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공항에 내린 순간부터 이한을 엄습한 후덥지근하면서도 숨 막히는 베트남 특유의 더위는 달랏으로 향하는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열기는 고원지대인 달랏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제야 프랑스 점령군이 왜 이곳 달랏을 휴양도시로 건설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기는 지중해풍으로 쾌적했고 풍광도 아름다웠다.
이한은 몇 겹으로 포장한 그림을 옆구리에 끼고 달랏교육대학 김영채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그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이한을 보자마자 곧바로 채비를 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가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므이의 집은 이곳에서 1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이한이 놀라 되물었다.
“그 집이 아직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네. 1896년 므이가 살해당한 후 사람들은 그녀의 집을 그대로 보존하고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그런데도 저주가 멈추지 않았어요. 나중에 초상화를 봉인한 평 법사님이 초상화외에 므이의 원혼이 깃든 또 다른 매개체가 있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그런데 그 매개체가 설마 한국에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승용차가 초원지대를 1시간쯤 달렸을 때 멀리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덮은 허름한 집 한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집을 보는 순간 이한은 전류에 감전된 것 같은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다. 마침 석양이 지고 있었고 증조부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므이의 집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집 앞에는 승복을 입은 법사들 몇 명이 미리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 교수가 차에서 내린 이한을 평 법사에게 소개시켰다. 법사는 이한과 인사를 나눈 후 그가 들고 있던 포장된 그림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그 그림을 그린 분이 증조부 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이한은 이 모든 저주가 증조부가 그린 그림에서 비롯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 이한의 마음을 헤아린 것처럼 법사가 말했다.
“그림 때문이 아닙니다.”
“예?”
“만약 그림이 없었다면 므이의 원혼은 이승을 떠돌아다니며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법사가 앞장서서 므이의 집으로 들어섰고 이한과 김 교수가 그 뒤를 따랐다. 다른 법사들은 선뜻 따라나서지를 못했다. 집안에는 미리 켜놓은 촛불이 일정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 촛불로 둘러쳐진 자리가 므이가 살해된 장소입니다.”
그제야 이한은 촛불의 형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법사가 가리킨 바닥에는 아직도 벌건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한이 법사에게 그림을 건넸다. 법사는 그림의 포장지를 벗겨내고 출입문과 마주하는 반대편 벽에 세웠다. 법사가 말했다.
“당시 므이가 살해된 방식, 즉 왼쪽발목과 오른손목, 그리고 머리가 잘려져서 사라진 건 틀림없는 저주의식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므이를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저승에조차 들지 못하도록 저주를 내린 겁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습니까?”
이한의 물음에 법사가 그림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비밀을 저 그림이 알려줄 것입니다.”
법사는 스스로 므이가 살해당했다는 장소인 촛불이 켜진 안쪽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법사가 두 손을 합장한 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을 외우는 법사의 음성이 차츰 격렬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양미간은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졌다. 법사가 갑자기 주문을 그치더니 이한에게 소리쳤다.
“그림을 찢으시오!”
“예?”
이한이 놀라 되묻자 법사가 다시 말했다.
“저 그림 뒤에 또 한 장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한과 김 교수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김 교수가 황급히 밖으로 나가 칼 한 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법사가 말했다.
“그림은 100여 년 전 조선에서 건너와 바로 이 자리에서 므이의 초상화를 그렸던 그 화원의 자손이 찢어야합니다!”
김 교수가 이한에게 칼을 넘겨주었다. 이한이 칼을 넘겨받자 법사가 말했다.
“가서 그림을 찢으시오!”
이한은 칼을 들고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그림 뒤에 또 한 장의 그림이 있다니. 법사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대체 어떤 그림이 이 뒤에 있다는 것일까.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림의 주변부를 따라가며 칼로 그었다. 사면을 완전하게 칼로 그은 후 이한이 조심스럽게 그림을 벗겨냈다.
그림을 벗겨내자 놀랍게도 법사가 말한 또 한 장의 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이한은 머리끝이 올올이 일어서는 전율을 느꼈다. 놀랍게도 뒤에 숨겨져 있던 그림은 므이를 살해하는 장면을 스케치해 놓은 것이었다. 이한의 뒤에서 지켜보던 김 교수가 탄성을 내질렀다.
“이럴 수가! 저 붉은 머리칼의 여자는 올리비에의 아내 리디아가 틀림없어! 므이를 죽인 건 역시 리디아였어!”
그림 속에는 그가 말한 것처럼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눈을 번득이며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에 므이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바닥에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발과 손, 머리에는 각각 한 사람씩 남자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들의 손에는 정글에서 쓰는 커다란 칼이 들려있었다. 법사가 눈을 감고 합장한 채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한국에서 오신 분을 그림 뒤쪽에 있는 창고 속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해 주십시오!”
이한이 어리둥절해 하자 김 교수가 얼른 다가와 그림 뒤쪽에 나 있는 작은 문을 열어주었다. 언뜻 봐서는 그곳에 문이 있다는 걸 알기 힘들 정도로 교묘하게 가려진 문이었다. 이한은 법사의 말대로 그 컴컴한 창고 속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의 분위기는 뜻밖이었다. 대나무 같은 재질의 나무들로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벽의 틈 사이로 법사가 앉아있는 거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법사의 주문소리가 빠르면서도 높게 이어졌다. 계속 주문이 이어지면서 이한은 어질한 현기증을 느꼈고 눈앞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법사의 모습과 함께 주문소리가 점점 아득하게 멀어졌고 촛불이 흐릿해지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촛불이 사라진 눈앞에는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았고 눈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들었다. 이한은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기이하게도 작은 신음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낯선 소리들이 한꺼번에 고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한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 므이의 집이 있었다. 분명 집안 창고에 있었는데 언제 밖으로 나온 것일까. 김 교수도 법사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한은 왜 자기만 초원에 남겨졌을까 의아해하다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렇게 초원에 서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이상한 느낌.
이윤수는 더 이상 집에 다가갈 수 없었다. 조금 전 베트남 남자 셋과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므이의 집으로 들어가는 걸 숨어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올리비에 중령의 지시대로 므이의 집에서 그녀의 초상화를 반나절 동안 그렸고 므이가 프랑스로 떠날 준비를 할 동안 산책을 다녀온 길이었다.
남자 셋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간 붉은 머리칼의 여자는 리디아가 틀림없었다. 그녀가 여기 왜 나타났을까. 이윤수는 소리 없이 문가로 다가가 벌어진 문틈으로 안을 움쳐보았다. 집안에서는 놀랍고도 섬뜩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험악한 세 명의 남자들이 므이를 바닥에 눕힌 채 손발을 붙잡고 있었고 리디아가 저주를 퍼부으며 므이의 배를 발로 짓밟고 있었던 것이다. 입이 틀어 막힌 므이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고 잠시 후 허옇게 드러난 그녀의 허벅다리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그제야 이윤수는 리디아가 여기 온 이유를 알 것 같았고 므이가 위험하다는 것도 직감할 수 있었다. 끔찍한 비극을 막으려면 어서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절박감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을 데리러 가는 대신 집 뒤쪽 창고로 달려갔다. 밖으로 난 문을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집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손은 어느새 목탄을 쥐고 바닥에 종이를 깔고 있었다. 손은 마치 주인의 의지를 배반한 것처럼 빠르게 눈앞의 참혹한 광경을 그림으로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사내 중 한명이 발버둥치는 므이의 발목을 잡고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윤수의 동공이 팽창했고 그림을 그리는 손은 더욱 빨라졌다. 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므이의 발목을 내리쳤다.
입이 틀어 막힌 므이의 끔찍한 비명이 이윤수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얼굴에 피를 뒤집어 쓴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장작을 패듯 므이의 발목을 계속 내리쳤다. 다리에서 분리된 발목은 무슨 물건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끔찍한 피비린내가 창고 안까지 엄습해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므이의 손목을 잡은 사내의 칼이 허공으로 치켜 올라갔다. 이윤수는 공포에 질린 어린 소녀의 눈과 질투에 사로잡혀 광기로 번들거리는 리디아의 눈을 번갈아 보았다.
사내가 손목을 내려쳤다. 므이의 몸이 몇 번이나 바닥에서 퉁겨 오르며 요동을 쳤다. 사내는 계속 무자비하게 칼을 내리쳤다. 이윤수는 귀를 막을 수도 눈을 가릴 수도 없었다. 그의 손이 저만의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려댔기 때문이었다. 절단된 손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문득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 것이다. 하지만 눈물을 훔칠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므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사내가 칼을 치켜들었을 때 이윤수는 비로소 그림 그리던 걸 멈추고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사내가 칼을 내려치는 순간 이윤수는 눈을 감았다. 꺽꺽거리는 므이의 신음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몇 차례 더 목을 내려치는 소리가 공허하게 집안에서 울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이윤수는 눈을 떴다. 리디아가 잘린 므이의 목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리디아가 므이의 머리를 내던졌고 남자들이 발목과 손목, 그리고 머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므이의 집 바로 아래쪽에서 남자들이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안에 혼자 남아있던 리디아가 창고를 향해 다가온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윤수는 자기도 모르게 벽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리디아의 두 눈이 창고 벽 바로 너머에서 뭔가를 찾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속에서 뭔가가 울렁거리며 밖으로 나오려하고 있었다. 이윤수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필사적으로 버티었다. 벽을 노려보던 리디아가 몸을 돌리는 순간 이한은 욱하고 구역질을 했다. 순간 리디아의 얼굴이 휙 벽을 향해 돌아왔고 이한은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댔다.
“이제 깨어나셨군요. 괜찮습니까?”
꽤 오랫동안 의식을 잃은 느낌이었다. 흐릿하던 시야가 밝아지며 김 교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남김없이 빠져나간 그런 기분이었다. 이한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온통 초원이고 뒤쪽으로 므이의 집이 보였다. 어느새 밖으로 옮겨진 모양이었다. 다들 돌아갔는지 법사와 다른 승려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한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음성으로 말했다.
“증조부께서는 므이가 살해되는 모습을...”
김 교수가 그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힘들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도 다 같이 봤으니까요.”
이한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같이 봤다구요?”
“예. 어떤 논리적인 설명으로도 어렵겠지만 우린 함께 100여 년 전에 일어난 살인현장을 함께 다녀온 겁니다.”
김 교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므이의 사라진 손과 발, 머리의 유골도 찾아냈습니다. 이한씨 덕분에 이제 그녀도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이만 가시죠.”
김 교수가 이한을 부축해 그의 차에 태웠다. 막 출발하려는 김 교수에게 이한이 물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누구 말입니까?”
“그 여자, 리디아 말입니다.”
“아, 리디아요? 리디아는 프랑스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인 올리비에 중령을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한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증조부가 왜 사람들을 데리러가지 않고 창고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점이다.
“증조부가 그때 사람들을 데리러 갔다면 므이를 살릴 수 있었을까요?”
김 교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한을 돌아보다가 이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었다.
“글쎄요, 당시 므이의 집 근처에 다른 집들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한씨 증조부의 행동을 분명하게 설명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가능성을 생각할 순 있죠. 다른 집들이 너무 멀어서 어차피 므이를 살리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해 증거라도 남기자는 심정이거나 나머지 하나는...”
그가 잠시 말을 끊고 묘한 표정으로 이한을 보다가 말했다.
“이한씨가 여기까지 온 이유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같은 이유라니요?”
“일테면 예술가의 이기심 같은...”
그의 말에 이한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한은 김 교수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증조부는 그 끔찍한 순간에도 므이를 살리기보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는 스스로의 욕망과 광기에 사로잡혔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림을 그리던 증조부의 눈빛과 리디아의 눈빛은 그래서 서로 닮지 않았을까. 그건 곧 가족을 위험에 빠트리면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이곳까지 와있는 이한 자신의 욕망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그만 가시죠.”
말을 마친 김 교수가 차를 출발시켰다. 이한은 백미러를 통해 멀어지는 므이의 집을 지켜보았다. 므이의 집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 이한은 그 집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본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석양으로 물든 초원이 멀리서 이글거렸다. 그리고 그 초원의 한가운데 마치 신기루처럼 춤을 추는 여인의 모습이 있었다. 차가 아무리 멀리 달려도 여인은 모습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