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꼭지의 머리카락은 참선공부다. 책상 밑에 넣어 둔 누룽지를 찾으려고 돌아 앉는데 밖이 수선스럽다. 무슨 일이지, 생각을 하며 누룽지를 꺼내 꼭지에게 주려는데 공양주보살이 헐레벌떡 연성의 방을 향하여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궁에서 쌀을 실은 사람이 왔나보군. 놀라서 뛰어올 법도 한 일이지.
"스님, 임금님한테서 뭐시 왔다는디요."
임금님이라구? 그게 아닌데. 하여튼 이 중생들이 겐지 고동인지 구별도못한다니까. 연성은 속으로 슬며시 웃음이 났다. 누비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나서려는데 보덕비구니가 다시 한번 숨이차게 뛰어 오면서 주지스님, 주지스님, 하고 불러댔다.
"알았네."
옷고름을 매만지며 연성은 대답했다. 꼭지는 누룽지를 받아서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절문 앞을 쳐다 보니 관복을 입은 남정네 몇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성스님은 무언가 일이 다르게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조금 이상한느낌은 받았지만 천천히 신발은 신고 나섰다. 절문 앞에 채 다다르기 전인데 쩌렁쩌렁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명을 받으시오."
스님은 잠시 발걸음이 주춤했다. 영문을 몰라 잠시 그들을 쳐다보는 사이에 성급한 다른 사내가 큰 소리로말했다.
"자수원의 주지는 어명을 받으시오."
"웬 어명이시랍니까?" 연성이 묻자.
"감히 어명을 받으라는데 무얼 꾸물거리는건가."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어명을 어떻게 받는답니까?"
다시 연성이 물으니,
"돗자리를 이 앞에다 깔고 무릎을 꿇어라."하고 대답한다.
심상치 않은 광경에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늙고 젊은 스님네들이 한 겨울에 가까운데 있을 리도 없는 돗자리를 찾는 양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누군가 급히 넓은 방석을 들고 뛰어와 연성스님 앞에 놓았다.
연성은 얼떨결에 방석 위에 무릎을 끊었다.
"성상께서 내리신 말씀을 대신 읽겠으니 공손한 마음으로 받아 들으라."
하고 말한 뒤 그 관리는 두루말이를 펴 들었다.
"허망한 이단의 교를 따르는 무리가 날로 늘어 민정은 점차로 줄고 국가의 폐해가 심대하다. 이에 양민으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자는 모두 환속시키도록 명령한다. 만약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자가 있으면 관리나 환속 대상자를 막론하고 엄한 죄를 물릴 것이다."
연성은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이렇게 오는 것이로구나. 새 임금이 들어선 이후 몰아닥치는 강력한 배불(排佛)의 움직임이 과연현실적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있었던 것이다. 왕의 교지를 다 읽은 관리는 두루말이를 다시 말아 놓은 뒤 연성스님에게명령조로 말했다.
"자수원의 주지는 어명을 어김없이 받자올 것이며 보름간의 말미를 줄것이니 철저히 시행하도록 하라. 만약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에는 왕명으로처단할 것임을 명심하라."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 위로 겨울 햇살이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승복을 입고 도성을 거니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도성을 빠져나오는 것은더더욱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연성은 승복을 입고 다니면서 거쳐야 할 번거롭고 구차스러운 통과절차가 싫어서 편법을 썼다.
양가댁 마님의 옷을 한벌 구해 입고 머리에는 쓰개치마를 썼다. 앞이마에드러나는 민둥머리를 가리기 위하여 검은 천으로 수건을 만들어 머리에 둘렀다. 추운 겨울이었으므로 눈만 내놓고 쓰개치마를 폭 뒤집어 쓰면 이상할것이 없었다.
꼴지아범은 뒤따르게 하고 길을 나섰다. 백곡스님은 아마도 남한산성이거나 아니면 봉은사 두 곳 중 한 곳에는 계실 것이다. 봉은사를 먼저 들렀다가 안 계실 경우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남한산성에 닿아야 한다는 계산을 해놓고 새벽같이 움직였다.
"스님, 임금님한테서 뭐시 왔다는디요."
임금님이라구? 그게 아닌데. 하여튼 이 중생들이 겐지 고동인지 구별도못한다니까. 연성은 속으로 슬며시 웃음이 났다. 누비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나서려는데 보덕비구니가 다시 한번 숨이차게 뛰어 오면서 주지스님, 주지스님, 하고 불러댔다.
"알았네."
옷고름을 매만지며 연성은 대답했다. 꼭지는 누룽지를 받아서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절문 앞을 쳐다 보니 관복을 입은 남정네 몇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성스님은 무언가 일이 다르게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조금 이상한느낌은 받았지만 천천히 신발은 신고 나섰다. 절문 앞에 채 다다르기 전인데 쩌렁쩌렁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명을 받으시오."
스님은 잠시 발걸음이 주춤했다. 영문을 몰라 잠시 그들을 쳐다보는 사이에 성급한 다른 사내가 큰 소리로말했다.
"자수원의 주지는 어명을 받으시오."
"웬 어명이시랍니까?" 연성이 묻자.
"감히 어명을 받으라는데 무얼 꾸물거리는건가."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어명을 어떻게 받는답니까?"
다시 연성이 물으니,
"돗자리를 이 앞에다 깔고 무릎을 꿇어라."하고 대답한다.
심상치 않은 광경에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늙고 젊은 스님네들이 한 겨울에 가까운데 있을 리도 없는 돗자리를 찾는 양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누군가 급히 넓은 방석을 들고 뛰어와 연성스님 앞에 놓았다.
연성은 얼떨결에 방석 위에 무릎을 끊었다.
"성상께서 내리신 말씀을 대신 읽겠으니 공손한 마음으로 받아 들으라."
하고 말한 뒤 그 관리는 두루말이를 펴 들었다.
"허망한 이단의 교를 따르는 무리가 날로 늘어 민정은 점차로 줄고 국가의 폐해가 심대하다. 이에 양민으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자는 모두 환속시키도록 명령한다. 만약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자가 있으면 관리나 환속 대상자를 막론하고 엄한 죄를 물릴 것이다."
연성은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이렇게 오는 것이로구나. 새 임금이 들어선 이후 몰아닥치는 강력한 배불(排佛)의 움직임이 과연현실적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있었던 것이다. 왕의 교지를 다 읽은 관리는 두루말이를 다시 말아 놓은 뒤 연성스님에게명령조로 말했다.
"자수원의 주지는 어명을 어김없이 받자올 것이며 보름간의 말미를 줄것이니 철저히 시행하도록 하라. 만약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에는 왕명으로처단할 것임을 명심하라."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 위로 겨울 햇살이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승복을 입고 도성을 거니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도성을 빠져나오는 것은더더욱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연성은 승복을 입고 다니면서 거쳐야 할 번거롭고 구차스러운 통과절차가 싫어서 편법을 썼다.
양가댁 마님의 옷을 한벌 구해 입고 머리에는 쓰개치마를 썼다. 앞이마에드러나는 민둥머리를 가리기 위하여 검은 천으로 수건을 만들어 머리에 둘렀다. 추운 겨울이었으므로 눈만 내놓고 쓰개치마를 폭 뒤집어 쓰면 이상할것이 없었다.
꼴지아범은 뒤따르게 하고 길을 나섰다. 백곡스님은 아마도 남한산성이거나 아니면 봉은사 두 곳 중 한 곳에는 계실 것이다. 봉은사를 먼저 들렀다가 안 계실 경우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남한산성에 닿아야 한다는 계산을 해놓고 새벽같이 움직였다.
환속이라니, 가당치도 않지. 그것이 어디 어명 한마디로 쉽게 될 법한 일이란 말인가.
연성은 이틀 전 왕명을 받은 후로 두 밤을 꼬박 새웠으나 엄청난 파도처럼 덮쳐 오는 이 시대의 무게를 혼자서 감당하기가 힘이 들었다. 이미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된 자수궁 주지의 힘으로는 어떤 일도 제대로 꾸려 나가기가 어려웠다. 혼자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도움을 청하든지상의라도 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들었다.
밀려오는 파도가 힘에 겨웁기야 오늘을 살아가는 스님의 입장에서 누군들감당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마는 그래도 팔도도총섭의 위치에서 궁구하는 방책이남달리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며칠간 날이 추웠기 때문에 한강이 얼어서 배는 뜨지 않았다. 되돌아갈까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연성은 다급한 마음에 그냥 얼음 위를걸어서 강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새벽 눈길을 걸으면서 얼었던 발은 마침내얼음 위를 건너면서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허름하게 차리고 따라나선 꼴찌아범이 안쓰러웠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서야 봉은사에 닿았다.
아침공양도 거르고 부지런히 걸었지만 평소 먼 길을 떠나보지 않았던 연성에게는 얼음길과 눈길이 마냥 힘에 겨웠다. 발바닥의 신경은 거의 마비상태가 되었고 발에는 이미 동상이 오는 것 같았다.
연성은 봉은사 못미쳐에 있는 작은 주막에 들러 요기를 하고 꼴찌아범이메고 있는 걸망에서 승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머리의 쓰개치마와 수건을 벗으니 선뜻한 바람이 느껴져왔다. 그래도 도성을 빠져나와 강을 건너 오는동안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마침 봉은사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안면이 있는 스님 덕분에 쉽게 백곡스님의 거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스님은 연성이 백곡스님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백곡스님도 이날 아침 서둘러 봉은사에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성은 한시름을 놓았다. 남한산성까지 오르기에는이미 너무 지치고 온 몸이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서울 근교의 몇몇 주지스님들도 도착해 있었다.
백곡스님은 봉은사를 지키는 스님 몇 분과 아침녘에 모여든 주지스님 몇분,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함께 내려온 승군대장 스님 몇 분들과 함께 선방에 모여 숙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비구니가 비구들의 의논 중간에 느닷없이 끼어드는 것이 마땅치 않아 연경은 곧바로 백곡의 방으로 들어가 우선 숨을 돌리기로 하였다.
아침에 도착한 백곡스님을 위하여 불을 때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방이 한 쪽으로는 썰렁한 기운이 들었다. 연경은 피곤에 못 이겨 방바닥에 누웠다가 그대로 새우잠이 들고 말았다.
목이 따끔거리고 온몸이 끈끈한 느낌이 들어서야 연성은 잠에서 깨었다. 목에는 두터운 털목도리를 두른채였다. 머리에는 베개가 받혀져 있었고이불이 덮어져 있었다. 방바닥이 뜨끈뜨끈했다. 온 몸에 땀이 배어 있었다.주위를 돌아보니 백곡스님이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
연경은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백곡을 향해 마음 속으로 조용히 불러 보았다.
소리없이 일어나 앉았으나 무언가 열중해서 쓰고 있는 백곡에게 말을 걸수가 없었다.
몇년만인가. 이렇게 다급한 일로 해서라도 만나게 된 것이. 까마득히 오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곡이 종단(宗團)내의 일을 많이 맡아 갈수록 오누이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자연히 적어져 간 것이다.
쌍둥이로 태어날 때 백곡이 연성보다 더 먼저 나왔기 때문에 연성은 나이가 같은 백곡에게 영락없이 오빠라고 부르며 성장하였다. 대체로 남자 아이들이여자아이들보다 늦되게 마련이었으나 백곡의 경우는 달랐다. 다정하고따뜻한 성격이 많아 언제나 연성을 감싸주었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후로는백곡의 보살핌이 더 더욱 세심해져서 연성은 백곡을 마치 부모처럼 생각하고 의지하며 살아왔다.
연성의 어머니는 불교도였다.
글/노명신
삽화/김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