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에서 바라보는 거리의 눈풍경이 오늘따라 더욱 정감있게 느껴진다.

올림픽 프라자에 그 무성했던 나뭇잎들과, 늘 들려오던 음악 소리들이 사라져버린 지금, 공원은 또 다른 얼굴로 거기에 그대로 서있다.
캘거리 타워의 그림자가 하야트 호텔 위로 반사되고 시청의 지붕들은 골이 깊게 패인 한국사찰처럼 보여 더욱 한국을 그립게 만든다.

어젯밤 눈이 내리더니 오늘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다.
대이케어의 아이들은 하루 일과 중 의무처럼 꼭 바깥놀이를 한다. 내가 근무하던 한국의 유치원에는 커다란 잔디밭과 교재원이 있었다. 하지만 하루 하루의 수업량이 너무 많은 탓에 아이들이 바깥놀이하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했었다.
그런 한국 아이들에 비하면 이 곳의 아이들은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신나게 뛰어놀며 영양식단으로 먹여주고 낮잠까지 재우고 있다.

평소엔 아이들이 패티오(한국의 마당 같은 곳)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빌딩과 빌딩을 다리로 서로 연결시켜놓은 +15통로를 걷기로 한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캘거리의 춥고 변덕스러운 날씨는 이 곳 사람들로 하여금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든 것이리라.

아이들은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고 전철이 지나가면 "와아"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시골에서 어쩌다 지나가는 기차를 보아야만 소리치며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
아이들은 기차소리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신나고 즐거워한다.
추우 추우...(캐네디언 기차 소리)

도서관 옆길로 한 무리의 택시기사 차림의 아저씨들이 몰려가고 추운 날씨 때문에 종종거리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처럼 보인다.

버스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서로 자기네 버스라고 외쳐대는데 옆에 동료교사 샤론이
"지금 버스가 보이니?"하고 묻자
애리얼이라는 흑인아이가
"보여요"라고 대답은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버스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샤론이
"you are full of baloney",라고 혼자말을 한다.
이 말은 진실이 아닌 말을 장난삼아 할 때 대꾸로 쓰는 말이라고 한다.
점심시간에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이 말은 슬랭(속어)으로 "헛소리"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돌아올 시간이 되어 서로 자기의 짝을 찾으라고 "파트너"하고 외치자 아이들은 서로 자기 짝의 손목을 꼬옥 붙잡고 따라나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여기서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토들러"라고 하는데 마치 오리들이 엄마오리 따라 걷는 모습같다.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 옆 강당 입구에는 택시기사들의 임시면허를 위한 공청회 간판이 안내견처럼
앉아 지키고 있었다.

아하! 그랬구나.
하루하루 배워가는 아이들의 걸음마처럼 우리도 캐나다의 삶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건너가고 있구나!

*이 글은 캐나다에 오던 첫 해 근무하던 보우밸리 컬리지 대이캐어에 있을 때 쓴 글입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기만 했던 그 시절, 돌이켜보니 한 장의 추억이 된 사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