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이가 "속리산 한옥가든"을 올려줬구나. 고맙다. 수인아.
내가 올릴려고 했는데, 니가 먼저 올려주었구나.
대신에 "이팔근과 설하"는 내가 올릴께

친구들아, 등다 축하해줘서 정말 고맙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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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근

하얀 모시 적삼. 하얀 모시 바지. 하얀 고무신.
여름철 그의 복장이다. 1톤 트럭을 신나게 몰고 다니는 그는, 황야의 무법자가 아니라 속리산의 무법자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그는 무학도 자랑이다. 세상 어느 누가 그처럼 행복한 삶을 살까. 그의 부인은 항상 농사짓느라고 바쁘다. 허지만 그는 돌아다니느라고 바쁘다. 그는 그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간다. 시간과 장소도 안 가린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약초도 잘 캐고 사슴도 잘 기른다. 주변 땅 시세도 잘 알고, 약재상도 잘 안다. 그가 가는 곳이 그의 무대다.
초승달 같은 그의 눈은 항상 웃고 있다. 화내는 일은 있을 일도 없다. 그의 자식들은 다 효자다. 그는 트럭만 몰고 다니면 된다. 세금도 기름값도 다 모른다. 아들이 다 알아서 한다.
“내 이름은 이짜 팔짜 근짜 예요.”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소개를 한다. 전화를 받을 때도 제일 먼저 이름을 얘기 한다.
“이짜 필짜 근짭니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만화를 보는 것 같았다. 60 나이에도 어쩜 저렇게 순수해 보일수가. 그는 티 하나 묻지 않은 흰 종이 같았다. 남한테 절대 밥 한 그릇이라도 신세지는 일이 없다. 계산은 얼마가 나왔건 그의 몫이다. 그 대신 절대 비싼 것은 안 먹는다. 자신을 그렇게 잘 알 수가 없다.
“시장볼 일 있으면, 얘기만 하세요.”
그는 부담 없이 장도 잘 봐다 주었다. 그 대신 계산은 철저하다. 받을 돈은 꼭 받는다. 얼만지 나는 잘 모르지만, 그는 싼 곳도 잘 안다. 하여튼 그는 부담이 없다. 속리산에서 ‘한옥 가든’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할 때 알게 된 그는, 현대와는 거리가 먼 옛날사람 같았다. 학교 근처에는 가 본적도 없다. 오로지 그곳에서 나서 그곳에서 잘 살고 있다. 주변에 땅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도 항상 겸손하다. 잘난 체 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다.
“서울은 갈 일도, 가본 적도 없어요.”
그래도 사는데 지장 없다. 그는 서울에서 살다온 내가 그냥 신기할 뿐이다. 어쨌든 음으로 양으로 그는 내 생활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이제 보기 어렵겠네요.”
가게를 정리하고 이사 오기 전 그를 보았을 때, 그래도 그는 웃고 있었다.
“답답하실 땐, 언제라도 바람 쐬러 오세요.”
눈 오던 겨울, 속리산을 뒤로 하며 떠나올 때 유난히 떠오르던 이름 석자.
이자 팔자 근자.
그 이름은 눈 덮인 속리산 같았다.


설하雪荷

속리산에 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서예가이기도 했다. 처음 그 시인을 보았을 때, 그는 한마디로 자유인이었다. 뛰어난 화술과 빼어난 예술혼은 마주한 이들을 압도하였다. 그는 맑은 눈과 서늘한 영혼을 소유한 이 시대의 예술가이다.
단감이 익어가던 가을, 바람도 청량한 어느 날 ‘한옥 가든’ 사랑채 툇마루에서 그와 그의 소탈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소박한 안주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미래와 역사 등등.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화는 땅거미가 짙어질 때까지 끝날 줄 몰랐다.
그는 바람과 구름과 빛에 대한 시를 읊었다. 황진이와 벽계수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이 시대 사람들 영혼의 메마름을 아쉬워했다. 여인네들의 수줍음을 그리워했다. 그의 시상은 끝이 없었고, 그는 마주한 이들의 감성을 이끌어 내었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였고, 우리는 그를 사랑하였다.
세상과의 타협은 그가 용납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대도 그의 순수함을 인정치 않았다. 그는 황량한 벌판에 발가벗은 채 서 있었다. 그는 저만치 끝없이 혼자 가야만 했다.
어느 날, 도시의 어두운 카페에서 그와 차 한 잔을 마주 했을 때, 나는 왠지 밀려오는 슬픔을 느꼈다. 그의 맑은 눈과 밝은 영혼은 빛바랜 화폭처럼 초라하였다. 낭랑한 음성은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때가 낀 흰 와이셔츠, 쓸쓸한 미소, 그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무정한 세월만 남겨 둔 채․․․.
‘雪荷’
눈 속에 핀 연꽃.
그가 건네준 하얀 한지에 그의 필적이 담겨있었다.

* Anne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9-10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