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집안내력

이한은 경찰에 신고를 한 후 그들과 함께 다시 아버지 집을 찾았다. 경찰들이 분주하게 집안을 드나드는 동안에도 그는 바깥에만 서있었다. 경찰로부터 현장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까지도 그는 집안으로 들어설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날씨는 흐렸고 습도도 높았다.
“안에 시신이 두 구 있습니다. 신원을 확인해주셔야겠습니다.”
시신이 두 구라는 소리가 비현실적인 환청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이한은 아직도 뭔가에 홀린 기분으로 거실로 올라섰다. 핏자국이 길게 서재로 나있었다. 아버지는 칼에 찔린 후 서재로 달아난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피의 길을 밟으며 서재로 따라 들어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한은 서재로 다가갔다. 형사들이 증거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조사하느라 서재를 발칵 뒤집은 소동의 한가운데 온몸이 피투성이인 아버지가 대자로 뻗어있었다. 이한은 그 낯선 충격에 한동안 눈을 감고 숨을 고른 후 다시 떴다. 옆에서 경찰이 말했다.
“여기...”
경찰의 소리에 무심코 눈을 돌리다가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시선은 경찰들에 의해 가려져있어 보지 못했던 또 한 구의 사체였다. 사체는 다름 아닌 그의 엄마였다. 엄마는 목에 밧줄을 매달고 눈을 부릅뜬 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똑바로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의 손에는 피 묻은 칼이 들려 있었다. 네 엄마가 날 죽이려한다던 아버지의 절규를 떠올리자 섬뜩하게 오한이 일었다.
“김재환 형삽니다. 부모님이 맞으시죠?”
형사의 물음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가 거실로 나가더니 그를 불렀다.
“혹시... 이 그림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형사가 그림에 대해 묻자 이한은 내심 놀랐다.
“예? 왜요?”
“제가 이 그림을 전에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요? 그 그림은 저희 증조부가 그린 겁니다만 어디서 저 그림을?”
형사가 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뭐, 별 건 아닙니다. 그림이 이한씨 부모님의 죽음에 관여했을 리도 없고.”
“예?”
이한은 형사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몰라 반문했지만 형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미 그에게서 등을 돌린 뒤였다.

++++++++++

이한은 김재환 형사와 조사실에 마주 앉아 참고인 조서를 작성 중이었다. 형사는 이한이 전날 낮 시간부터 무엇을 했고 어떻게 아버지 집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캐물었다.
“정말로 이한씨의 아버님인 이정수씨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죠?”
“예, 아버지로부터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당신을 죽이려한다고.”
“그것과 관련해 뭐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습니까? 흔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아내가 남편을 죽인다는 게. 그것도 노부부가 말입니다.”
이한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진짜 얘기를 전혀 하지 않고 형사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그건 귀신이니 저주니 하는 얘기를 들려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었고 지금의 상황을 더욱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혹시 형사님은 저주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던 형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주요?”
“예. 저주.”
형사가 이쪽의 의도를 살피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그런 걸 믿는지 믿지 않는지.”그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노트북 자판에서 손을 떼고 양해를 구한 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는 연기를 뿜어내며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형사님이 믿든 안 믿든 이 얘기를 하지 않고서는 제 행동이나 저희 어머니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사를 해보시면 알겠지만 저희 집안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형사의 눈에서 반짝하고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증조부와 어제 아버지까지 이런 사건이 두 번째입니다. 증조부도 저희 증조모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거의 변화가 없던 형사의 얼굴에도 놀란 표정이 드러났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이유는요?”
“질투 때문이었다고 하더군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부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조선후기에 의부증 때문에 남편을 죽였다고요?”
“네. 납득하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제 어머니도 증조모처럼 남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형사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그럼, 조부는?”
“다행히 할아버지께서는 아무런 사고 없이 수를 누리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일이 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로 저주라고 하기엔...”
“아까 김 형사님이 보던 그림이요.”
그림이란 말에 형사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 그림은 ‘므이의 집’이라는 그림입니다.”
“므이의 집?”
“예,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그림은 증조부가 베트남에 가서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증조부가 변을 당하고 돌아가신 후 무슨 이유인지 할아버지께서는 그 그림에 저주가 붙어있다고 믿었습니다.”
형사가 끙 하고 신음을 흘렸다.
“증조부가 돌아가시자마자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그림을 아예 불태우려고 하였으나 무슨 사정인지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 할아버지께서는 그림을 내다 팔았기 때문에 저주를 면했다?”
“저도 어제 아버지가 변을 당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내다 팔았던 그 그림을 50년 만에 되찾아왔거든요.”
형사의 입에서 또다시 끙 하고 신음이 새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