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9년도에 <계간수필>에 발표를 했던 것입니다.



                              그림 이야기
                                                                    
                                              
                                                                                            김 희재


  고운 눈발이 희끗희끗 소리도 없이 내리는 밤이다.

  한껏 부풀어 터질 듯한 둥근 달을 배경으로 소담스레 흰 꽃을 매달고 있는 매화등걸에 앉아 머리를 맞

대고 끝 모를 속삭임을 나누고 있는 참새 두 마리의 모습이 마냥 정겹다. 분명히 눈이 오고 있는 겨울 풍

경인데도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춥기는커녕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단아한 풍

경화는 설한풍 속에서 봄의 입김을 느끼게 하는 종교적인 명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 한 폭의 한국화 이야기이다.

  아직은 무명에 가까운 젊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을 했다는 이 그림이 유독 내 맘에 든 것은, 거

의 무채색에 가까운 매화등걸과 휘영청 밝은 달빛의 차분함 속에 어우러진 새들이 만들어낸 사랑의 분위

기 때문이었다.

  약간 수줍은 듯이 서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두고 앉은 새들의 함초롬한 자태는

그 자체가 곧 사랑이고 신뢰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어떤 추위도

다 녹여낼 만한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으면서도 결코 선정적이지 않은, 노골적인 에로물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첫사랑의 정갈한 설레임 같다고나 할까.

  사랑에 도취한 것은 비단 참새들뿐만이 아니다. 늘 외롭게 빈 하늘을 지키고 있던 달과 속절없이 그저

피었다 지고 말았던 매화등걸도 이 화폭 안에서는 자연스레 사랑에 동화되어 전체가 다 아름다운 하모니

를 이루고 있다.

  이 그림만큼은 절대로 팔지 않고 평생 자기가 소장하려고 했다는 작가를 간신히 설득해서 빼앗다시피

사다가 거실 중심 벽에 걸어놓고는 우리 집을 찾은 사람들에게 내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가며 그림 소개

를 하는 것이 손님 접대 코스가 되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나의 환상적인(?) 그림 해석에 모두들 고개

를 끄덕이며 동조해줄 때 내가 느끼는 것은 기쁨 그 이상의 것이었다. 물론 내가 그림 속에서 찾아낸 사

랑 이야기는 다분히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자기 암시적인 바람이었을지도 모른

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칠순을 넘기고 나서부터 부쩍 아픈 곳이 더 많아진 친정 어머니가 모처럼 다니

러 오셨다. 나는 습관처럼 자연스레 그림 속의 사랑 이야기를 꺼내었다.

  “저 그림 속에 있는 새들이 꼭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얘기? …무슨 얘기?”

  어머니는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양 힐끗 한 번 그림을 올려다보시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으신다. 나도 굳이 노인네와 사랑타령을 할 마음은 없어서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넘겼다.

  그날 밤, 내가 강의 준비를 하느라 늦도록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데 초저녁에 깜빡 한잠을 주무신 어머

니가 성경을 들고 나오셨다.

  “저 새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제 알겠다.”

  조그만 탁자 앞에 앉아 열심히 성경책을 소리내어 읽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말머리를 꺼

내셨다. 돋보기를 콧날 아래로 밀어 내리고 안경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져라 그림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하다.

  “에고, 우린 이제 죽었네. 날도 추운데 눈까지 이리 펑펑 오니…….”

  어머니는 내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상했던 그림 속에서 허망하고 슬픈 종말의 비애를 찾아 내셨는지

자못 처연하게 신파조대사를 읊조리기 시작하셨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우리 작별 인사나 미리 하세. 그 동안 참으로 고생 많이 했는데… 부디 잘 가게.

나도 곧 갈 테니…….”

  어머니는 정말로 그렇게 쓰여 있는 대본을 읽고 계신 것처럼 목소리에 가느다란 떨림까지 섞어가며 실

감나게 표현을 하셨다.

  처음에는 그저 어이없어 하며 실소를 머금고 신파극을 보듯 어머니의 그림 해석을 들었는데, 갈수록

알 수 없는 연민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친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모녀간에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만큼 서로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극명하게 다름이 드러난 때문이다.

  무엇이 어머니로 하여금 딸의 눈에는 행복한 사랑이야기로 보이는 그림을 두고 그렇게 슬픈 상상을 하

게 만들었는지.... 전쟁과 가난 등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세대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비극적인 시각으로 보

는 타성이 붙은 때문일까? 이유야 어떻든 일평생 남편과 자식들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가장 귀한 덕목으

로 알고 살아온 사람의 무의식 세계 속에 노년의 허망함과 절망감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아프

게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 않고 슬픈 기색도 없이 외롭고 황폐한 노년의 절망을 그림을

보며 끝도 없이 풀어내신다. 나는 어떻게든 그런 어머니의 생각을 돌려놓고 싶었다.

  “아녜요, 쟤들은 지금 달밤에 데이트하고 있는 거예요.”

  “너는 참 아무 것도 모르면서… 곧 얼어죽을 새들이 그렇게 한가한 줄 아니?”

  내 말에 강하게 반발하는 뜻으로 코에 걸쳤던 안경까지 벗어 손에 들고 정색을 하시는 어머니의 표정

은 자못 단호해지신다. 나는 더 이상 우기지 못하고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잠자리에 드느라 틀니를 빼버렸는지 아랫입술이 입 속으로 쏙 말려 들어간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바

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내게는 아픔이었다. 어느 틈에 이렇게 많이 허물어져 내리셨는지…….

  나는 슬그머니 컴퓨터 화면을 향해 돌아앉았다. 어머니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웅얼웅얼 성경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화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슨 소린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유달리 크게 귓전을 두드린다. 자꾸만 목이 메이고 왈칵 뜨거운 기운이 눈물

되어 흐른다.

  내가 약한 존재였을 때는 당신의 몸을 다 던져서 나를 사랑으로 보호해 주셨던 어머니. 그런데 나는 지

금 약해져 버린 그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돌아앉아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을

뿐…….

  그 후로는 누구와도 섣불리 그림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