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일학년,
꿈 많던 시절,
솔직히 나는 꿈이라는게 뭔지도 모르고 살았던거 같다.
그저 시간만 나면 잠자기에 바빴으니 꿈을 키울 시간이 없었던거 같다.

토요일이면 항상 카톨릭 천주교회 부평일동 성당 고등학생부였던 나는
5시 반쯤 성당에 가서 한 시간 정도의 회합과 성경공부를 하고
7시엔 토요일 학생 특전 미사를 참석 했다.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회합을 끝낸 후
박문여고를 다니던 친구와 함께 성당으로 걸어가던 도중
둘이는 작은 분쟁이 생겼다.

글쎄 이 친구가 말하기를
신 성일이가 신 영균이보다 잘 생겼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또 있을까??

신 성일이는 내 스타일이 결코 아니다.
나에게 미남은 물론 신 영균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남성상이며 휼륭한  아버지상인 신 영균씨를
어찌 감히 신 성일씨에게 비교 한단 말이냐...

이렇게 둘이의 분쟁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는 미사가 시작된것도 무시한채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부평일동 본당신부님은 태 로마노 신부님이셨다.
지금은 하느님의 곁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겠지만
어린시절 태신부님을 엄청 무서워했었다.

한참을 싱갱이하고 있는데
신부님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미사도중
두 사람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말았다.

보리나와 (친구의 본명을 지금은 기억못하겠다) 친구
두 학생은 당장 성당에서 나가라고 명령하신다.

그때 우리 둘은 얼마나 무서웠는지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친구의 어머님과 나의 어머님 모두 성당의 골수분자(헤헤.. 미안 엄마)이셨기에
만약 이 얘기가 두분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우리 둘은 아주.. 그 날로 지옥행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 우리 둘은 한동안 부평일동 성당에 가지 못했었다.
머나먼 부평이동으로 미사를 보러 다녀며
6개월인지 일년이 넘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했다.

이 일은 지금까지 그날 미사에 참석한 친구들만 알고 지낸 일이였는데
결국 나의 비밀을 폭로 하고 말았다.
며칠전 가까운 분의 방문때 고향 소식을 얘기하는 도중
그 분도 국민학교시절 태신부님께 혹독한 벌을 받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미사도중 장난꾸러기 국민학생들을 제대앞으로 불러내시어
떡뚜꺼비같은 손바닥으로 따귀를 날리셨다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분은 주님의 길을 걷는 의젓한 성직자이시다.

이렇게 어린 시절 나의 아픈 추억(?? 실상 지금은 아주 재미있고 아름다운 추억이지만..)을 일깨워 준
지난 일주일간의 손님 접대는  아마도 내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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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Air on G" / Mischa El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