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온 지  정확히 한 달이 되는 날 나는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병이 다가오는 조짐은 훨씬 이전이었다.
지난 목요일 오후, 나는 눈에서 불이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무척 추웠었다.
그날 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 집 가스공급이 차단되었다.

휴대용 난로를 피워놓고 하루밤을 지새우며 밤새 고열에 시달린 나는 다음날 출근할 수 없었다.
내가 집에 있는 줄 어떻게 알았는 지 전화 회사에서, 가스회사에서 모두 달려와 수리를 해주었고 내일
추석 차례를 지내야하는 우리 어머니는 여기 저기 장보기를 서두르셨다.

장을  본 뒤에는 내일 무쳐야 할 나물을 미리 손보아야했고 녹두전에 필요한 속을 준비하고 적도 미리
밑간에 재워놓았다.

종일 서서 있었더니 다리도 떨리고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출근해서 일한 것보다 더 힘이 들었다.
그날 밤에는 진통제를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켜세웠다.
우선 전부터 부쳐놓아야 다음 일이 빨라지는 것을 아는지라 녹두전, 생선전, 호박전등을 오전에 끝내놓고
탕이나 나물은 나중에 하였다.
방앗간에서 송편이 도착하는대로  차례는 시작하기로 하였으니...
그동안에는 사과나 배등 과일을 깍아 준비하자.

차례상이 다 준비 되어갔을 때 모든 식구들이 다 돌아왔다.
이제 절들을 하고 연도를 바치고 식구들끼리 음복을 하면...
오늘의 일과는 끝이다.

그 날 저녁 양치질을 하는데 혀에서 이상한 느낌이 다가왔다.
혀를 내밀어보니 혓바닥 전체에 좁쌀만한 것들이 잔뜩 돋아났다.
너무 피곤해서 그럴거야...
비타민 먹으면 나아지겠지...

그러나 아무리 비타민을 먹어도 나아지진않고 오히려 설사까지 이어졌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다시 일주일이 지난 어제서야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증상이 많이 악화된 뒤였다.
무슨 일을 하느냐, 밥은 제대로 먹느냐...
의사의 질문은 정확하다.
나는 슈퍼맨처럼 일했고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된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철저한 나혼자의 고독이다.
볼을 타고 흘어내리는 뜨거운 눈물도 나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