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올해는 

어머니께서 하늘로 올라 가신

다음 날이  설날입니다.

 

제가 고국에 살며 

아버 살아계실 때는 

날마다 어머니를 기리며

가족이 한상에 둘러 앉아 오손도손 했었지요.

 

이제는 제가 고국을 떠나 살며

저와 딸아이가  

어머니, 할머니를 기리며 

단촐히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햇김치를 담그며 

설날음식으로  겸사해서 만들어야지 했었지요.

 

한국음식 식품점에 들러 장을 보면서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설음식들이 저절로 올랐습니다.

그 중에서도 항아리 독안에 살짝 얼음장이 덮힌 식혜의 맛이 입안을 감돌았습니다.

 

딸애는  간단히 하라고 당부하였지만 

올해는 하루당겨 먹을 설음식인지라   만들고 싶었습니다.

 

모든 양념거리를 먼저 만들어 놓고 

고명으로 올릴 지단으로 계란 흰자 노란자를 나누어 부치는데,

어머니께서 저에게 노란 코트를 마추어 주셨던 생각에 눈물이 돌았습니다.

 

시절 검은 교복코트를 입던 때에

제가 서울로 피아노 교습받으러 입으라고 

일부러 사복으로 봄코트를 준비해 주셨던  노오랗게 피오르던 ..

 

딸애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엄마! 코트 사진 있어?" 묻더군요.

"아니, 있더라도 흑백일텐데. " 대답을 하며 

너무나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어머니!

이렇게 어머니의 추억은 한도 끝도 없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딸애가

" 엄마 우리 둘이 먹을 것인데 뭐라 이리 차려요?" 하였어요.

" 나는 혼자 먹더라도 날에는 이리 차려먹을 거야. 호호.

너도 나중에  그래야 . 스스로 귀하게 생각해야 남들도 너를 대접하는 거야 " 라고 

어머니께서 저에게 말씀하셨듯이 저도 딸애에게 말해주었지요.

 

어머니,

정말 세상에서 우리 모녀가 얼마나 같이 수가 있을까요.

살아가는 동안 아프지 않고  이렇게 다정히 지내고 싶습니다.

 

식탁을 차리고 식사를 하며 

딸애에게 어머니와의 기억을 얘기해 주었어요.

 

한국에서 아파트에서 살았던 기억만 있는 아이는

저의 어릴적 단독주택의 구조를 유추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너의 할머니는  뜯어 고치기 선수 였단다.

본채와 바깥채 중간에 있던 장독대를  옥상처럼 만들었는데,

아래칸은 광처럼  겨울에는 김장김치. 식혜등등 음식을 두었고,

윗층에는 봄 여름에 고추장, 간장, 된장 만들어 햇볕을 충분히 받게 했었지.

 

그리고   위에서 보면 인천 전체가 보였단다.

그때는 단층집들이 대부분이라 

막히는 없이 멀리 답동 성당도 보이고,

석양이 지는 것 보며 그림을 그리기도 ...

나는 그때부터 멀리를 바라보는 동경형이었나 봐. "

 

" 에게!.. 장독광 위에서? .. 하긴 어릴 때는 그렇지 엄마?"

 

어머니 가신 다음  2년 후에  세상에 딸애를 보다 보면,

가끔 어머니 모습이 보입니다.

작년에 아이가  아플 적에는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들어 건강이 회복되는 모습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와의 추억으로 

우리 모녀는 즐거웠습니다

 

 

2016 2 7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