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 이미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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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일어로 쓰여졌다.


그의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전혜린의 수필집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다.

한국의 기념일에
그 분은 흰 두루마기를 입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미륵님이 남긴 책은 몇 권 되지도 않지만, 이 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어렵게 책을 구하여 읽었다.

작품에 넘치는 서정성은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고향과 조국에의 그리움 때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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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인들이 한국인의 깊은 정신을 흠모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책에 면면이 흐르는 고결한 정신에 흠뻑 반했다고나 할까.

전후, 1946에 독일의 유명 출판사 ‘피터’에서 간행되었고

영어 등, 수개 국으로 번역되었고

독일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1959년 전혜린에 의해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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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면서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이

눈 앞에 담채화처럼 그려졌다.

사촌 수암과의 어린 개구장이 시절, 

시조를 읽고 읊조리며, 나누는 아버지와의 대화.


일본군이 집집을 뒤지고 조사할 때에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아무 말 말고, 그들이 달라면 다 주어라고 하는 

욕심을 비운, 고결한 성품이다.


한학을 공부하며 시조를 읊고, 그러다 학교에 들어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골집에서 휴식하며 한가로이 지낸다.

그후 독학으로 공부하여 경성 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한다.


기차를 타고 상경하여 처음 본 서울역 광장의 모습들도 

눈 앞에 보이듯 그려졌다.


한일합방을 맞은 시대 상황.

삼일 독립만세 날에 삐라를 만들고 뿌리는 등 독립 운동에 가담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고

자애롭고 현명한, 결단력의 어머니는

미륵에게  압록강을 건너 유럽으로 갈 것을 권한다.


압록강. 심양 등을 거쳐

어렵게 비자를 받아

몇달을 걸려 파리에 도착하고 그후 독일에 정착한다.  

그 사이에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운이 좋았던지, 아니면 나쁜 것은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 언제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늘 그를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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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의 화첩기행에서....>




김병종 교수의 화첩기행에 보면 이미륵의 흔적을 찾아

뮨헨 근교 그레펠핑에 찾아간 이야기가 실려있다.


여러 사람들의 힘으로 ‘이미륵 기념 사업회’가 세워져 있다.


그 분을 기리는 사람들은 그의 재능이나 학식 보다

그의 맑고 높은 그윽한 인품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외롭고 쓸쓸한 생활 속에서 특히 히틀러의 광기와 살의가 번득이는

사악한 세월 속에서도 그의 정신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



1949년 위암 수술을 받고 요양소에 누워있을 때

마지막까지 대소변을 받냈다는 에파라는 여인.

고서점 주인이었던 이미륵을 연모한 여인은

이미륵의 마지막 편지에 의해, 이미륵 묘지 뒤에 묻혔다.


2000년 3월, 독트리 리는 

그가 늘 사랑했던 책을 모아둔, 국립 중앙 도서관 앞에 청동 흉상으로 서있다.

아직도 베일에 싸인 이미륵, 그 분은 맑고 곧은 조선의 선비 정신을

독일에 심고 떠난 분이다.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