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여러분께 출판기념회에서 낭송했던 수필과 시를 한편씩 올립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나는 오늘을 또


사람마다 살아가는 길이 다르다. 그것을 주어진 운명이라고 하는가 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은 정해진 것 같다. 우리는 타고난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 물론 노력으로 어느 정도 운명을 변하게 할 수도 있다. 허지만 그 운명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원점으로 돌아가 있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나간다.”

그렇게 우렁차게 부르짖던 나폴레옹도 결국은 그 운명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불가능이란 없다. 허지만 우리는 수많은 불가능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피할 순 없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나는 운명론자가 되어있었다. 지내놓고 보니 묘하게도 모든 일들은 그 사건과 그 시기가 일치한다. 그 곳 아니 그 시간만 피했던들. 일을 당하고 나서 우리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한다. 그것이 운명이었음을 망각한 채.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한다. 옛날엔 그 말뜻을 잘 몰랐다.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는 안타깝게도 불가능한 일에 매달린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헛된 일이었나를 깨닫지만. 그렇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을 맞추어 또 살아간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은 그저 조금 흘렀을 뿐이다.

사람은 신이 아닌 이상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역술가를 찾는다. 나도 가끔은 그들을 만난다. 한결같은 말들. “잘 먹고, 잘 살거요.” 그들은 그렇게 얘기한다. 새롭지도 않은 얘기를 별로 시답잖게 듣고 나올 때는 뒤가 마냥 허허롭다. 남이 어찌 나의 운명을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누가 용하다하면 만사를 제치고 그들을 찾는다.

운이 좋은 사람은 별 노력 없이도 잘 먹고 잘 산다. 모험을 하지 않으면 큰 위험은 따르지 않는다. 사업하겠다고 용감하게 사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 그들 중에 운이 좋아 성공을 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잃고 후회로 한평생 살아가고 있다.

그런 저런 각자의 사연이야 각양각색이지만, 결국 인생의 승리자는 끝까지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요즘처럼 어렵다보니, 옛날 누구나 마다하던 직업들이 최고 좋은 직업으로 둔갑하였다. 아무튼 한 세상 살다보니 나 자신이 간사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거꾸로 보이는 것 같다.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론 억울해 함은 인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만은 특별한줄 알았던 운명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기 때문은 아닐는지.

아무려나 인생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오늘을 또 보내고 있다.



 

사모곡


어머니.

당신은 나의 어머니이십니다.

당신은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셨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지금 무척 외로우십니다.

병든 몸과, 병든 마음, 당신은 슬픔 그 자체이십니다.

아무도 당신의 그 엄청난 고독을 어루만져 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불효자식들은 눈물로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당신은 용서 그 자체도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당신은 보고 싶은 자식을, 그저 보고만 싶으실 뿐입니다.

그 손등을 어루만져 보고만 싶으실 뿐입니다.


어머니.

당신의 품을 떠난 자식들, 당신에 대한 아련한 추억만 있을 뿐, 당신 그 자체를 잃어버린 지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당신은 가슴 아린 아련한 추억일 뿐 입니다.

단지 당신은 어머니이실 뿐, 당신이 그리는 그 어린 자식이 아닙니다.


어머니.

당신의 슬픈 동공이 어두워 졌을 때, 당신의, 당신의, 그 무심한 자식들은 하얀 장갑을 끼고 향불을 피우며 눈시울을 적실 겁니다.


어머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세요. 당신의 차디 찬 손으로 그들을 내쫓아 주세요.

그들은 잠시 동안 당신의 곁에 머물 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당신을 추억 속에서 밀어 낼 것입니다. 당신은, 불쌍한 당신은, 또 슬픈 기다림 속에 그렇게 그리워 할 겁니다.


어머니.

당신은 위대한 순교자이십니다. 아무도 당신의 그 엄청난 희생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 평생을 자식의 삶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던져버린 당신 일생을 아무도 보상하려 하지 않음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자체도 용서하셨습니다.

못난 자식들이 애써 그 사실을 숨기려 하고 있음을 알고 당신은 분노하셨지만, 이제는 당신은 그 분노조차 잃어 버리셨습니다,


어머니.

이 엄청난 불효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자식은 눈물로 용서를 빌어 봅니다,

이제라도 어머니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동안 못다 한 효도를 해 드릴 수 만 있다면, 이 자식은 아직은 늦지 않았음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남은 여생 당신이 기억하건 못하건 이제라도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릴 것입니다,

부디 부디 편안히 살아 계셔주세요.

삼가, 당신의 자식이었음을 기억하는 당신의 자식이 어머니라는 이름을 불러봅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