입어보며 나름대로 즐거웠어요."
....세상에... 며칠 전 일인데 어쩌면 이리도 오래된 느낌이 드는 것일까. 여자가 잠시 생각에 잠드는 모습을 보던 파울도 마찬가지로 감회가 깊다.
음료수가 준비되어 나오자 네 사람은 잔을 들어 '칭!칭!' 한다. 잔을 마주치는 것에 은지는 재미있어 하며,
" 소연 언니! 나하고 또 한번 하자! 응?"
은지와 소연이 건배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파울이,
" 제이드 우리도 또 해 볼까요? 자 ! 춤 볼! ( 건강을 위하여!)!"
모두들 웃음 가득하게 잔을 마주치며 가슴이 밝아 왔다.
파울이 미리 부탁하여 만들어 내 온 음식들은 부드럽고 서양 양념도 많이 넣지 않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 잡는 일이 어색한 은지를 위해 스파게티종류로 배려도 해 주어 딸애가 시종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여자는 더없이 즐거웁다.
마지막으로 후식을 시키려는데, 호텔 주인 마틴이 다가온다 .
" 제이드! 이렇게 회복되어 안심입니다. 그날은 얼마나 미안했던지요. 그날 쓰러지시기 전에 찍은 사진과 비디오자료가 있습니다. 여행 다녀오신 다음에 다시 또 오셔서 같이 보시지요. 그동안 사진사와 정리해 놓겠어요."
"글쎄요.. 확약은 현재 할 수 없지만 노력해 볼게요. 저도 이곳이 참으로 맘에 들어 두고두고 잊지 못 할 것 같아요. 특히 딸애가 승마를 좋아해서 더욱이요."
" 또 오세요. 오실 수 있을 거에요. 비엔나에서 그리 멀지도 않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후식은 우리집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로 대접해 드리겠어요. 예전에 로렌스 부인이 즐기시던 후식입니다."
" 어머, 그래요. 고마워요."
" 마틴! 잘츠부르거녹컬을 만들었어요?" 파울이 놀라듯이 반문한다.
" 예, 어머님이 좋아하셨었잖아요. 제이드씨가 이제 잘츠부르그로 여행가신다니 전주곡으로 미리 맛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마틴이 돌아가고 좀 있으니 후식이 나온다. 커다란 한 접시에 산등성이 모양으로 몇 개의 등선으로 되어진 것이다. 계란 흰자로 반죽해서 오븐에 부분적 갈색으로 구어진 케이크 위에 흰 눈같은 설탕이 뿌려있다. 곁들여 자주색 과일잼 묽은 소스가 조그만 주전자 모양 그릇에 담겨있는데 기호에 따라 적당한 분량으로 먹는 것이라고 파울이 설명해준다. 케이크가 부풀어서 커 보이지만 입으로 들어 가면 사르르 녹는 것이다.
은지와 소연은 신기하다며 함박웃음과 더불어 맛있게 먹는다.
" 제이드, 잘츠부르그에 가면 웬만한 레스토랑에서는 메뉴에 꼭 있어요. 그런데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20여 분 전에 주문을 해야 하지요.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과 같이 여름마다 '잘츠부르그 축제'기간 잘츠부르그에서 지냈어요. 어머님께서 이 음식을 좋아 하셔서 거의 매일 들었답니다. 그리고 이곳에 머물 때도 특별히 주방에 주문하여 드셨었지요."
" 아, 그런 추억이 깃든 것이군요. 잘 기억할게요."
" .........." 그가 갑자기 묵묵하다.
모든 음식을 신나고 맛있게 먹은 은지가,
" 엄마! 배가 너무 부르고 졸려. 이제 방으로 가고 싶은데."라고 말한다.
여자가 손목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홉시가 훨씬 지나고 있다.
" 아줌마, 저도 졸리려고 해요. 승마를 해서 피곤한가 봐요. 제가 은지데리고 올라 갈게요.두 분이서 더 말씀 나누세요."
여자가 파울에게 애들의 의사를 전한다.
" 아. 벌써 시간이 이리 지났네요. 언제나 아름다운 시간은 빨리 지나는 것이에요..."
... 아!. 언제나 아름다운 시간은 빨리 지난다...
" 소연아, 그럼 은지 부탁해"
" 예, 교수님, 오늘 저녁식사 참 맛있었어요. 고마워요.구테 나흐트 !"
소연이 인사하는 것을 보고 은지도,
" 프로페소아! 구테 나흐트! 마마! 구테 나흐트!"
헤어지는 인사를 하자마자 재빠르게 자리를 떠난다.
애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던 파울이,
" 애들은 애들이군요. 솔직하며 명랑하고...제이드도 그랬었지요?"
" 글쎄요..잘 모르겠어요. 파울은 어땠어요?"
"얌전했지요..너무 조용하다고 아버님이 남자답지 않다며 걱정을 하시기도."
" 그래요? 왜 그랬어요? "
"편찮은 어머님을 위해 집안을 조용하게 하려고 그랬던 거 같애요. 그러다가 습관적으로.."
" 호호호 그래도 노래는 열심히 불렀을 거 같은데요 "
" 하하하! 제이드는 상대를 유쾌하게 만드는 재질이 있어요. 제이드하고 얘기하다보면 자칫 심각하게 생각하던 것도 어느새 사라지거던요. 하하하! 그래요, 노래는 열심히 불렀지만 이탈리아의 정열적인 아리아 보다 좀 조용한 독일의 연가곡들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니까, 파울은 정열적인 이탈리아사람 아버지 보다 서정적인 오스트리아 여인 어머니 쪽을 더 많이 물려 받은 것이군요."
" 허? 정말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군요. 나는 여태 그 생각은 못 했었네요.하하하! "
" 파울이 오늘 저녁은 농담도 잘 하네요 ㅎㅎ"
"오, 허어허! 제이드! 농담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
이렇듯 6월의 청량한 날씨 속에 두 사람의 정다운 대화는 끝이 없을 듯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