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에 봄이 오면 나는 돌아가리라......"

중학교 때인가,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의 첫 귀절이다.  

그 시절 나에게 " 로키"는 세계지도 위에 있는  하나의 커다랗고 가장 긴 산맥의 이름뿐이었다.
어쩌다 나의 인연이 이 거대한 "로키"와 닿아서 아침 저녁으로 그의 눈덮힌 허연 머리카락을 보는 일이 출근길 버스 기사를 만나는 것처럼 일상이 되어버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벤프"에 가보고...
정상회담을 하였다는 "카나나스키스"에도 가보고
벤프 속의 벤프라는 "자스퍼"에서는 몇일씩 통나무 집에서 묵어도보고...

로키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나의 마음 한 쪽에서는 어린 시절 내가 뛰놀던 "연경산"의 모습이 늘
실루엣처럼 떠오른다.(우리가 어릴 때에는 배꼽산으로 불렀음)

봄이면 어김없이 타오르던 진달래의 붉은 빛깔...
원추리며 산무릎... 산나물을 캐던 그 산등성이의 연초록 능선들.

하루하루 초록이 짙어가며 들려오던 그 뻐꾸기의 노래소리...
방학 숙제로 하던 식물채집과 곤충채집
보라색의 도라지꽃과 엉겅퀴꽃, 짙은 주황색의 산나리꽃, 싸아한 향이 나던 쑥들  그리고 싸리나무...

아침이슬이 채 걷히기 전에 거미채를 들고 거미를 잡던 일...
저녁 해거름, 낮은 비행을 하며 누울 자리를 찾던 잠자리를 잡던 일.
왕잠자리, 말잠자리, 물잠자리......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그 자리에 있던 화교네 농장과  메뚜기를 잡던 그 논둑가...
메뚜기 잡는데만 정신이 팔려 물속으로 빠졌던  날도 있었지만 ,강아지풀 하나 가득 잡아오던
그 만선의 기쁨!

후라이팬에 소금 뿌려 구워먹던 그 메뚜기는 어린 시절 부족했던 나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겠지.
뚜껑을 덮을 때 들리던 그 메뚜기들의 마지막 사투...
우리는  그 "타다닥"하던 그들의 절규를 은근히 즐기는 잔인함도 있었는데...

언젠가 다운타운, 어느 레스토랑에 갔을 때 메뚜기 요리라며 내주는데 나는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연경산의 잎새들이 하나 둘 단풍 들어가고, 도토리들 여물어 가을이 익어가면 우리집 앞마당에는
노오란 국화들이 하나 가득 피어나곤 하였다.

눈내리는 연경산은 그대로 하나의 겨울 풍경화가 된다.

그 언덕에 올라 비닐 종이를 깔고 타던 눈썰매의 기쁨이란...
눈싸움에 지쳐  온 몸이   땀으로 젖어도 그 땀으로 세수하던 유년의 건강함이여!

그런데 얼마 전이었다.
골프 연습을 하고 돌아나오는 길에, 그 옆에 있는 들판으로 사람들이 개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평소에 늘 지나가면서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곳인데...

그 날은 차를 세우고 나도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그 곳은 연경산이었다.

들판 하나 가득 보라색의 엉겅퀴가 노란 민들레와 어우러져서, 거대한 하나의 정물화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억새풀 비슷한 갈대 같은 것들이 벌써 가을이 온 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은 곳, 바로 옆에서 오래 전에 맡아본 그리운 향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것은 쑥과 비슷한 들풀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곳 인디언들이 종교예식을 행할 때 쓴다는 그 풀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고추잠자리, 왕잠자리, 말잠자리들이   공항이 가까워  비행기 소음이 무척 나는 이 곳에서도 아주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오랫만에 쑥향기를 맡으니 마음 밑바닥 저 아래 깔려있던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눈가에 이슬이 젖어들었다.

툭툭 털고 일어나자!
저 들판에 쑥들처럼, 저 잠자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