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장을 보고 돌아와 전화자동응답기를 열어보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사촌언니의 목소리가 남겨져 있었다.
"어머니가 좀전에 응급실로 들어가셔서 저녁 비행기로 시카고로 가려고 한다"는 간단하고 기운없는 목소리였다.

다시 언니와 전화를 연결하려하였지만 되지않아  기다리고 있던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방광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 독이 온몸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시카고로  전화하였다.
사촌오빠 말인즉 10분 전에 고모님께서 운명하셔서 샌프란시스코로 전화하는데 계속 통화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언니와 내가 통화하던 그 시간에 고모님은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 곳 캘거리에 이민와서 살면서 늘 고모님을 뵈러 가야지...
친정아버지의 유일한 누이동생이면서 함께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어려웠던 그 시절에 고통을 함께 하셨던 분인데...

벼르고 별려서  지난 2월에 시카고에 다녀왔다.
고모님은 너싱홈에 누워계셨는데 오른 쪽에 중풍이 와서 거의 외출은 못하신다고 하였다.
다행히 정신은 맑으셔서 나에게 가족들 모두의 안부를  물으셨다.

돌아오는 길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다만 살아생전 고모님을 뵈었다는 것 뿐...

그 날 토요일 하루는 내게 무척 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틈틈이 기도하고 저녁 무렵 연도를 바치는 것 외에는...

다음날 주일 미사를 가서도 마음이 편치않았다.
그런데 거의 미사가 끝날 무렵 갑자기 섬광처럼 시카고에 살면서 꽃집을 하는 선배가 떠올랐다.
그래... 그 선배님에게 부탁하면 꽃을 보내 줄 수 있을거야...

지난 번에 갔을 때가 마침 발렌타인대이여서 무척 바쁘셨음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후배가 왔다고 저녁을 대접해주셨었다.
" 염치 불구하고 전화를 드리자..., 이해해 주실거야..."

이렇게하여 나의 국제 외상 거래는 이루어졌다.

지난 수요일 모든 장례예절을 마친 언니로부터 전화가 다시 왔다.
"금재야, 꽃이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지... 어머니는 마치 잠드신듯 평화로웠고.. 그 꽃이 있으니 마치
네가 여기에 와있는듯 하더라...아버지 누워  계신 그 곳에 합장을 하고 돌아오니 마음이 좀 나아지는구나..."

언니의 그 느낌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져왔다.
고모님을 위해 기도를 바치는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고모님, 더 이상 고통도 걱정도 없는 그 곳 하늘나라에서 편히 지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