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관한 시 모음> 천양희 시인의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외 


+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닦는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문 끝을 보면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마음 끝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천양희·시인, 1942-)

+ 당신의 손 

나는 누구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손을 먼저 살펴본다.
그것은 그의 손이 그의 삶의 
전부를 말해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 사람과 악수를 해보고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감도를 통해
그가 어떠한 직업을 가졌으며
어떠한 삶을 살아왔으며
성격 또한 어떠한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손이 바로 인간의 마음의 거울이자 
삶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정호승·시인, 1950-)

+ 조용히 손을 내밀어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하렴
(이정하·시인, 1962-)

+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차가 오가는 
좁은 시장길가에 비닐을 깔고 
파, 부추, 풋고추, 돌미나리, 상추를 팔던 
노파가 
싸온 찬 점심을 무릎에 올려놓고 
흙물 풀물 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목숨을 놓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손 
찬 점심을 감사하는 
저승꽃 핀 여윈 손 
눈물이 핑 도는 손 
꽃 손 
무릎 끓고 절하고 싶은 손 

나는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차옥혜·시인, 1945-) 

+ 묵화(墨畵)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시인, 1921-1984)

+ 아내의 손

저녁상을 물리고
구정물에서 건진 아내의 손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자식 토실토실 키우고자
사명의 이름으로 베이고
생명의 터전으로 데인
아내의 손은 늘 성할 날이 없다.

평생 사랑하고
호강시켜 주겠다는 잊힌 다짐에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듯이
스스로 명치끝을 쓸어내리며

우렁이처럼 새끼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피와 살을 다 내준
아내의 빈 껍데기엔
커다란 약 꾸러미가 집을 틀고 산다.
(송국회·시인)

+ 손 

나는 가끔 아름다운 손을 볼 때가 있다 

이름 없이 살다 간 이들의 산소를 찾아 
꽃을 꽂는 손이라든가 

지문도 지워져 버린 늙으신 아버지가 
다 큰 아들 딸들의 구두를 닦아주는 
손이라든가 

장난꾸러기 꼬마의 얼굴을 닦아주는 
엄마의 보드라운 손이라든가 

그리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날 
따스한 악수를 하기 위해 
오버 주머니에 꼬옥 감싸 넣은 
희끗희끗한 머리채를 이고 다니는 
노신사의 핏기 없는 오른손이라든가- 

이러한 손을 볼 때마다 나는 
님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해 본다 

무쇠라도 녹일 수 있는 
손에서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사랑의 열기가 
달아오르면 오를수록 
님의 씨앗은 종횡무진 발아되리라 

거리와 거리를 이어 주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는 
징검다리 손들이 얽혀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인간 삶의 연륜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 
(정인상·신부)

+ 손의 고백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의 손이 언제나 욕망을 쥐는 데만
사용되고 있다는 말도 거짓임을 압니다
솨아솨아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 보면
무엇을 쥐었을 때보다
그저 흘려보낸 것이 더 많았음을 압니다
처음 다가든 사랑조차도
그렇게 흘러보내고 백기처럼
오래 흔들었습니다
대낮인데도 밖은 어둡고 무거워
상처 입은 짐승처럼
진종일 웅크리고 앉아
숨죽여 본 사람은 압니다
아무 욕망도 없이 캄캄한 절벽
어느새 초침을 닮아버린 우리들의 발걸음
집중 호우로 퍼붓는 포탄들과
최신식 비극과
햄버거처럼 흔한 싸구려 행복들 속에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매장된 동물처럼
일어설 수도 걸어갈 수도 없어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솨아솨아 흘려보낸 작은 오솔길이
와락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문정희·시인, 1947-)

+ 몸의 신비, 혹은 사랑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스스로 꿰매고 있다. 
의식이 환히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헛것에 싸여 꿈꾸고 있든 아랑곳없이 
보름이 넘도록 꿰매고 있다. 
몸은 손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몸은 손이 달려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구걸하던 손, 훔치던 손, 
뾰족하게 손가락들이 자라면서 
빼앗던 손, 그렇지만 
빼앗기면 증오로 뭉쳐지던 주먹, 
꼬부라지도록 손톱을 
길게 기르며 
음모와 놀던 손, 매음의 악수, 
천년 묵어 썩은 괴상한 우상들 앞에 
복을 빌던 손, 
그 더러운 손이 달려 있는 것이 
몸은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자연스럽게 꿰매고 있다. 
금실도 금바늘도 안 보이지만 
상처를 밤낮없이 튼튼하게 꿰매고 있는 
이 몸의 신비, 
혹은 사랑. 
(최승호·시인, 1954-)

+ 빈손 

주님은 
아무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신다.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D. L. 무디·19세기 미국의 복음 전도자)

+ 손깍지 

세상 살아가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

이따금 근심을 품고
잠 못 이루는 날에도

슬그머니 당신의 손을
내 가슴으로 끌어당겨

당신의 손가락 마디 사이로
나의 손가락 마디를 끼어

동그랗게
손깍지 하나 만들어지면

참 신기하기도 하지!

내 맘속 세상 근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아늑한 평화
(정연복)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