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마음


토요일 네시에  신문사 기자가 우리 유리온실에 대해 인터뷰하러 온다고 며칠 전에 연락이 와서 점심경에 근교집으로 나갔다.

원래 자동으로 난방장치를 해 놓았으나, 이날 따라 기온이 낮아 도착하자 마자 난로에 불을 붙이니 타닥타닥 나무타는 소리가 정겹다.

집안 정돈하며 음악을 들으니 나름대로 행복이  난롯불과 더불어 지펴 지는 것이다.


드디어 기자가 도착하여 남편과 인터뷰하는 동안 나는 좀 떨어진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불길을 바라보며  손님이 돌아 간 다음 즐길 것을 기대한다.

우리 '돌 난로'는 피운 다음 적어도 두시간 정도 지나야 돌이 뜨거워 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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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길어지는 듯하여 별채 손님 방에 가서 내 마음대로 편하게 지내다가  어둠이 깃든 정원으로 나와 본채에서 나오는 빛을 바라보며 이렇게  편안한 저녁을 맞이하는 하루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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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돌아가자 안으로 들어와 난로 위를 만지니 뜨끈 거린다.

낼름 위로 올라가 허리를 지진다.


" 아! 행복해! 내가 여기 오스트리아에서 이렇게 온돌느낌을 가질 수 있다니... 얼마 전까지 상상도 못했었는데.." 라는 나의 소리에 

" 하하하! 내가 당신 위해 일부러 온돌 난로 만든 것인데, 몰라?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 "


호호 ! 공치사는? 속으로 생각하며 

" 그래, 알았어. 고마워유. 증말"... 하고 말하니 정말 고마움이 솟는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 오는데 다시 난로로 가서 만지니 아직도 뜨끈 거린다. 또 올라가 허리를 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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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남편이 벽난로를 가운데 만들며 연통이 중앙에 있으면  전망에 방해가 되니 난로를 낮게 만들며 면적을 넓게 하면 그 위가 따뜻해서 온돌처럼 눕거나 앉을 수있다고  했다. 연통도 바닥에 묻혀 외벽으로 뻬어 내는 장치를 하면서 여러가지로 공사비가 많이 들지만 사용하는 데는 일거양득이라고도.

그러나 나는 중앙에 넓게 차지한 면적에 " 괜시리  공간차지 하잖아. 그냥 저기 벽에 세우면 좋을 텐데.." 라고 투정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날  온돌처럼 난로위에 누어 보니 너무나 좋은 것이다.


기분 좋게 몸을 풀고 아침을 준비하는데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 당신 기분 좋은가 보다.. 어쩐 일?"

" 온돌 때문에 ㅎㅎㅎ"

" 아하! "


아침을  식탁에 차리고 앉자마자 전화가 진동한다.

평소에는 식사시간에 전화를 안 받지만 디스플레이에 뜨이는 이름이 

한국에서 걸려온 가족전화이기에 받으면서 남편보고 먼저 먹으라고 하니 인상을 쓴다.

' 한국전화" 소리 안나게 입모양으로 알려준다.


"ㅇㄱ아! 안녕! 오랫만!"

" 그래  좀 적조했네. 잘 지내지?"

평소처럼 안부를 물어 온다. 

그런데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


 " 놀래지마! ㅇㅈ 가 ㅇ병에 걸렸어.내일부터 치료 들어가는데. 알고 있으라고. 지난 성탄절부터 세세하게 검사받느라고 나도 정신 없이 지냈지만  ㅇㅈ가  연락하지 말라고 부탁했기에..."

.


세상에! 그랬었구나.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보낸 성탄과 새해 문자에 회신이 없어서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아.  


ㅇㄱ 이는 그동안의 경과에 대하여 설명한다. 


얼마나 힘들까? 매일 여섯시간씩 병원에서 지내고 왕복 다니려면 하루가 다 갈텐데..

아픈 사람보다 옆에서 지키는 ㅇㄱ이가 더 안타깝다.


통화를 마치고 나자 입맛이 없어 아침식사를 할 수가 없다.


눈치를 챈 남편이 

" 누가 아퍼?"

" 응. 나중에 얘기할 게."


자리를 떠나 침실로 와 눕는다.

곰곰히 ㅇㄱ의 말을 더듬으니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내가  성탄과 연말에 휴가 기분으로 지내던 시간에 

ㅇㅈ는 아프고 ㅇㄱ은 뒤바라지 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방금전 까지도 온돌의 따뜻함에 취해 행복한 시간에 ㅇㄱ은 나에게 연락할가 말가 망설였을텐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먼 곳에서 있어야 하는 내 처지가  막막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전화 받은 날부터 통화를 하면서 지내지만 옆에서 지킬 수 없는 것이 답답하다.


화요일은 딸애의 생일이었는데, 

미역국 끓이기도 귀찮아 오후 늦게까지 그냥 있다가 ,

아니, 딸애가 무슨 탓이라고... 생각에  부랴부랴 한국 식품점에 가서 장을 보아서  상차림을 해주었더니 

딸애가 연신 좋아하며 맛있게 먹는다.


딸애에게  일요일 아침의 전화내용을 말해주며 

"너의 생일 덕분에 엄마가 정신차렸네.  고마워. 우리 딸!"


" 엄마! 너무 자책하지마요.사실  엄마도 나도 그 병으로 아플 수 있잖아요?  열심히 치료받아 완쾌하기만  소망해야지 어떡해요. 그리고 엄마가 더 나이가 많으니까 , 엄마는 엄마 건강 체크해요. 걱정하다 생병 만들지 마시고요."


한치 걸러 두치라고 하던가... 딸애가 엄마걱정을  더 한다.

다음날 건강검진 예약을 꼭 하라고 당부하고 딸애가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날, 그다음 날도 나는 그냥 지낸다.

아픈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