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되돌아온 저주

이한이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건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바깥에선 장마철의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요란하게 두들기고 있었고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식구들이 잠든 후 2층 작업실에 처박혀 소설 집필에 몰두해 있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일곱 번째 추리소설이었고 마지막 반전부분을 쓰느라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소설 속 장면에 너무 몰두해있던 나머지 전화벨이 울렸을 때 이한은 ‘악’ 소리가 날 정도로 놀랐다. 타이밍이 워낙 절묘하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그것도 이런 야심한 시각에 울리는 전화벨은 충분히 불길하고 꺼림칙했다. 그의 소설에도 불행을 알리는 전화벨은 늘 새벽시간에 울리곤 했으니까.
“여보세요?”
한껏 잠긴 그의 소리가 건너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 저편에서 흐느끼는 신음이 들려왔다.
“누... 누구요?”
이한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전율을 느끼며 되물었다. 그러자 핸드폰에서 뜻밖의 음성이 건너왔다.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이한아!”
그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불안정하면서도 고통스럽게 들렸다.
“아버지?”
이한이 놀라 소리치자 다급한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한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얘기였다.
“이한아... 네 어머니가... 날... 죽이려드는구나.”
이한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입을 벌렸다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엄마가 아버지를 죽이려들다니요?”
“아무래도... 저주가 다시 시작된 것 같구나.”
“아버지! 대체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 그림은 저주받은 그림이 틀림없다! 그걸 되찾아오는 게 아니었어!”
“아버지! 지금 무슨 소리하시는 거예요? 엄마 좀 바꿔주세요. 어서요!”
“네 어머니는... 지금 내 옆에 서서 날 노려보고 있다. 손에는 날 찌른 칼을 들고서. 아니다, 저건 그 사람이 아니다. 네 어머니가 아니야. 저주가 네 어머니에게 쓰인 게야. 이한아 내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그 그림도 태워버려라.”
“아버지 제가 지금 그리로 갈게요. 꼼짝 말고 그대로 계세요. 아셨죠?”
이한이 막 핸드폰을 끊고 방을 나서려할 때였다. 핸드폰에서 아버지의 위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이러지마. 제발 정신 좀 차려. 이러지마, 여보! 제발!”
“엄마! 왜 그래요? 엄마!”
순간 핸드폰에서 소름끼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바로 어머니의 기이한 비명소리와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었다. 단발마의 비명과 소리들은 섬뜩하게 고막을 파고들다가 급작스럽게 잦아들었다. 이한은 전율 속에 숨을 멈추고 핸드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수화기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불길한 적막과 두려움만 그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여 . 보 . 세 . 요?”
이한이 떨리는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소리를 냈다. 누군가 전화를 받는 기척이 전해졌다. 이한은 다시 숨을 죽였다. 상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수화기만 든 채 숨소리를 뱉어냈다. 숨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엄마예요?”
이한이 기어드는 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색색거리는 숨결은 더욱 집요하게 귓전을 파고들었다. 누군가 전화를 들고 있다는 확실한 느낌이 있는데 상대가 말을 하지 않으니 마음에는 점점 두려움이 쌓여갔다.
새삼 아버지가 말한 저주란 단어가 웅웅거리며 머릿속을 떠돌았다. 대체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 서늘한 숨결이 바로 곁에서 미풍처럼 귓전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꺼림칙한 물건을 팽개치듯 핸드폰을 내던졌다. 마침 그가 지르는 소리에 잠이 깬 현경이 불안한 얼굴로 방문을 열어젖혔다.
“여보, 왜 그래?”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이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여보.”
“아버지야.”
“뭐?”
“아버지하고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현경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무슨 일이라니?”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아버지를...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대.”
이한이 힘겹게 말하자 현경이 신음과 함께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가봐야겠어.”
이한이 1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귀가 멍멍할 정도의 세찬 빗소리가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다. 일기예보에서는 낮부터 엄청나게 퍼붓기 시작한 장맛비로 전국곳곳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했다. 이한은 폭우가 쏟아지는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잖아도 소름이 돋은 몸에 차가운 빗물이 닿자 한여름인데도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웠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차문을 열고 타기까지 불과 10여초의 시간동안 온몸이 비에 완전히 젖어 좌석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황급히 시동을 걸고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작동시켰지만 엄청난 빗물을 털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막 마당을 벗어나려는데 현경이 차문 옆으로 달려 나왔다. 이한이 창문을 내리자 비에 흠뻑 젖은 그녀가 불안하면서도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발 조심해. 우리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지난번에 아버님이 그랬잖아. 저주가 다시 우리 집안을 찾아온 것 같다고. 그래서 당신 보고도 오지 말라고. 거기 가면 당신한테도.”
“닥쳐! 저주 같은 게 어딨다고 그래!”
이한은 소리를 지르며 액셀을 밟았다. 바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퉁기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불길한 얼굴을 한 현경의 모습이 백미러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차는 빗물로 번들거리는 도로 위를 무섭게 질주했다. 시커먼 괴물로 변한 도로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완전히 집어삼켜 차선은 물론 중앙선도 보이지 않았다. 차창에는 금방 뿌옇게 김이 서려 시야가 극도로 좁아들었다.
아버지 집은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이었다. 평소 이런 새벽이라면 길동인 그의 집에서 30분도 채 안 걸릴 거리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이한은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차에서 핸드폰으로 아버지 집에 전화를 했다. 몇 번 신호가 갔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막 전화를 끊으려 할 때였다. 누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버지?”
이한이 소리쳤지만 상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묘한 침묵이 기분 나쁜 숨소리를 동반하고 넘어왔다.
“엄마예요?”
이한은 아까보다 훨씬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누구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소리가 새나오지 않았다. 이한은 그대로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 온몸에 깨알 같은 소름이 돋아나있었다.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4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아버지 집은 일반 전원주택단지에서도 따로 떨어진 곳에 지었다. 평소에도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폭우가 쏟아지는데다 불길한 상상까지 겹쳐 집은 그 어느 때보다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해보였다.
이한은 차를 마당에 세운 뒤 내렸다. 굵은 빗방울이 몸을 두드려댔지만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거실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는데 커튼이 쳐져있어 안쪽 상황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안에서 아버지가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예감이 그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이한은 안으로 들어서는 대신 전화를 먼저 걸었다. 집안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왔다. 전화는 거실에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거실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노려보았다. 공허한 전화벨이 여러 차례 울렸을 때 커튼 너머로 불쑥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한은 자기도 모르게 훅하고 숨을 삼켰다. 그림자가 전화를 받았다. 단순히 형태만 봐서는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이번에는 이한도 곧바로 소리를 내지 않고 숨을 죽였다. 상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한은 전화를 귀에 대고 그림자를 노려보며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피비린내가 코끝에 끼쳐왔다. 냄새는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강렬했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방망이질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섰고 모퉁이만 돌면 전화를 받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모퉁이를 도는데 숨결이 거칠어졌고 다음 순간 거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한은 전율에 휩싸이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피가 흥건한 거실의 끔찍한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핸드폰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색색거리는 숨결이 들려오는데 정작 거실에는 전화를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화기도 얌전히 전화기 위에 놓여있었다. 분명 그는 그림자를 보았는데. 이한은 떨리는 음성으로 전화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 누구요?“
숨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귓전을 울렸다. 이한은 발작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자꾸만 몸이 떨려왔다. 비록 보이지는 않았지만 찌르는 것처럼 강렬한 누군가의 시선이 눈앞 허공에서 느껴졌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한은 필사적으로 버티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거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한참을 울린 끝에 딸깍하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에서 예의 그 숨결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이한은 그 소리가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눈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이한은 허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뒷걸음질을 쳐서 다시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거실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만으로도 막혔던 숨이 토해져 나왔다. 그는 현관문을 벗어나 마당으로 나왔다.
하지만 마당에서 보이는 거실의 모습을 본 순간 그는 신음을 흘리며 거칠게 핸드폰 폴더를 닫았다. 커튼 너머로 보이는 거실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또렷하게 보였던 것이다. 입에서 자꾸만 신음이 새나오고 몸이 떨려왔다. 도저히 집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뜻 본 거실 바닥에는 핏물이 흥건했고 벽에는 피 철갑이 되어 있었다. 설혹 그 피가 부모님의 것이라 해도 그는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이렇게 밖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무서웠다. 무서워서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한은 자꾸만 뒷걸음질 쳐서 집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때였다. 미동도 하지 않던 커튼너머의 그림자가 고개를 돌렸다. 마치 거기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림자의 시선은 똑바로 이한을 향했다. 이한은 그 시선 앞에서 얼어붙은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림자가 움직였다. 이한은 숨을 다잡았다. 그림자는 현관문 방향으로 사라졌다. 이한의 동공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었다. 그의 부풀어 오른 두 눈이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는 뚫어지게 문의 입구를 노려보았다.
“헉!”
이한은 쓰러질 듯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발자국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어떤 형체도 없이 피로 물든 발자국이 거실 바닥을 걸어와 현관 입구에 멈춰 섰다. 잠시 미동도 하지 않던 발자국이 이한을 향해 돌아섰다. 더불어 아까 거실에서 느꼈던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도 다시 느껴졌다. 핏빛 발자국이 현관문을 나섰다. 이한은 한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발자국이 그를 쫓아왔다. 젖은 마당에 흐릿하게 흔적을 남기며 발자국이 이한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한은 자동차로 달려갔다. 발자국도 그를 쫓아왔다. 이한이 간신히 차에 올라탄 다음 허겁지겁 문을 걸어 잠갔다. 하지만 그런 물리적인 조치가 저런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소용이 있을까. 손이 덜덜 떨려 시동키를 꽂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때였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차창 유리에 손을 짚자 이한은 펄쩍 뛰듯이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손은 보이지 않았지만 차창 유리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이한은 정신없이 액셀을 밟았고 차가 빗속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는 그제야 헤드라이트를 켜고 연신 백미러와 룸미러를 살폈다. 하지만 거울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폭우 속에서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아버지의 집이, 그의 유년과 가족의 소중한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 집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처럼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