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van Gogh(1853~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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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1872년 8월부터 보낸   

지 중 일부가 실려있는 책이다.


고흐의 37년 생애동안 든든한 후원자이자 

삶의 동반자였던 테오.

고흐는 편지에서,

고독하고, 가난한, 때로 절망의 시간 속에서 

늘 테오가 힘이 되었고, 

물심양면, 그의 후원자가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가로 사는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렸으나, 몇 점의 데생과 한 점 유화 밖에 팔지 못해

동생에게 경제적 신세를 져야만 했던 고흐는

 '돈은 꼭 갚겠다 '고 여러 번 말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 가득한 고흐의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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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후기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1853년 3월 30일 네들란드의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렷을 때부터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세 분의 숙부가 화상을 하고 있어서, 

자연, 미술품 상점의 점원으로 일했으며,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하기도 했고, 

광산촌에서 선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때, 당시 인부들을 스케치하기도 했다.


1879년 여름, 

고흐는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어 테오에게 데생기법에 관한 

책과 물감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1881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동생 테오는 고흐에게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고흐는, 1890년 7월2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까지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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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4월)



1885년 3월, 아버지 테오도루스 반 고흐 목사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와 심각한 갈등을 여러 번 겪었던 그 였지만, 큰 슬픔을 느꼈다.


많은 스케치와 데생을 습작하고

1885년 4월 말, 그가 처음 시도해 본 대규모 구성작 '감자 먹는 사람들'을 

완성하고 아주 만족해 했다.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거친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려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장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은 어두운 색조를 따고 있는데

그 후로 밝은 색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후  밀레의 그림을 동경하여 자연과 농부 등, 전원생활을 그렸고

파리에서, 다시 기후가 좋은 남프랑스로 옮겨 가서

노랑과 붉은, 보라와 파랑의 강열한 색채를 사용하며

역동적인 그만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처음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가서

고흐의 그림 앞에 섰을 때, 느낀 감정은

가난했던 화가가 물감은 참 풍성하게 사용했구나 하고,

캔버스의 천이 드러날 정도로 엷은 채색을 한

마티스와 비교가 되었 던 것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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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9월)



"이번 주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 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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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Vineyard, 1888년11월)


붉은 포도밭, 이 그림이 앙데팡당전에서 팔린,

고흐 생전에 유일하게 팔린 유화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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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







뜨거운 태양 아래, 밀을 수확하느라 지쳐가는 농부를 그렸다.(1988년)

어떤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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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at Field with Cypresses(1889)

사이프러스 나무는 항상 고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했다.




테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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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믿고 도와주는 동생, 테오가 있어

든든했던 고흐는, 늘 자신을 자책하고

동생에게 신세를 진다는 미안함에

죄책감과 무력감이 더해져 많이 우울해 했다.


테오는 형을 사랑했고, 그에게 아들이 태어나자

그 이름을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 윌렘 반 고흐라는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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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조카의 방에 걸어 둘 그림으로

Almond Blossoms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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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사이프러스



그림에 있어서는, 무모하리 만큼 진실된 집착을 갖고 있었던 고흐.

열정적으로 습작하고, 

때론 폭퐁우 몰아치는 바다에 나가

모래 바람을 맞아가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거대한 어떤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내개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또 편지를 쓴다."



아를에, 고갱을 초대해 함께 생활할 때

초기에는 서로 그림에 몰두 했으나

예술에 대한 견해 차이가 그들을 괴롭혔고

불화가 심해진 어느 날

고갱과의 다툼으로, 발작적으로 귀를 자른 후

몸이 많이 쇠약해졌고, 때때로 간질의 발작을 일으켰다.



"이전이라면 감히 바랄 수 없었을 정도로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데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몸이 더 좋아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휩씨이곤 한다.

우울하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



고흐의 내면에 이있는 비관적인 생각이다.

1889년 5월, 프로방스에 있는 요양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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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년 9월)


    

1889년 9월에 '별이 빛나는 밤'과 '붓꽃' 두 점이 

파리 엥데팡당 살롱전에 

전시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즈음 고흐의 작품은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1890년 1월 브뤼셀의 20인 전에 유화 6점이 전시되었고

권위있는 평론가에 호의적 평가르 받았고,

이곳에서 '붉은 포도밭'이 400프랑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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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 1890년 7월)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이 그림을 남기고

고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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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뮤지엄에 갈 때마다 이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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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란, 그 사람의 생각이 담긴 진솔한 글이다.

안부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에게 가능한.


나도 한 때, 5년 동안 친구와 편지로 소통한 적이 있다.

내가 슬프고 괴로울 때, 음악을 듣다가도 그 음악을 함께 나누고 싶어,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편지를 쓰곤했다.


고흐에게는 테오라는, 동생이지만 친구이자, 동료.

든든한 후원자이면서 고흐를 깊이 이해하며 응원해준 사람이었고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게 

그래서 수많은 편지를 쓴 것이, 그의 축복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반 고흐를 다시 만난 기분이다.

고흐의 고민, 그림에 대한 무한한 열망과 진실.

또 그의 괴로움에 깊이 동참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의 깊이를 조금은 더 알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강인한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밤하늘의 별을 사랑하고, 꿈꾸며

사이프러스 나무에서 감동 받으며

일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때론 그림의 소재를 찾아 다니기도 했지만

생활 가운데 찾아 내어, 그림으로 표현했다.

침실. 병원. 교회. 의자. 창밖 풍경. 주변 사람들.....등


그림에의 열망을

강열한 색채. 정열적이며, 역동적인 표현으로

그림으로 승화 되었다고, 생각 해 본다. 


고흐가 죽은지 6개 월 후, 병이 악화되어

테오도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