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춤추는 여자 / 김옥인
현관문을 연다
타이머로 장치해논 라디오에서 음악이 흐른다
음악에 맞추어 신발을 벗으며 빙돌아 본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게야
왜 바둥거리누...
옷을 걸면서도 가볍게 춤을추듯 흔들 거린다.
벗는 김에 아예 모두 벗어볼까?
정말 홀가분하네..
현관거울을 본다
반 벌거벗은 낯익은 여자가 그 곳에서 힐끗 쳐다 본다
어머! 얼른 손으로 몸을 가리며 멈칫한다
얘야! 어서 옷 입거라 감기들라.
귀익은 목소리에 머리를 끄덕이며
매끄러운 살결같은 기인 실내옷을 입는다
흐르는 음악이 점점 고조되어간다
집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깃털이 날라가듯 춤을춘다
얘야! 그래 그래
어서 어서 더 부드럽게 추려무나...
부추기는 소리가 반주처럼 동행한다
갑자기 타이머에 따라 음악이 멈춘다
여자도 따라서 동작을 멈추고 생각에 머문다
일분 ,이분,,,, 얼마가 지나
다시 새로운 음악이 흐른다
여자는 살포시 춤추기 시작하며
얘야! 부르는 소리를 귀기울여 기다린다.
( 참조: 라디오타이머/
출타시 도둑방지용으로 집안에 사람이 있는듯이
자동으로 라디오가 켜졌다, 꺼졌다 하도록 장치된 것)
?지난 목요일에는 한가위 미사를 드렸고 오늘은 한국성인 순교자 미사를 드렸어요 강론시간에 최양업 신부님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지엇답니다 몇년 전 한국에서 사온 배은하 신부님 강론 테이프--길에서 산 산나이--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삶--을 다시 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였답니다 옥인선배님 도둑방지용으로 춤추는 여자가 있군요 엊그제 수영장에서 아는 분이 옷장에 넣어둔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도둑이 차도 훔쳐갔대요 혹시 그럴 때 도둑 방지용 춤추는 여자 어디 잇을까요
이 글은
그리그의 곡 'She dances' 라는 음악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데로 적어보았어요^^
(산문시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
요즘 9월 20일부터 내년 1월까지 비엔나 알버티나 미술관에서 '앙리 마티스'전람회가 열리고 있답니다.
시내곳곳의 광고판들을 보면서
4년전 뉴욕 모마( Museum of Modern Art/ MoMA)에서 처음 보았던 감격의 향수를 느끼게하며
그림처럼 춤을 추고싶은 생각이 들었었는지도.. ^^
"춤 ll"(Dance II 1909)
(2009년 12월 22일 뉴욕 MoMA에서...)
며칠간 쉬지않고 일하다 오랫만에 환한낮에 집에 돌아오며
문을 여는데 이곡이 들리는 것이에요.
아무도 없는 집안에 넘치는 아름다운 음악에
저절로 흥이 났어요.
며칠간의 긴장은 어느덧 사라지고
어린날 춤추듯이 너울 너울 움직여지는데... ㅎㅎ
그 시절 엄마가 이런 나를 보며 격려하시던 그때로 돌아가더라구요.
우리집은 아무도 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라디오 타이머를 설치해두었는데
FM방송채널이라 음악이 주로 방송되지요.
집에 들어오면서 음악이 들리면
누군가 집에서 나를 반겨주는 기분이 들어요
금재후배!
후배 스스로 춤추는 여자가 되어보세요 ^^
저는 종종 ... ㅎㅎ
?요즈음은 류시화가 엮은 잠언 시집--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보고 있어요 5연에 나오는 구절이 춤에 관하여서 올려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 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글 ? 킴벌리 커버거 , 역 ? 류시화
금재후배
전해준 위의시 전체를 찾아 올렸어요.
이리도 좋은 시를 알려주시니 항상고마워요.
오늘부터 찬찬히 암송하며 내것으로 만들어 보려구요..
류시화 님의 시도 더 찾아보고요.
춤은
제가 어린 시절부터 즐겼어요.
어머니의 배려로 정식으로 고전무용교습을 받었었지요.
아직도 장구장단의 흥이 이 몸한구석에 있답니다.
그 시절 축음기의 코맹맹이 소리도 잊혀지지 않고 있고요.
그 덕분일까요.
비엔나와서 얼마 안되어 앙상블을 했었는데,
그때 기획자의 추천으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한국음악을 선보이는 계기가 있었지요.
장고를 치며 한국민요를 부르다가 잠간이지만 무용도 했었어요.
상상이 되나요? 몇번 민속음악축제에 초대도 받아 독연도 했었기도..
아직 30대의 젊음으로 패기있고 지금보다 날씬하던 시절 얘기네요^^
지금은 혼자있을 때 자유춤을 나름대로 때때로 즐겨요
흐르는 음악에 모든 육체의 끈을 놓듯이 맡겨보는 거에요.
음악이 없을 때는
머리속에 떠올리는 선율에 맡기기도 해보고요.
혹은 무념무상으로 맡기기도해요
2년전 오른쪽무릎수술 하기전에는
전원을 거닐다가 율동적으로 막 뛰어다니기도 했었어요.
이제는 걷기도 힘들어서 조용히 다니지만요.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많은 의미가 들어있는 글귀이군요..
마티스의 전람회 포스터를 본후
마티스의 그림을 추억하고
얼마후 그리그의 춤음악을 들으며
모든것들의 연상선상에서 춤을 추다가
글로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동기 부여한 마티스 그림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위에 올린 마티스 그림중에 첫번째 명화감상을 해보렵니다.
옮겨온 글입니다.
*해설을 곁들인 명화감상
앙리 마티스(Henry Matisse 1869-1954)의 "춤 ll"(Dance II 1909)
해설 임 이 섭
앙리 마티스는 1869년 불란서 북부 피카디아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법을 공부하고, 법률 회사에서 근무하던중 중병에 걸려 투명하다가 회복기에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그후 파리에서 미술을 수학 하였다.
당시 파리에서 쟁쟁하게 활약하던 후기 인상파의 피사로, 쎄잔느, 밴 고호 그리고 고갱같은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마티스는 1905년경 부터 대담하고 새로운 표현법을 개척하여, 불란서의 야수파등 새로운 미술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에 피카소와 같이 20세기 현대 미술의 두 거장가운데 하나로 우뚝 섰는데, 두 화가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그림을 서로 교환하는등 친분을 유지하였다. 피카소가 주로 상상적인 구도에 주력하는 반면, 마티스는 발랄한 색갈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인물이나 정물의 모양들을 간결한 평면화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20세기의 화가중의 화가로서 현대 미술을 개척하였다.
1941년 암 수술을 받은후 부터 휠 췌어를 타고 종이를 잘라 콜라쥬를 하면서 계속 작품 제작에 정진 하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작품 “춤”은 그의 초기 작품인데, 마티스가 러시아 모스코의 어느 대궐에 그린 벽화와 같은 구도로서 작가 자신의 말대로 생명력과 리듬이 넘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음악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은 것 처럼 흥겹고, 순진 낭만한 색갈로 화합을 잘 표현하였다. 원근법을 무시하여, 다섯명의 나체들을 모두 같은 크기로 그렸으며, 변화된 율동미로 하나를 이루어 작품 구성이나 단순한 색채 표현등으로 현대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색갈의 구도이지만 대체로 마티스의 작품들은 거의 풍부한 색갈의 조화를 이루어, 화려한 색채의 교향곡이라고 할수 있다.
(이 해설을 쓰신 임이섭님은 서울미대와 IIT의 Institute of Design 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하고, 시카고 교외 Lincolnwood 에 거주하면서 평화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작품전시를 거듭하여 왔습니다. 시카도 필드뮤지엄 캠퍼스에서 전시중인 '지구 온난화 방지 설치전(CoolGlobes:Hot Ideas for a Cooler Planet)' 에 그의 작품 <수력(Hydropower)>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www.aesop-art.com 에서 그의 작품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텅 빈 충만의 춤
무엇을 할 때 자유를 느끼십니까?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뻥 뚫리고 호흡이 편안하신가요? 마티스의 ‘원무’는 춤을 출 때 자유로운 여인들을 그렸습니다. 한번 보고 나면 자꾸자꾸 떠오르고 자꾸자꾸 보고 싶은 연인 같은 그림입니다.
그림은 참 단순합니다. 하늘과 땅과 춤추는 5명의 여인들! 색도 단순합니다. 푸른 하늘, 녹색의 대지, 신명 속에 있는 땅 색의 여인들!(앙리 마티스 ‘춤’. 1910년, 캔버스에 유채, 260x391cm,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왜 중세철학자들이 신적인 것일수록 단순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직관이 뛰어나지 않으면 단순미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마티스의 스승은 모로입니다. 오르페우스를, 살로메와 요한을 그렸던 신비한 작가 모로, 기억하시지요? 무명(無名)의 마티스를 알아본 모로는 마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지요? “마티스, 회화를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해봐. 넌 그 일을 위해 태어났어.” 그 말은 마티스에게 눈이기도 하고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은 ‘나’를, 심지어 ‘나’조차 확신하고 있지 못한 나를 알아봐 준 스승의 눈이 내 눈을 뜨게 한 거지요. 그렇게 자신감의 눈을 뜨는 건 중요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얻은 것이니까요. 그러나 실타래를 얻었다고 미궁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무르익어야 합니다.
마티스의 시간은 언제 무르익었을까요? 자신을 알아주던 모로가 세상을 떠나자 마티스는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이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세잔의 그림을 보았을 때, 그때 마티스는 비로소 스승 모로가 던져놓은 말의 의미를 알아채고 환호합니다. ‘아, 그래. 군더더기는 필요 없어! 색이 넘칠 필요가 없어. 덕지덕지 장식을 입히지 말고, 직관이 명하는 대로 단순하게 그리면 되는 거야. 본질적인 것만!’ 세잔의 그림 곁에서 길을 찾은 거였습니다. 그가 평생 세잔의 그림 ‘목욕하는 세 여인’을 끼고 살았다는 건 유명합니다.
사실 마티스는 그림을 할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법률을 하고 있었지요. 그림이랄 수 있는 것을 본격적으로 그려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운명이 있나 보지요? 때로 운명은 고통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보게 합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법률가의 길을 걸으려는 마티스에게 맹장염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땐 맹장염도 치명적인 병이었나 봅니다. 1년 동안이나 요양을 해야 했으니. 20대에 1년은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어머니가 길고도 무료한 요양 생활에 도움이 되라고 그림 도구를 사다 준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심심풀이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지요. 때로는 그런 우연들이 삶을 이끌어 가는데, 생각해보면 우연까지도 운명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연이야말로 운명이 가장 좋아하는 숨바꼭질 놀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표면적으로 생각해보면 모로와 세잔은 마티스의 생에 끼어든 우연이었지요? 그렇지만 그들이야말로 마티스의 운명이고 축복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삶은 마티스에게서의 ‘스승 모로’ 같은, 친숙하지만 해독하기 힘든 암호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저마다의 운명으로 이끌어가는 기적인지도 모릅니다.
한번 보고 나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저 그림은 어쩌면 우리 영혼 속에 새겨진 것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요? 5명의 여인이 춤을 춥니다. 표정을 알 수 있는 것은 한 여인뿐이나 한 여인은 모든 여인이기도 하지요. 그들은 모두 일체감 속에서 무아지경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춤뿐입니다. 텅 빈 충만의 춤! 세상은 춤을 출 수 있도록 텅 비어 있지만, 춤을 출 수 있도록 움직임으로 꽉 차 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춤을 춥니다. 하늘이, 대지가, 햇살이, 바람이,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마티스의 다른 그림 ‘음악’엔 5명의 남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보니 5라는 숫자는 의미가 있는 것 같지요? 5는 완전수입니다. 남자 다섯이 모여 있으면 세상은 든든하게 지켜지고 여인 다섯이 모여 있으면 세상은 사랑으로 춤을 춥니다. 5는 모든 곳에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완전한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특별히 소중한 게 없어 모두가 소중한 무아(無我)의 현현입니다.
저 그림을 보면 우연과 운명이 둘이 아니듯 하늘과 땅이 둘이 아닙니다. 인간과 세계가 둘이 아니듯 너와 내가 둘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실을 온몸으로 아는 자, 텅 빈 충만의 춤, 원무를 춥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춤을 춥니다.
하늘이,
대지가,
햇살이,
바람이,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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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림을 보면 우연과 운명이 둘이 아니듯 하늘과 땅이 둘이 아닙니다.
인간과 세계가 둘이 아니듯 너와 내가 둘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실을 온몸으로 아는 자,
텅 빈 충만의 춤,
원무를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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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 철학교수가 나타내는 춤의 의미가 가깝게 닥아옵니다.
음악;
Composer: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Dmitri Shostakovich's son, Maxim Shostakovich conducts Piano Concerto No. 2 in F major which is performed by Maxim's son, Dmitri Shostakovich Jr. and accompanied by the I Musici de Montreal
그리그/ 여자가 춤추다
Grieg - Sie tanzt (She da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