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나는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거행된 내 사이버 친구의 문학상 수상식에 참석했다.
에레이에 살고 있는 그는 사이버에서 글을 쓰며 만난 동갑나기 친구이다.
생전에 못만날 것 같은 친구였지만
수필가 협회에서 수상하는 해외수필문학상을 받게 되어 한국에 나온 것이다.
"낯선 숲을 지나며"란 수필집으로 수상했다.
그의 아버지가 송창식의 <딩동댕 지난 여름>의 작사가기도 하다.

얼마 전 읽은 그의 수필이 너무 재미있어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잔소리 vs. 牛耳讀經



말수가 적은 아버지가 신문사를 정년 퇴직하고 집에서 노시게 되자,
어머니는 미국에 와 살고있는 내게 거의 매일 전화를 하셨다.
황혼이혼이라도 해야 할까보다. 왜 그리 잔소리가 많은지 못살겠다며.
그런 말은 딸이 엄마에게 하는 의논이건만...우리 집은 그랬다.
엄마가 퇴직한 아버지를 구박하는 말 인줄 알고 그러려니 했다.
들었다해도 무슨 조언을 할 입장도 아닌 것이 미국에 적응하느라
내 코가 석자일 때였으니 말이다.

말없는 이가 더 무섭다는 표본 격인 아버지는,
젊어선 말이 없어 우리식구들을 절절 매게 하더니...
늙어서 말이 많아 그게 싸움의 원인이 되었단다.
가서보니 과연 어머니의 푸념대로였다.
십 년만에 한국에 나가 부모님 집에 처음 갔다.
두 분이 일산의 아파트로 옮겨 사실 때였는 데...아버지의 잔소리가 심했다.
집에서 노시니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참견을 하시고 계셨다.
싸우면서 마트에도 가고 싸우면서 냉면집도 다니시는 거였다.
응원군인 딸을 의식 하셔 선지 어머니의 기세 등등도 볼만하였다.

나이가 들어 그런다고, 과부인 이모는 엄마에게 참으라고...
그래도 남편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 말리셨다.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일주일동안 싸움 말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나를 데리고 모란각 냉면 집을 먼저 가야 하느니
함흥순대를 먼저 맛보여야한다니 가지고도 다투시고...
미국에 가져갈 선물을 사는데는 일산의 그랜드 백화점이 낫다느니...
화정의 세이브 존이 더 싸니...하면서 싸우셨다.

결론은 늙으면 어쩔 수 없고 얼굴 맞대고 오래 있을 수록
싸움은 피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남편과 같은 사무실에 나가는 나는...남편은 주로 현장을 다니고 나는
사무실에 있는 편이다. 그러니 얼굴 마주칠 일은 없는데...
가끔 비가 오거나 현장이 일찍 끝나 남편이 들어와 있으면 거북하기 짝이 없다.
공연히 불편해진 나는 말도 툭툭하고...그러면 남편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그와 함께 전투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공손하지 않다. 내가 잘 안다. 남의 남편에겐 살갑게 한단다.
그것도 맞다. 남의 남편에게 점수 잃을 일은 없으니...
대외적으로는 나이스한 사람의 평을 받는다.
대개 밖의 사람들은 남편에게 "와이프가 재미있고 상냥하니 얼마나 좋으시냐?"
이런다. 남편은 묵묵 무답.

육사출신의 시아버지는 내게 야단 치실 때 7가지를 종이에 적어 가슴에
품고 있다가 호령하셨다.
그 작전서?에는 제 일은 상냥하지 않다. 제 이는 고분고분 안 한다.
제 삼은 뭘 물으면 금방 '예'하지 않는다. 등등 7가지가 다 같은 맥락으로
한국에서의 훈장 경험의 후유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남을 시키길 잘 한다.
그저 한마디로 하면 '여성적이지 않다'로 결론이 난다.

남편과 난 앙숙이다. 동반 외출했다 돌아올 땐 꼭 싸움을 한다.
어딜 가게 되어도 초장부터 김이 샌다.
지난번 교회의 수양회를 갈 땐 쌀과 chacoal(차콜)을 우리가 담당했었다.
차에 실을 때...다툼이 생겼다.
남편은 쌀을 먼저 싣고 그 위에 차콜을 실어야 크기로 보아 맞는다는 것이다.
나는 챠콜을 먼저 싣고 사람이 먹을 쌀은 그 보다 더 우위에 두어야 한다며
우겼다. 약간의 사이즈가 안 맞아 불안할 망정.

나는 쌀에 대해 애정이 있다. 쌀에는 생명이 있고...예전 김지하 시인의 글에서
쌀이 밥이 곧 하느님이라는 것을 감명 깊게 마음에 두어서인지...
밥줄은 생명 줄이니 쌀 포대를 홀대하는 남편이 미웠다. 마치 나를 홀대하는 듯 느꼈다.
그런 이유를 달자 남편은 골치 아프다는 듯...무시하는 거였다.
나는 이렇게 심오한 생각을 하며 사는데 말이다.
아무거나 먼저면 어때...하면서도...쌀을 밑에 깔고 출발을 하려는 것이다.
심통이 나서 결국 나는 안 갔다. 남편만 혼자 가서 내 팬들의 원성을 샀다지?
남자들은 좀 이상하다. 여자들은 작은 것에 목숨을 거는데 남자들은
그것을 잘 catch를 못한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지만 답답하다.
화성남자 금성여자...^^*

오늘도 밥을 먹는데...밥이 되게 되었다고 잔소리 한마디하더니...
김이 너무 바삭 하다고 두 번째 잔소리를 하고...생선은 기름 발라 굽는 게
나쁘다고 세 번째 잔소리...국이 간이 덜 되었다고 네 번째...했다.
그런데 나는 안 고칠 예정이다. 나는 된밥이 좋고 김은 바삭해야 제 맛이고
생선은 약간 기름칠한 후 구워야 나중에 떼어내기 쉽고...국도 약간 싱거운 것 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이래봬도 가정대학을 나온 프로페셔널 주부이기에...

한국의 친정 엄마가 때맞추어 전화를 주셨다. 어머니날 보낸 용돈을 잘 쓰시겠다는
전화였다. 별일 없는가 고 물으셨다.
내가 이 서방 잔소리 때문에 못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과부에게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가장 듣고 싶은 소리이며 자장가라나?
하물며 잔소리는 더욱 좋은 것이라며...무관심하면 말도
안 하는 것이라고 그냥 살라고 하신다.
끝없는 잔소리 남편과 말 안 듣는 마눌의 싸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