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즐거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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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다.

Heavy Rain이라는 예보대로 제법 세찬 빗소리가 들린다.

마음속까지 두드리는 듯한

소리, 소리....

 

거실에서는 넓은 유리창으로

방 안에서는 가끔씩 커턴을 들치고 비오는 바깥을 본다.

 

비 내리는, 행복한 날.

집에 있어도 좋고, 드라이브를 해도

찻집에 앉아있어도 좋다.

맘 맞는 친구와 담소를 나누면 더욱 좋겠지만.

 

따져보면,

비를 좋아하게 된 것에 이유가 없진 않다.

 

보통나이로 7살 적, 1학년 때

엄마는, 엄마가 쓰시던 망가진 일제 양산 살에

포프린 천으로 씌워

예쁜 우산을 만들어 나에게 주셨다.

 

1950년대 후반, 물자가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에

바느질 솜씨 좋은 엄마 덕에 늘 예쁜 옷에

내 우산까지 가질 수 있었다.

 

아무도 그런 우산을 쓰고 다닌 아이가 없이

특별한 나만의 우산이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깜박 잊고 가져오지 않아 잃어버렸다.

참 아까운 우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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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맞는 기억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

초등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는 나는 갈 테야. 연못으로 갈 테야.

동그라미 그리러 연못으로 갈 테야.‘

이런 동요에

비가 내리고 있는 연못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옆에는 동그스름한 얼굴의 아이가

연못을 드려다 보고 있는 삽화가 생각난다.

 

그 동요와 삽화는 나를 울렁거리게 했고

나이 들어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나는 비오는 오늘

비가 떨어져 동그라미 그리고 있는 수영장을 들여다본다.

어떤 때는 우산 쓰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언제나 생각으로 머물고 만다.

그러나 언젠가는 실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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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4살 된 손자, 지오 학교에서

우산과 장화를 신고 오라고 했다.

아마 비오는 날 체험 학습을 하려나 보다, 생각하면서

나의 여중 때, 즐거웠던

비 옷 생각이 났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아버지는 아버지와 친분이 있으신

시내 양품점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곳에서 비즈가 달린 앙상블로 된 회색 가디건과

짙은 파란색, 곤색 레인코트를 샀다.

(요즈음은 곤색을 감색이라고 하는데 마음에 안 든다)

색깔은 내가 고른 것이었다.

거기다 곤색의 장화까지 사서 신었으니

비오는 날이 어찌 좋지 않았으랴.

 

비가 자주 오는 한국에서

레인코트 입고 우산 쓰고

예쁜 장화까지 신고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그때부터, 아마

나는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게 된 것일 것이다.

 

바람 불고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바깥을 보면서

나는 흠뻑 비의 서정에 잠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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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빗방울 전주곡/ 손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