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만에 언니와 떠난 여행이였다.

그러니까 31년전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전에
아버님, 어머님과 딸 셋이 동행한여행을 마지막으로
언니와의 여행은 거의 불가능했다.

언니는 캐나다 토론토로 형부를 따라 시집갔고
그 후 나도 결혼을 하게 되고..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갈 길을 뒤돌아 봄 없이 부지런히 걸어왔다.

언니와 관광버스를 타기까지
형부의 무수한  방해 공작을
언니와 나는 짧은 머리로 대처하며
결국 버스에 올랐다.

버스 출발과 동시에 언니와 나는
아주 해맑고 순수했던(?? ㅋㅋ) 사춘기 소녀로 돌아갔다.

제일 먼저 우리의 기억속에 찾아온 것은
바로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이였다.

언니와 나를 파출소에서 꺼내와야 했던 아버님을 생각했다.

거의 해마다 여름이면 아버님은 딸들을 데리고 2박 3일 정도의 여행을 다니셨다.
워낙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나는 그때는 정말로 고욕이였지만
지금 남은것은 아름다운 추억뿐이다.

그 해에도 비오는 팔월 거의 끝나는 날 아버지는
현대에서 만들었던 포니보다는 조금 더 컸지만
그래도 작았던 승용차에 딸 셋과 어머님을 태우고 여행을 떠나셨다.

그 당시는 기사가 따로 있었고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 한 등치 하신다.
그런 두분은 뒷자석에 앉으시고 중간에 막내딸을 앉히신다.
당연히 언니와 나 둘은 앞 좌석에 완전히 찌그러져서 앉아야 했다.

어쨌든 지금도 그렇지만 떠난다는건 참 좋은거다.
무서운 아버지였지만 놀러간다는 생각이 잎서다보니
일단은 행복했었다.

그날 우리가 대구에 도착했을때는
얼마나 앞자리에서 찌그러져 오는게 힘들었던지
온몸에 땀뜨러기가 무성했다.

철없던 나와 언니는
부지런히 서둘러 저녁과 목욕을 마치고
엽서를 몇장 써서 부치려고 여관인지 호텔을 나섰다.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우체통은 보이질 않았다.
낯설은 동네에서 우체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두리번 두리번 한참을 돌고 있는데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오로지 언니와 나 둘 뿐이다.

호루라기로 우리를 부를 사람이 없는 대구이기에
무시한채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그러자 그 호루라기 소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잠시 후 우리 앞에 우뚝 선 두 명의 방범대원
대짜고짜 우리의 손을 끌고 파출소로 가잔다.

너무도 놀란 언니와 나
따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우리의 힘으로는 빠져 나올 수 없다는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언니와 나는 짧은 머리를 굴렸다.

만약 우리가 파출소에 끌려간 사실을 아버님이 아시는 날엔..

우~~와!!!@@@@@@ 생각 하기도 싫었다.

파출소에 끌려간 둘은 마구 울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채 일단 울음을 무기로 삼고...
언니가 먼저 울먹이며 우리가 끌려온 사유를 물었다.

경관의 얘기가 언니와 나의 의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였다.

그 당시에는 초미니, 핫 팬티, 끈 달린 셔츠의 정도에 따라
경범죄가 적용되던 시절이였다.
그리고 우리가 헤메이다 걸어 들어간 동네가
마침 사창가 근처였단다.

사실을 안 언니와 나...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며 언니의 연극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엄마 아빠도 없고.... 흐흐흑....
주저리 주저리.. 훌쩍 훌쩍.... 온갖 쇼우를 다 부렸지만...

그 넘의 경관은 기가 죽을지를 모른다.

이렇게 삼십분 정도를 싱갱이하는 동안

우연히 언니와 나는 동시에
파출소 구석에 자리 잡은 철창을 발견했다.

그 순간 언니의 짧은 머리는 제 정신을 차린다.
아버님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가 이곳을 절대로..절대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다... 내가 먼저 겁 먹기 시작했던거 같다.
그리고 언니 옆구리를 꾸욱 꾹 찌르며
아버지에게 연락하자고 조르기 시작했던거 같다.

언니도 별 수 없다 생각 했던지
결국 경관에게 숙소의 이름을 불고 말았다.

십분 정도 나와 언니는 초죽음 상태로
파출소 구석에 앉아 있었다.
숨쉬기도 힘들었다.

어버님의 무서운 얼굴이 눈 앞에서 아른 아른...
사시나미 떨 듯..(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리 떨었을 것 같다)
사색이 되어 온 몸이 작은 승용차에서 찌그러진 상태의 몇 분의 일로 느껴질즈음...

"어~~~~~~사 출~~~~두~~~요~~~~~~"

아니다....

"저승 사~~~~자 출~~~두~~~요~~~~~"


다시 십여분을 아버님과 경관 인사를 서로 주고 받는가 싶더니
무서운 아버님의 눈빛이 날라 오리라고  상상하고 있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도 너무도 인자하신 아버님의 미소와 함께
"이리 들 와..." 하신다.

미끄러지듯 언니와 나는 파출소를 빠져 나왔다.

둘의 머리속에는 또 다른 일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분명히 2부가 있을 것이라는 걸 언니와 내가 모를리가 없다.

숙소에 들어서자 마자.......
아버님의 떡뚜꺼비 같은 크다만 주먹이......
언니에게 한방......
아아아~~~~ 이번엔 내 차례....

그런데 이게 왠일이냐....
나는 건너 뛰신다.
모든 건 언니의 책임이라는거다.
언니가 동생을 잘 보살피지 못한 벌까지....

또 한 방이.....  언니에게로...

그 시간 이 후 우리의 휴가 여행은 바로 지옥과 같았다.

가장 힘들었던것은 대구에서 상주로 넘어가는 동안
무슨 산이 그리 많은지... 산길을 차가 달리다 갑자기 차가 선다.
워낙 식구들의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버스들이 다니는 고갯길이라 바퀴가 굴러간 가운데 자리는 불쑥 튀어 나와 있었다.

기사 아저씨가 아무리 조심히 차를 운전 하셔도
차의 밑바닥이 불룩 튀어나온 곳에 자꾸 걸린다.
그럼 언니와 나...
아무말 없이 차에서 내린다.

기사 아저씨.. 시동을 부르릉....
차는 우리를 뒤로 하고 10미터쯤 달아난다.

언니와 나...
얼굴을 한번 마주하고
뛰기 시작한다.
아무 생각없다.

그저 우리를 버리지만 말아 주소서......

이렇게 우리의 기억속에 아버님과 함께
언니와의 2박 3일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또  둘은  제 자리에 돌아와 서로의 본분을 다 하고 있다.




아버지 장 사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