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이 시계는 고칠 수 없습니다. 고친다해도 오래가지 않을겁니다."
베이 백화점 건너편에 있는 시계 수리점은 늘 출퇴근길에 사람들이 붐비는 것으로 보아 주인인 듯 보이는 중국아저씨는 꽤 실력이 있는 기술자라고 믿었는데...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재판관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시계를 건내주었다.

하긴 이 시계의 사연을 모르니 그럴수 밖에...
사연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 나도 아들아이에게
"이젠 그 시계를 포기해라"하는 뜻으로 얼마 전 새로운 시계를 사주었다.

첫번째 가게에서 거절을 당한 나는 오늘 다시 다른 곳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두번째 가게에서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아예 보려고하지도 않았다.
이제 내일 가려는 그 세번째 가게에서도 안된다고하면 ...
정말 포기를 해야할 것인가?

그 시계는 우리가 캐나다로 이민을 올 때 아들 앤드류의 합창단 지휘자 선생님이 주신 것이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마치면서 이 곳으로 오기 바로 전까지 합창단 활동을 했었다.
주말이면  성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노래 연습을 하였고 정기 연주회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면 합숙훈련을 갖기도 하였다.
우리가 이민을 오기 전에는 고별공연을 갖기도 했는데 그동안 서로들 정이 많이 들어서 얼마나 헤어지기 서운해하던지...
보는 우리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아쉬워하였다.
특히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들과 함께 1기로 활동했던 몇몇 친구들은 지휘자 선생님과 함께 동해안을 시작으로 남해를 거쳐 인천으로 돌아오는 대장정의 여행을 하기도 하였다.
아마 캐나다로 떠나는 아들아이를 위하여 선생님이 마련하신 추억여행이었으리라...

이민을 온 후에도 아들 앤드류는 한국을 몹시 그리워하였다.
한국에 있는 합창단 친구들과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늘 합창단 사진을 들여다보고 합창단이 공연한 정기연주회 테잎을 보고 듣고...

이제 어느덧 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 헤어짐의 상처도 아물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엊그제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아들의 그 상처를 더욱 크고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지휘자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아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마음 속의 영웅이 떠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