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인호 김 수현.. 이런 작가들의 고충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고뇌하고 번민하고...등등...
바로 그런 기분이였다.
어떤 글로 나의 팬들을 즐겁게 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잠을 설쳤다.

잠깐...
쪼~~오~~기 매엔 뒷줄... 부엉이 뒤에 얼굴 감추고 비웃는 시노기...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우ㅅㅅㅅㅅㅅㅅ찌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마ㅏㅏㅏㅏㅏㅏㅏㅏㅏ

오늘 아침까지도 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궁리 궁리 하다
결국 "신옥아 고맙다"로 결정하고 아침 셋업 끝내고 컴앞에 앉았다.
요즘 가끔 제고 총동에 담 넘어 간다. 17기들의 게시판을 훔쳐보곤 한다.
그런데 이런 제목이 눈에 띤다.
박 경애가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새벽 부시시 눈 뜨고 컴 켜고 이리 저리 둘러 보는데
오매불망 찾아 다니던 세중이의 연락처를 신옥이와 함께
10기에 부상한 김 창호 소년이 올려 놓은걸 보았다.
너무도 궁금한 세중이의 소식이라 당장 전번 돌렸다.
비서를 거쳐 잠시후 세중이의 목소리가 내 귓전에 울린다.
이렇게 힘든 연결이였지만... 나는 그냥 짤리고 말았다.
바쁘단다... 아이구... 내두 바쁘이... (아이..쫀심 상할라 하네..)

전화는 끊어졌지만 나의 머리속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고등학교 2학년
그때 나는 인천교구 고등학생 연합회라는 모임에 가입되어 있었다.
회장 부회장 선출을 각 성당에서 남 여 한명씩 선발하여
박문여고에 모여 선출 했었다. 그날 선거를 위한 짧은 선거 유세 발표가 있었다.
그때 세중이는 화수동 대표... 서 영애(인일 10기) 답동 대표..
박 경애(송림동 대표선수) 그리고 몇명의 후보들..
세중이와 애영이의 후보자 연설이 단연히 돋보여 그날 세중이는 회장에
애영이는 부회장에 그때 경애가 회계로 선출 되었다.
나의 후보자 발표 순서.. ( 악몽이다) 전날 누군가가 작성해준 대본을 외운다고 외었는데
정작 앞에 서니 암 생각도 없더라. 그래서 얼굴만 뻐얼겋게 달아 있다 그냥 하단했다.
투표 결과 나에게 던져진 표...... 한표... (ㅎㅎㅎ 내가 찍은건 아니다 오해 마라)
그날 나는 또 한번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했다.
불행중 다행인지 연합회 임원중 여학생이 셋이 필요 했었기에
나에게 서기라는 직책이 돌아왔다. 내가 뭐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걍 남는 자리.. 주운거다.
쪽(sorry for my language..)팔리지만 그거라도 챙겨야 했다.
그 길만이 하늘의 계시는 님 보다 더 무서웠던 내 아버지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루어진 세중이와 경애와의 인연이 일년동안 이어졌다.

내가 더 세중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나로 인해 생전의 우리 아버님앞에 머리 조아린 남성은 오로지 세중이 하나다.
김 진사 세째딸을 달라고 모리를 조아린건 아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울메나 조앗을꼬??
그럼 지금쯤 나는 미국의 뉴포트 비치에서 죤 웨인의 별장을 바라보며
리즈 테일러의 일생을 꿈꾸며 사는 인생이 아니고
그리스 어느 항구에서 오나시스의 선박을 바라보며
마리아 칼라스와 재클린의 일생을 부러워 하고 살고 있을텐데...
부엉이 신옥이 웃지 말라니까.. 상상은 자유여...)
연합회 연례 행사 준비로 부평에 왔다가 우연히 집에 들렸는데
아버님께 따악.. 걸렸다.
세중이를 비롯한 두어명 임원이 모두 불려갔다.
체구가 우람하셨던 아버지라 아마도 세중이 호흡이 곤란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아버님 앞에 앉은 세중이...(사자에게 물려온 토끼?? ㅋ)
아버님 세중이에게 물으신다.
어느 학교 다니는가?
제물포 고등학교 입니다.
아... 그럼 교장 선생님 존함은?
이때 갑자기 세중이.. 머리를 부우뿍... 긁더니 하는 말...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 대답에 아버님 말씀...
으흠... 원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선생님 성함 잘 기억 못하지...
그 옆에 있던 나...
아주 자악은 소리로...아버지.. 나도  교장 선생님 이름 모르는데..(물론 사기다)
그때..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니... 공부도 안하고, 못하면서 그래 교장 선생님 성함 하나도 기억을 못한단 말이냐...
내원참.... 이렇게 불공평한 대접을  그날도 나는 참아야만 했다.

그런 인연때문인지 세중이는 두해후에 돌아가신 아버님
출상때도 참석해 주었고, 나의 결혼식에도 참석해 준 유일한 남자 친구다.
그런 세중이의 소식을 항상 궁금해했었던건 당연한거 같다.
한국에 갈때마다 제고 동기 만나면 세중이 찾아달라 졸랐지만
한번도 연락이 이루어진적이 없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인터냇에 대 스타로 등장한 신옥이 덕에
나는 세중이의 연락처를 입수 했다. 그리고 제목을 신옥아 고맙다로 쓰려고 마음먹고
대강 스토리를 구상하며 제고 사이트에 들어가 친구 신랑이 올린 소주 안주
답글 보러 갔다가..... 박 경애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런 이유로 갑자기 제목이 바뀌고... 즐거웠던 시간이 순식간에 슬픔으로 다가온다.
경애와의 인연도 마찬가지로 연합회에서 이루어졌고
고교 졸업후 따악 한번 아이들 아빠가 백령도 근무시
경애가 위문단으로 백령도 공연 왔을때 한번 만났다.
그리고.. 얼마전 누군가 경애 오빠와 친구라는 소식을 들어
그분께 경애의 소식을 알려 달라 부탁한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이 무슨 황당한 소식이란 말이냐..
경애가 폐암으로 세상을 달리 했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경애야... 무어가 그리 급했니??
하늘나라에서 미리 자리 잡고 있어라.
다음 생에는 더 친하게 지내자구나...
편히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