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 영자, 그리고 보나...

어떻게 보면 세명의 이름같다.
그러나 이 세개의 이름은 모두 한사람게 주워진, 주어진 이름이다.

내가 이렇게 세가지의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데는 많은 아픔(?)이 있다.

부모님께서 우짜 우짜 하다 임신을 하셨다.
그리고 9달 반이 지나 어김없이 한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런데 나의 부모님과 내가 첫 상면을 하던 날
나의 아버님 보시기에 자신의 딸이 너무도 못생긴기라..
그래도 이름은 지워주어야 하는게 부모의 도리인지라
생각끝에 이름이라도 아름다울 미(美)자를 넣어 "미자"라 지으셨단다.

아버님의 그런 고귀한 뜻을 전혀 모르는 미자..
아름다움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씩씩하면 되는지 알고
주는데로 다 먹고
자라 하지 않아도 맨날 자고
생전 병원이라는 걸 모르고 자알 커갔다.
(내가 우리 애들 키울땐 잠잘때가 젤로 좋더만. 이런 저런거  생각하면 나도 효도 많이 했네)

이렇게 자란 미자
집안에서, 그리고 국교시절에는 모두 미자라는 이름으로
명성(헤헤)을 떨치며 지내왔다.

나는 그 시절에는 유치원이 없었는 줄 알았다.
내가 유치원을 안 댕겼으니
당연히 없는거다.
그런데 내 동생은 유치원엘 들어갔다.
지금까지 나는 나까지는 유치원이 없었고
내 동생때부터 처음으로 유치원이라는게 생긴걸로 믿고 싶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유치원에 안 보내셨다는게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 딩굴 딩굴 먹고 잠이나 자는 이름이 아까운 미자가
아버님께서는 마음에 안 드셨던지
미자를 54년생 3월 3일로 동사무소 직원과 짜고(아버님 쥐송)
나를 국민학교에 입학시키셨다.

그리고 6년을 나는 미자로 아무 탈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이렇게 살았다.

세월은 흐르는 법...
미자가 중학교를 갈때쯤
아버님은 서울에  중구청으로 호적을 때러 가셨다.
그날밤 아버님은 호적에서 없어진 미자를 찾기 시작하셨다.
한참후에 안 사실이지만
미자란 이름은 조용히 사라지고...
생일과 이름이 다른 영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생일이 다른건 이해한다.
그때도 출생신고를 늦게하면 벌금을 내던 시절이였으리라 믿고..
벌금 내시기 아까워 출생신고를 56년 3월 3일로 하셨다고 좋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름은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아무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딸이지만
딸의 이름이 미자에서 영자로 바뀌었는데도
그리 무심히 12년을 사실수 있었는지..
지금........... 고것이 알고 잡다..........(하늘에다 대고 소리쳐봐야 내 목만 아프네)

그리하여 나의 이름은 영자로 둔갑하고
나의 중학교 이상 친구들은 나를 영자로 알고 지낸다.

나의 이름이 영자로 바뀌던 날...
나의 운명이 고르지 않으리라는 걸 쪼깨는 짐작했지만..
하여튼 지난 세월 생각해보면
소설의 주인공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영자로 살기를 17년.....

미국으로의 유배 생활이 완전히 결정되고
미 대사관에 들어가 이름을 적는 난에
나는 나의 이름을 적는 부분에
Borna 라는 이름을 적었다.

Borna 는 나의 세레명 보리나에서
세자로 불리우는게 좀 길다는 생각에
i(알파벳 아이)를 삭제하고 Borna 로 신고했다.

그렇게 하여 미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나의 이름은
미자===>영자====> 그리고 Borna 로 다시 탄생했다.

미국에서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나의 이름이 보나다.
시민권 선서 하던날 이름에 들어있는 "R"자가 발음하기 힘들기에
아주 Bona 로 신고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이름을 무엇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상대가 언제 나와 알게 된 사람인지 구분을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곳에서 나를 만난 친구 하나가
내가 한국에 간다 하니 부탁을 했었다.
한약을 좀 가져다 달라는 것이였다.
그 친구의 남편이 나의 오빠중 한사람의 부인인 올캐의 남동생 친구이다.
(히히)복잡하다.. 쉽게 말하면 사돈네 총각 친구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나를 미자로 부른다.
그런데 그 친구가 미국에서 나의 동창들과 어울려 친하게 지내다 보니
그 친구도 나를 영자로 부르게 되었다.

친구의 동생이 오빠의 사무실로 한약을 가지고 왔다.
내가 외출중이였기에 오빠 사무실 직원이 받아 놓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영자가 또 있었다.
사촌 언니의 이름이 영자다.
나야 물론 모든 식구들은 미자 또는 미자고모로 통한다.
그러니 당연히 영자를 찾으니
그 한약은 나의 사촌언니에게 전달 되었고..
나는 한약이 전달 되지 않은 줄 알고 그냥 미국으로 돌아왔다.
도착한 다음날 친구가 전화 했다.
안부 인사 끝내고...
한약 가져 왔으면
다음에 만날때 전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전해 받은 한약이 없던터라
친구에게 뭔 한약??

나중에 알아보니
영자에게 전해주라 해서 사촌언니에게 보냈다는걸 알았다.
결국 한약은 다시 그 친구의 동생에게로 돌아가고 말았다.

며칠전의  부영낭자의 에피소드는 이렇다.
몇년전 큰언니의 조카가 이곳에 와 한동안 지낸적이 있었다.
하루는 부영이가 가게로 놀러왔다.
그때는 사진관과 선물코너를 함께 하고 있었다.
한참 커스터머와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부영이가 다른쪽에 서있는 손님을 가르키며
"영자야~~~ 손님 받어~~~!!!" 이렇게 외치는거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모두 영자의 슬픈이야기를 안다고 생각한다.
왜 하필 우리 시대에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영화가 히트를 하느냔 말이다.
또 바보들의 행진은 또 뭐냐??
거기다.. 장 영자.... 그리고....이 영자...
이 영자는 나와 완전히 붕어빵이였다. 살빼기 전의 이 영자.. 사랑스러운 이 영자
그것이 바로 지금 나 김 영자의 모습이다.

이렇게 불평해보지만 ....ㅎㅎ
미자도 만만치 않네..  이 미자 온니.. ㅎㅎㅎㅎㅎ

부영이의 외침과 동시에 우리 조카의 눈이 왕방울로 튀어 나오며 인상을 쓴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말도 없던 조카가
집에 오는 차에서 조용히 물었다.
이모!! 근데 왜 이모 친구가 이모를 영자라 불러요?
엉??!! 그거... 이모가 영자야....
설명을 듣고야 조카는 이해가 간 듯 부영이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이렇게 남들은 하나로 죽을때까지 살아가는 이름이
나는 세번이나 바뀌며 50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지금은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상관없다.
그저 잊지않고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모든이를 사랑하고 싶다.

헤헤... 그런데 고민되네..
내가 죽으면 우리 애들보고 어떤 이름을 묘비에 쓰라고 해야하나....
아고야..... 우짜냐???  

걍 니들 맴대로 적고 싶은데로 적어...
골치 아프면 다 적던지.... ㅋㅋ
그래야 어느때 친구가 날 찾아와도
햇갈리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