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라는 남자아이가 새로왔다.
늘 그렇듯이 몇 일 동안 엄마와 트랜지션닝(적응시키는 과정)을 하는데 커다란 문제는 없었다.
무슨 음식이든지 잘 먹었고 먹는 양도 보통 아이들에 비하여 큰 편이었다. 문제가 된다면 낮잠 자는 시간인데 잠들기도 어려워했고 아직 분위기에 안정되지 않은 탓인지 제일 먼저 일어나곤 하였다.

엄마인 조는 캐네디언인데 키가 아주 크고 운동으로 단련된 건강한 모습이었다.
NE쪽 랜들고등학교 교사이고 크로스컨트리(스키의 일종)를 지도한다고 하였다. 어떤 날은 운동복을 입은 채 아직도 땀이 가시지 않은 상기된 얼굴로 아이를 픽업하러 오는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유난히 일찍 아이를 데리러왔다. 이유를 묻는 내게
"오늘 여동생이 오스트리아에서 오기 때문에 공항을 나가야한다"며 서두르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조, 참 좋겠다. 나는 여동생은 없고 남동생만 둘인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며 다시 묻는 것이었다.
"그야 물론 코리아지"

그녀의 얼굴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새끼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쥐꼬리만큼"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어서 낯익은 한국인사말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김치는 맛있고 소주는 써요"
조의 능숙한 한국말을 들으며 나는 놀라움으로 더이상 말을 잊었다.

조는 영어교사로 한국에 다녀왔다고 하였다.
서울이 너무 좋아서 다시 가보고 싶고 사람들도 모두 좋다고 하였다.
그녀는 "쥐꼬리만큼"의 정확한 의미까지 알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도 조는 한국말로 인사를 하였다.
"안녕히 계세요."
"내일 만나요."

조를 보내고도 나는 한참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케내디언이 한국말을 한다는 것에 그냥 기쁘고 놀랬는데 어딘가 마음 한구석 석연치 않은 것이 있었다.
왜 하필 그 말"쥐꼬리만큼"이었을까?

다른 좋은 한국말도 많이 있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