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니 여기저기 앉을 곳, 누울 곳만 찾게 된다.

거실에 앉아서 창가를 바라보노라니 자그마한 화분들이 눈에 들어오고

문득 저 화분들의 모습이 마치 나의 모습으로 클로즈 엎 되어 다가온다.

대나무를 빼고는 나는 저들 화초의 이름도 잘 모른다.

집을 팔려고 대청소를 하면서 화분들을 모두 밖으로 내어놓았던 어느 날 갑자기 추위가 닥쳐왔다.

난을 비롯한 커다란 화분들과 선물로 받은 꽃화분들은 얼른 들여놓았지만 이름도 잘 모르는 작은 화분들은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대나무도 그 중에 하나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 대나무를 애지중지 하는 것을...
이파리가 조금만 말라도 영양제를 사다 주어라, 흙을 갈아라...
그럴 때마다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남편의 대나무 사랑에 무관심으로 대꾸하곤 하였다.

갑작스런 추위에 대나무가 갈색으로 변한 것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라지로 옮겨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대나무에 눈길이 가게 되었다.

흙상태도 볼겸 해서 뿌리를 뽑아 물화분으로 바꾸어주려고 할 때였다.

흙 속에 잠긴 뿌리 근처 마디에서 연하디 연한 연초록의  잎새가 돋아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조금만 세게 뿌리를 당겼다면 아마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아, 생명의 경이함이여!"
"생명의 신비함이여"

아마도 남편은 중국인들이 생각하듯이  "럭키 뱀부"를 믿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그 싹을 본 순간의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누군가 말했었지...

꽃잎 하나에도 전 우주의 신비가 담겨져있다고...

그 후로 나는 대나무를 안으로 들여와 정성껏 물을 갈아주며 다시 푸르고 건강한 잎새가 돋아나오길 바라고 있다.

또 다른 화분은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네 집에 갔다가 꽃향기가 무척 아름다워서 한 뿌리를 얻어온 것이었다.

다른 화초들에 비하여 무척 건강한 편이어서 물을 줄 때마다 마디가 하나씩 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애벌레가 탈피를 하듯이 가지가 하나씩 늘어 날 때마다 하얀 껍질이 남곤 하였었는데...

그도 역시 그 날 밤 추위의 희생자였다.
마음으로 좀 안되었지만 바쁜 일상 속으로 그도 서서히 잊혀져 갔다.

어느 날 늘어진 이파리가 보기 흉하여 잘라 주기만 하였는데...

자른 가지에서 다시 싹이 나올 줄이야...
새로 나온 싹은 더욱 건강하여 적갈색을 띠며 무럭무럭 자라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화분은 이름 붙이기를 "핸리의 마지막 잎새"이다.

아는 형님께서 한 뿌리를 내려 주신 것인데 마치 잎모양이 연꽃처럼 생겼다.

한 때는  먼저 살던 집 현관에서 오고 가는 이들 모두에게 아름다운 초록인사를 건네곤 했었는데...

지금은 마치 동양화에 나오는 노송처럼 줄기만이 앙상히 남아있고 오직 하나의 잎새만이 가지 끝에
대롱대롱 달려 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이 보인다. 앙상한 줄기 옆에서 작은 싹들이 돋고 있으니...

화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그들이 돌보지않은 나의 육체처럼, 나의 분신처럼 다가와  더욱
정이 가게하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