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올해를 넘기기가 어렵다는군..."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이 말끝을 흐리며 미스터 홍의 아들 소식을 전했다.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에는 비엔나미스라고 불리는 베트남인들이 꽤 많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 김치를 좋아해서 남편이 가끔 도움을 받거나 인사를 전할 때면 김치를 가져가곤 하였다.
지난 여름에도 여러 차례 김치를 가져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 미스타 홍의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식구들이 김치를 너무 좋아해서 만들어보고 싶은데 와서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 주말에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가지 못하고 재료와 만드는 법을 적어서 보내기만 하였다.
그런데 몇일 후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스터 홍의 아들이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이었다.
병원으로 문병을 가야지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였는데...

크리스마스를 몇 일 앞 둔 어느 날 그 청년은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미스터 홍의 가족은 그 청년이 어렸을 때 이 곳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이제 나이 스물이니 십 년 좀 넘게 이 곳에서의 삶을 살고 마친 것이다.


이 곳 캐나다에서는 휴너럴홈이라고 하는 장례식장이 있는데
퇴근을 한후 우리는 주소에 적힌 그 곳으로 찾아갔다.
시내 한복판에 보통의 다른 상가 건물처럼 나란히 장례식장이 있었다.
문 입구에서부터 조화들이 놓여있었는데 우리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조화로 사용하는 꽃들은 주로 흰색 계열인데 비하여 이 곳에서는 빨강 노랑등 원색의 꽃들도 많이 있었다.
주로 베트남인들이 많았고 캐네디언들도 있었다.
앞 쪽에 관이 놓여져있었고 그 청년의 시신이 여러가지 곰인형들과 꽃에 싸여 있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스무살 청년의 심장이 벌떡벌떡 고동을 치면서 그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 저 나이에...
왜 무슨 병이기에 저리도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베트남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진행되는 순서나 그 억양으로 보아서 죽은 이를 위한 연도(카토릭에서 죽은 이를 위하여 바치는 기도)를 바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별예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맨 앞 좌석에 앉아있던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온 손님들에게 일일이 악수하고 고인과의 이별을 나누는 순서였다.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더니 급기야 그 청년의
어머니가 오열하고 말았다.
그래, 자식은 죽으면 그 부모 가슴에 묻힌다는데...
그 아픔과 슬픔을 어찌 감당할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득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이 났고 유난히도 아들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남편에게 이 말이 하고 싶었다.
"큰 애에게 너무 심하게 하지 말아요. 친구들 너무 좋아하고 운동을 하루라도 안하면 몸살나고... 그게 다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아무 말없이 남편은 앞만 보며 운전을 했지만 그 후로 아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written by 신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