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날씨가 추워져서 대이케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대신에  +15이라 불리는 빌딩과 빌딩을 연결해주는 다리를 따라  다운타운 안에 있는 빌딩  안을 산책시키고 있다.



빌딩마다 갖는 그 고유의 장식과 색깔, 색다른 분위기를 보면서 나는 마치 서로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느낌이 들곤한다.



오늘은 우리 빌딩 옆에 있는 보우밸리 스퀘어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다가오는 할로윈을 위하여 여러가지 장식들이  놓여져있었고 상점마다  검은 옷을 입은 마녀와  보기에도 무서운 커다란 거미들을 벽에 붙여 놓고 있었다.



박수를 치면  마녀의 그 특이한 낄낄거리는 웃음 소리를 내는 인형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는 그 각설이타령처럼 나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녀의 웃음소리에 쫑긋 귀를 세운다.



2충에는 애연가들을 위한 베란다로 나가는 통로가 있고 그 앞에는 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서 아이들이 놀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 있다.

교실 안에 갖혀있던 아이들은  달리기도 하고 공놀이를 하기도 하면서  마음껏  몸을 풀기도 한다.



아래층에서는 가끔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지난 번에는  암환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  행사가 열렸는데  무대 아래에는 수 많은 봉사자들이  기부금을  기탁하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은  거대한 기업의 사무실 같았다.



오늘은 아마추어 작가들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헤헤"하며 아기의 웃음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아기사진.

물 속을 헤엄치는 송사리  비늘의 반짝거림.

깊은 산 속, 슬픔에 젖은 사슴의 눈망울.

저녁 노을을 배경삼아  밀밭에 앉아있는 한마리 나방의 아름다움.



사진을 찍으면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진 작가들의 노력과 땀이 수 많은 사진들 위로 물방울꽃이 되어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한 장의 사진 앞에서 그대로 선채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 겨울날의 오후쯤일까,

뒤 뜰  툇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중국 소녀들,

시골 어디에서라도 만날 것 같은  너무나  평범한   얼굴들,



아마도 어느 사진 작가가 중국의 오지를 여행하다가  찍었을 테지.



그 사진 위로 고향집 축대가 떠올라 왔다.



아버지는 참으로 꼼꼼한 분이셨다.

우리 집은 지대가 높아서 축대 위에 집이 있었는데 그 축대를 아버지께서 손수 쌓으셨다고 한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산을  배꼽산이라고 불렀었다.  연경산이라는 공식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초등학교를 이미 졸업한 후였다.



그 산에는 전시를 대비하여 골짜기마다 기름탱크를  저장해 놓았고 산 둘레에는 철조망을 쳐서 민간인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돌들을 산 근처에서 주워오시곤 하셨다.



우리는 그 축대 아래에서 여름이면 공기놀이, 겨울이면 눈싸움놀이로  하루 해를 보내곤하였다.



어느 날, 미군 병사가 지나가다가 우리들을 축대 아래에 서게 하고는 사진을 찍었었다.

저 사진 속의 중국 소녀들 처럼 우리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겠지.



그 중국 소녀들은 알고 있을까.

그녀들의 그 어색한 미소가 캐나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맑고 시원한 청량제가 되고 있는지를.



그 축대 아래 서 있었던  조무래기들,지금은  어디에서  웃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