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YMCA 가 있어서 자주 가곤한다.
처음에는 운동기구를 이용한 달리기도 하고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도 하곤 하였는데 점점 게으름이 늘어 이제는 동네 목욕탕을 이용하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지난 달에는 문  입구에 중요한 안내문이라며 종이 한장이 붙어있었다.
그 동안은 열쇠를 자유로이 빌려서 쓸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10불 씩 사용료를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열쇠를 장만해야겠구나...

사용료를 내는 그 비용으로 열쇠를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이리라...

오늘은 Y로 향하면서 그냥 샤워만 할 것이 아니라  나도 남들처럼 운동을 해보자하고 작정을 하였다.
그래, 오늘은 걷기를 하는거야..., 참!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하자...
핸드백과 샤워 가방을 모두 라커에 집어넣고  묵주만 꺼내들고 발걸음도 가벼이 2층으로 올라갔다.

내 앞에는 두 명의 남자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달리는지 연신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리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을 해볼까...

환희의 신비 1단이 눈 깜짝사이 끝났고, 도서관 옆 공터에서 아이들이 날리는 연이 하늘 높이 치솟아올랐다.
점점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묵주기도도  속도가 붙어서 어느 덧 5단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와!... 걸으면서 기도도 할 수 있고... 이게 웬 일석이조 인가...

그런데...기쁨은 잠깐이었다.
오! 마이 갇!  내 열쇠...

샤워가방에 매달린 열쇠를 그냥 집어넣고 모두 잠그어버린 것이다.
머릿 속에서 앞으로  일어날 상황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전화해서 자물쇠를 열어줄 사람을 기다린다.
그런데 오늘이 주일 저녁이라 아무도 올 사람이 없다.
자동차 키도 저 안에 있는데...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길 잃은 미아처럼 주저앉아있을 내 모습이 떠올랐다.

28번!
내 모든 것들이 들어있는 저 라커...
자물쇠는 꼭 여름날의 딱정벌레처럼 아주 단단히 그 거대한 나무에 꼭꼭 매달려있었다.

"저... 사고났어요..."
볼룬티어(봉사자)로 일하는 그 여학생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스페어키가 있나요?"
정말 무표정하게 그 여학생은 되물었다.

고개를 가로젓는 나에게 그 녀는 단 한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르는 것이었다.

잠시후 거대한 볼트커트기를 들고 그녀가 다가왔고 나의 자물쇠는 "툭" 소리와 함께 잘려나가고 말았다.

나는 왜 이럴까?

건망증이 일찍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치매 초기 증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