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한 여자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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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오르자 세상이 갑자기 환하여 눈을 직접 해로 향하지 못하고 옆을 보는데,

은지도 마찬가지로 눈부신듯 여자의 옆으로 다가다.

 

순간의 가름이 이리도 찰나라니...

 

여자는 온몸을 두르듯 싸고 있던 자신의 팔을 풀어 은지를 안고 하늘 높이 올려본다.

자신이 딛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지구의 한 중심이라고 생각하니 오래전에 박영빈과 나누었던 말이 떠오른다.

 

영빈과 만났던 그 여름 하룻 저녁은 덕수궁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돌다가 영빈이 갑자기 땅에 구부르고 앉아서 좀 커다랗게 둥그런 원을 그렸었다.

 "아인씨, 이리 앉아봐요.이 원이 바로 우주에요. 그렇다면  아인씨는 이 원의 어디쯤 있을까요?"

 

여자는 이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이리 시작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아무 대답을 못 하고 그를 찬찬히 바라만 보았었다. 그때 그가  여자를 가만히 뒤로  안으며,

 

"당신이 바로 이 원 안의 우주중심에 있어요. 이렇게 내가 싸고 있는 원 안에 있는 것처럼 그 원이 넓어질 때도 있고  좁아질 때도 있지요. 또한 또 다른 원과 공통구역을 갖으며 좀 다른 구역을 각각의 원으로 가질 수도 있고요."

 

 여자는 영빈이 말하는 의미를 알아들을 듯 말 듯했으며 그가 당시에 공부하는 철학의 한 이론을 가르쳐 주는 가 싶었다. 결론적으로 인간 스스로가 이루어 나가는 것이 그 스스로의 우주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했었던가?

 

오래전 얘기가 선명히 떠오르는 것은 이런 찰나적인 감명으로부터 오로지 비롯되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을 떠나오기 하루 전에 영빈의 동생 성빈을 만난 후부터 계속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가고 있는 것인가 ..그러다가도  주저함과 두려움 속에 일부러 느릿느릿 거리는 것은 아닐까. 왜 무엇 때문에...

 

제이드! 뭘 그리 보아요?“

클라우스가 여자에게  다가와  조용히 묻는다.


여자는 정신을 차리듯,

아... 그저 해 떠오름의 찰나가 저를 멍멍하게 하네요.“ 라고 답한다.


그렇지요? 나는 그래서 이 순간을 좋아해요. 내가 사는 인생도 바로 이렇게 찰나에 태어났고 언젠가는 찰나에 떠나리라는 상념이 나를 잡아주거든요. 아직은 일몰보다 일출에 더 비중을 두지만요 허허허!“

 의미있는 말을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그가 웬지 속 깊은 곳에 무궁무진한 그 스스로 모아놓은 상념의 귀한 상자가 있을 듯하다. 


여자는 클라우스가 일부러 자기를 위해 천천히 얘기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가지며 그의 말을 가슴에 꼭 담는다.


.. 내가 사는 인생도 바로 이렇게 찰나에 태어났고 언젠가는 찰나에 떠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