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추억으로의 여행   


                       4기 이 명순( 개명: 이 은성) 


인일 60년사를 돌아보는 공모전이 있다며 늦게야 알게된 친구의 급 협조요청 전화를 받았다. 

우선 떠오르는 생각들을 줏어 모아 시 한편을 즉흥적으로 써서 전송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그동안 묻어둔 나의 추억들을 한번 꺼내어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에게도 좋은 시간이 될것 같았다 


기억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던 

45년 미국에서의 목회 삶속에 그동안 모든 기억들은 묻혀지고 잊혀져서 

마치 잃어버린 듯한 나의 소녀시절이었다 

거미줄로 덮여진듯한 희뿌연 내 추억의 창고를 오랜만에 찾아 열어 보기로 했다 


어디서 부터인지 멀리서 부터 하나하나 비집고 나오듯 묻혀져 있던 기억들이 확대돠어 다가선다 

마치 빛 바랜 앨범 장을 다시 들쳐 보는것 같다 

그래, 맞아! 우리 그때 그랬지 ! 

친구와 아키시아 동산에 올라 팔베개로 누워 시간 가는줄 모르고 바라보던 맑은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뭔 얘기가 그리 끝도 없었을까?! 

담장 너머로 심심찮게 날아들던 제고생들의 학창모도 우리들의 사춘기 감성을 자극하며 까르르 웃게하던 추억거리다 

그러다 별안간 쏟아지는 소나기 폭탄도 맞고. 혼비백산 교실로 달렸지만 몸은 이미 완전 물에 빠진 생쥐. 

어느새 수업은 시작된 뒤. 칠판 향해 돌아선 선생님, 

얼른 그틈을 타 이때다 친구들 합동작전에 살짝 열려진 문 사이로 

살금 살금 바닥을 헤엄쳐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갔던 스펙타클의 시간들! 


내가 이런 짓거리들도 했었지 싶어 피식 웃음이 터진다 


흠뻑 젖은 윗옷은 몸에 완전 달라붙어 브라까지 전부 내비친 처지 

그래도 마냥 좋아라 서로 키득 대는데 

몸 닦으라고 어깨위로 날아들던 친구들의 손수건은 풋풋한 사랑 담긴 우정의 편지였다 


그 아름다운 멋진 날들이 이제는 사뭇 그리움되어 가슴을 흔든다 

그 친구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가? 


나는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던 대서방 노릇도 한몫 했었다. 

에로스런 멋진 삽화까지 살짝 곁들인 편지를 받아들던 친구들,

그 홍조띤 모습들이 새삼 기억 에 떠오른다. 


한번은 내가 영화잡지를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갔다가 

책속에 있는 엘리자벳과 리챠드 버튼 부부의 생생한 키스씬 사진을 펜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수업이 시작된 시간에도 되어가는 그림에 재미가 들려 온통 정신을 쏟고 있었다. 

옆 친구들도 내 그림을 훔쳐보는 재미에 서로를 찔러대며 킬킬 대다가 그만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난 그런줄도 모르고 열심히 그림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는데 

내 옆 눈길에 무언가 시커멓게 우 뚝 선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부터 서 계셨는지 선생님이 내 옆에 서서 내 그림 그리는걸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순간 기가막히고 창피해서 죽고 싶을 자경이었다. 

그림도 다름아닌 키스 씬, 크기도 8절지 싸이즈로 사진처럼 리얼하게 그려낸 그림이었다. 

거기에 선생님은 다름아닌 규율부 책임에 우리 담임 선생님. 교실은 모두들 숨이 멎은듯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내 그림을 압수 하더니 

교실 뒤에 걸린 계시판에 그 그림을 떡 하니 붙여 놓으셨다. 

정말 너무도 부끄러워 쥐구멍 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친구들은 그 와중에 그 황당한 상황이 재미있어 웃음을 참느라 입술들을 깨물며 일의 진전을 궁금해 했다. 

수업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지옥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수업을 마친 선생님은 그림을 다시 떼어 들고 나가시며 나더러 방과후에 교무실로 오라셨다. 

선생님을 찾아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 무겁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진다. 

무슨벌이 주 어질까? 만가지 두려움으로 찾아간 선생님의 말씀은 도무지 귀를 의심케 했다. 

"이 그림, 내게 줄수 있 니?"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으시던 선생님은 따뜻한 미소까지 머금고 나를 바라 보셨다.

"네가 이런 재주도 갖고 있었구나!" 부끄러움에 몸이 굳는것 같았던 나는 그만 감동으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숱한 세월이 지난후 남편과 함께 찾아뵌 선생님은 그때까지도 내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다.


지금은 이미 소천하셨지만 정 공민, 정형규 성생님!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계신 고귀한 스승님중 한분 이시다 


또 그 당시는 우리들의 성적표가 각각 부모 앞으로 직접 발송 됐었다. 

각 학교의 우등생들로 명문 인일에 들어오긴 했어도 사춘기로 마음들을 뺏긴 친구들은 성적 이 떨어져 맘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행여 부모에게 들킬새라 초조히 성적표를 기다려 먼저 가로채면 기술좋게 성적 기록을 위조해 서 내게로 갖고 왔다. 

다시 보내는 겉봉투에 쓰는 글씨가 선생님이 쓴것처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한문 글씨 솜씨가 어른필채 같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들의 구세주가 되줄수 있었다. 


그렇게 이일 저일로 가슴 조이며 지냈던 학창 시절, 

인생을 다 산듯한 지금에서 돌아보면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일 이었는데 싶어 웃음만 나온다. 

못가게하는 영화관은 왜그리도 가고팠는지?! 머리에 쓰던 스카프는 금지된 영화관을 몰래 찾던 나의 변장 필수품 

가슴은 들킬까봐 콩닥 대면서도 꿈같은 사랑의 스토리에 젖어 내가 그 주인공이 되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닥터 지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초원의 빛, 에덴의 동쪽 등.. 

나를 울리고 웃겼던 명화 중의 명화들... 


아련한 미래의 사랑을 그리며 

영화음악에 한없이 취해 있던 시절 

극장을 순회하던 선생님께 들켜 규율부에 불려가는 친구들을 볼때마다 

다행히 안걸린 내가 너무 미안했던 추억도 미소를 자아낸다 


이제는 어느새 70이 훌쩍 넘어선 노년의 길에 서있는 나 


지난날 그리도 진지하게 꿈꾸며 그려보던 나의 미래 였지만 

세상앞에 마주친 현실속에 우여곡절과 희비애락으로 정신없이 지내버린 생의 뒤안길에서 

내 삶을 돌아보고 있는 지금 


내가 그시절 꾸었던 꿈은 비록 아니더라도 

다섯 아들의 엄마로, 

목회자 사모와 목사로 


오늘을 낳으며 살아온 다져진 내 모습이 그래도 대견 스럽다 


온갖 꽃다운 멋진 추억들을 심으며 마음껏 떠들고 웃어대던 인일의 그옛날, 


그 여고시절 그저 한폭의 그림같이 예쁘고 사랑스런 시절이었다 


인일! 

인천 제일의 여고! 

인일의 가족들이여, 

영원하여라