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Clara Schuman, Piano concerto Op.7 in A minor




올해는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이다.
그래서 인지, 요즈음 클래식 음악 방송, KUSC에서 
클라라 슈만 뿐 아니라, 로버트 슈만의 곡까지 자주 듣게 된다.

 정식 이름은 클라라 조제핀 비크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
독일의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 피아니스트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로, 
요하네스 브람스와의 친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음악 교육자며 
주로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렸지만 
작곡도 했으며 현재 그의 작품들이 발굴되어 종종 연주되고 있다.

 생애 후반에는 
음악 교육자 및 평론가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反 바그너 성향으로 유명하다.



i?´e?¼e?¼ i??e§? i?¼i??e?¸ i??i£¼e³¡ Ae?¨i¡°(Clara Schumann, Piano Concerto in A minor, Op.7)



클라라 슈만은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하였다. 
당대의 유명한 피아노 교사였던 아버지프레드리히 비크의 영향을 받아 
5세부터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을 보여서 
10살이 되기도 전에 소녀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였다. 
11살 때인 1830년부터 서유럽 각지로 연주 여행을 떠났는데, 
가는 곳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연주 여행 당시 
파리에서 바이올린의 대명사 니콜로 파가니니를 만나서 
그와 협연을 하기도 했으며 
프레데릭 쇼팽은 그녀의 연주를 듣고 감탄해서 친구였던 
 클라라 비크를 극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연주 뿐만 아니라 작곡에서도 능력을 보였는데, 
17세인 1836년에는 그녀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이 
당시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이었던 
펠릭스 멘델스존의 지휘(피아노는 물론 클라라)로 초연 되기도 했다. 
 
클라라의 인기에는 빼어난 미모와 
우아하고 기품있는 태도도 한 몫 했다.
그녀의 초상이 유로화 되기 전 독일 화폐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제자였던, 
9살 연상의 로베르트 슈만과 사귀기 시작했으며 
평생 동안 슈만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다른 연애를 할 기회는 없었다. 
클라라는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슈만과 연인으로 지냈으며 
결국 1840년 21살의 나이에 슈만과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혼한 후 슈만 부부는 
서로 음악적 동반자로서 큰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특히 클라라는 남편이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결혼 당시 클라라가 이미 유럽 클래스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유명 인사였던 반면 
슈만은 북 독일 지역에서만 좀 알려진 무명 작곡가에 가까왔으며 
출판 사업 등을 벌이느라 
나이 30이 될때까지 벌어놓은 돈도 거의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문란한 사생활로도 악명이 높았다.



i??i?¼:external/media1.britannica.com/142350-004-63ED212E.jpg


사정이 이렇다 보니 클라라의 부모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결혼이 제대로 유지가 될수 있을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클라라와 슈만은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였으며 
클라라는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해서 유럽 각지에서 남편의 작품을 연주했고, 
덕분에 슈만의 음악성이 본격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부인에 버금가는 유명한 음악 인사가 될 수 있었다.

클라라는 음악적인 동반자였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작곡 활동을 도왔다. 
특히 슈만은 작곡할 때에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집안일은 모조리 그의 몫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집안 일을 떠맡은 상황에서도 연주 활동과 
작곡 하는 대단한 모습을 보였다. 

똑했을 뿐만 아니라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기 때문에 이런 삶이 가능했다.

1844년에는 당시 13살의 촉망 받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을 만났으며 
이후 클라라는 평생동안 요아힘과 자주 협연을 하였다. 
또 1853년에는 당시 20살이었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를 만났으며,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재능과 열정을 간파하고 
그를 유럽 각지에 소개했다.
brahms2.jpg



                              브람스와의 관계도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다. 
                                로베르트 슈만이 정신병 증세로 자살하려고 투신했을 때 
                             슈만 부부를 적극적으로 도운 것이 바로 브람스였다. 

                         특히 클라라는 이 때 막내 펠릭스를 임신중이었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는데, 
              브람스가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는 클라라를 물심 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이후 두 사람은 평생 지기가 되었다.

 브람스는 계속 클라라와 슈만의 아이들을 도와주면서 
그녀에 대한 감정을 키워갔으며 
이러한 그의 감정은 당시에 작곡된 작품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클라라는 14세 연하의 브람스와 친분은 소중히 여기면서도 
연애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1896년 클라라는 프랑크푸르트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향년 76세. 
그녀의 유해는 본(Bohn)의 알터 프라이도프(Alter Friedhof) 묘지에 묻혀 있는 
남편 옆에 안장되었다.
 
클라라를 연모했던 브람스는 클라라가 죽은 다음 해, 
독신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 위 글은, 나무위키에서 참고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